2007.9 |
[정현숙의 잘 사는 이야기] 우리가 유기농산물을 먹는 이유
관리자(2007-09-15 12:00:52)
정현숙의 잘 사는 이야기
우리가 유기농산물을 먹는 이유
신문에서 한 의사선생님의 얘기를 읽은 적이 있다. 한 어린이집의 감기환자가 오지 않아 어린이집이 이사 갔나 생각했더니 이유인즉 어린이집 급식을 유기농으로 바꾸고 난 뒤, 감기환자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았다는 얘기였다. 우리 매장 담당자는 새로 온 지 한 일 년 됐는데 안 팔려서 시들어가는 야채나 유통기한 다 되어가는 식품들 더러 갖다먹었을 뿐인데 네 식구 모두 감기 같은 잔병치레를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병원 안 가는 것만 해도 비싼 유기농산물 사고 남는다고 하기도 한다. 산에서 이것저것 뜯어먹기도 하고 유기농 농사를 짓는 우리는 힘들어서 몸살은 해도 단연 감기는 잘 안 걸린다. 감기뿐만 아니라 이런저런 잡병에 시달리지 않는다. 이것이 유기농산물의 힘이다.
한살림은 그 유기농산물을 생산하는 농가와 유기농산물을 먹으면서 이 땅의 오염을 막고 건강한 밥상을 살리자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전북에도 한살림 말고 다른 생활협동조합 조직이 더러 있는데, 한살림은 전국적으로 12만 명, 전북지역은 약 천3백 가구 정도의 회원이 있다. 이 회원들은 그냥 쪼르르 가서 유기농산물을 사 먹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 농가를 수시로 방문하고 농사가 잘 되는가 물어도 보고, 더러 일손을 돕기도 하면서 유대를 갖는다. 농가들 입장에서는 그런 활동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그냥 수확된 농산물만 휙 들고 가는 소비자보다는 서로 얼굴을 알고 안부를 주고받는 관계가 훨씬 믿음을 주고 의미가 있기에 즐겨 그 부담을 떠안는다.
광주까지 포함된 호남지역의 소비자 회원들이 생산지의 초대를 받고 부안지역의 생산공동체를 방문했다. 일정은 천연염색도 하고 고구마도 캐고 저녁에 부안의 이야기도 듣고, 이튿날은 내소사 갔다가 바다에서 놀고 그물로 물고기 잡는 것. 물론 모든 먹거리는 생산자분들이 농사지으신 유기농산물들.
고추 따고 참깨 털고 우리도 해야 할 일이 장난 아니었지만 만사 젖혀두고 어진이랑 길을 나섰다. 여름내 못 가본 바다에 데려간다는 의미도 컸다. 이럴 때 아니면 아들은 여름내 한 사람 몸 담그면 끝나는 또랑물이나 다라이에 받아놓은 물에서 수영복 입고 물안경 쓰고 폼 잡는 것밖에 못하기에.
하룻밤을 자고 오는 일정이라 이것저것 집안일을 마무리짓다보니 아니나 다를까 내가 제일 늦었다. 허겁지겁 버스를 타고 간 작은 폐교. 거기서 우리를 기다리시는 이 지역 열다섯 유기농가 식구들과 낡은 트럭들. 우리 이웃 사람들의 또 다른 모습이기도 했다.
대강 인사를 나누고 우선 천염염색 시간부터 가졌다. 오는 데 마음이 바빠 염색할 천도 못 챙겼는데 다행히 주최측에서 예쁜 손수건을 준비해 주셨다. 쪽 염색은 평소에 하기 힘든 것이라 다들 관심이 많았다. 요상한 하수도 냄새 나는 연두색 염료에 손수건을 담그고 한참 조물거리다가 꺼내 흔들었더니 손수건은 공기중에서 색깔이 파랗게 변한다. 찬물에 두어 번 헹구어내니 그야말로 쪽빛, 예쁜 푸른 물이 들었다.
