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07.9 |
[특집-책] 아! 고마워라, 나의 청춘과 함께 한 벗들
관리자(2007-09-15 11:48:56)
●책읽기는 중독이다. 그것도 아주 ‘지독한’ 중독이다. 오죽하면 출판중독증이라는 말까지 존재하겠나.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출판중독증 환자(?)를 찾는 것은, 경찰청 마약전담반이 마약중독자를 찾는 것보다도 훨씬 어렵다. 그만큼 한국인의 일상문화와 독서의 사이는 멀다. 말 그대로 한국사회는 ‘책맹冊盲 사회’인 것이다. 그런데 좀 웃기지 않나?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열을 자랑하는 이 나라의 사람들이, 다른 것도 아니고 책과 담을 쌓고 있다는 현실이 말이다. 하지만 이 황당한 시추에이션의 이유를 모르는 사람은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의 열 명 중 한 사람도 되지 않을 것이다. 빤한 이유 아닌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읽을 수 있는 10시간은 곧 영어단어 수 백 개를 외울 수 있는 10시간과의 비교우위 과정에서 쉽게 무너져버리고 만다는 것.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5백 시간은 이 대하소설을 A4 한 페이지 분량으로 정리한 요약본을 소화할 단 10분의 절대우위 앞에서 맥을 출 수 없다는 것. 이게 바로 대한민국 입시공화국의 명명백백한 ‘성공 공식’이니 말이다. 나는 대한민국의 입시현장에서 언제나 변방인이었다. 유형?무형으로 개인의 존엄을 짓밟는 대한민국 교실에서, 나는 초·중·고 12년의 세월을 올곧게 ‘열등생’으로 버티며 살아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변방에서 보낸 적지 않은 