채 마르지 않은 수건을 목에다 매고 우리는 모두 트럭 뒤에 나누어 탔다. 농사체험이랄까, 이름하여 고구마캐는 조, 참깨 터는 조, 들깻잎 따는 조. 나중에 거름 뿌리는 조도 생겼다. 어디로 갈까 망설이는데 어진이가 자기는 참깨터는 조에 갈테니까 나보고는 깻잎을 따란다. 롤러코스트 못지않은 트럭 짐칸에서 엉덩이는 좀 덜 편하지만 시원한 바람을 헤치며, 들판을 마구 달리는 기분은 말그대로 ‘앗싸’였다.
대여섯 살 조무래기까지 낀 얼치기 농사꾼들이 뭘 제대로 하겠는가마는 나중에 고구마밭을 가 봤더니 제법 진지하게 호미질을 하고 있었다.
모인 회원들은 모두 60명 가까이 되는데 애들이 절반 정도. 다음날 아침 여섯 시에 가는 내소사 일정에도 어린 친구들은 씩씩하게 따라갔고, 바다에서 노는 시간은 말해서 무엇하랴. 갖다놓은 간식도 먹을 겨를 없이 바다에서 안 나오는 아이들이라니. 마침 바다에는 우리 말고 거의 사람들이 없어 완전히 해수욕장을 전세낸 것처럼 놀았다. 내일이 개학이라 다른 애들은 다 밀린 숙제 한다나. 아무튼 나도 바다에 누워 파도에 밀리면서 맘껏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물을 옛날식으로 던져서 고기를 잡는데 서투른 어부들이 손을 잘 못맞추는 바람에 물반 고기반인 자리에서도 다 놓치고 겨우 전어를 한 바케쓰 정도 잡았다. 우리 식구들 회 떠 먹기에 딱 알맞은 양이었다.
한살림 식구들이 모이면 다른 모임과는 다른 점들이 있다. 눈에 콩깍지가 씌어서 그런지 어른이나 아이들이 다 표정이 순하고 얼굴이 반짝반짝 예쁘다. 이건 좀 주관적인 느낌이라 치고 객관적으로도 다른 점이 있다. 첫째 아무도 과자나 음료수, 아이스크림을 내놓지도 않고 요구하지도 않는다. 어른들 공식 음료는 막걸리. 아이들 간식은 떡이나 감자 고구마 옥수수 등과 과일이면 끝이다. 그리고 밥은 당연히 현미나 잡곡이 잔뜩 들어간 거친 밥. 그래도 아무도 거기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못 먹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대신 아토피 아이도 비염 환자도 맘 놓고 먹을 수 있다.
그 다음은 놀이의 종류나 노는 모습들도 많이 다르다. 대개 생산지를 가보면 유기농가가 많은 지역에는 느티나무에 매달린 그네, 투호, 널 같은 놀이기구들이 있고 어른 아이들이 모두 그런 놀이를 함께 한다. 단체로 놀 때는 풍물을 치며 논다. 지난 생산자 모임에서는 정말 풍물이 신이 나 백여 명 모인 사람들이 거의 참여해 덩실덩실 춤을 추는 한 판 놀이마당이 벌어졌다. 대중가요가 어때서가 아니라 가라오케나 게임기, 화투판은 여기서는 거리가 멀다.
어른 아이가 같이 어울리고 아이들을 많이 배려한다. 유난한 아이를 데려가도 편하고 환영받는 데는 한살림밖에 없다는 애기엄마들의 말은 공치사가 아니다. 춤판 놀이판 사이사이 유기농 수박과 토마토, 오이가 간식으로 나와 토마토와 오이는 모두 한 개씩 집어들고 씻을 것도 없이 통째로 베어물었다.
그러고 앉아 있으면 농사짓는 고달픔이나 이런저런 근심들이 잠시 잊어진다. 이런 세상이 일상이었으면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쳐간다. 그러나 그건 꿈. 우리는 또다시 고추를 따야 하고 말려야 하고 배추벌레를 잡아야 하는 엄준한 일상으로 돌아온다. 그래도 회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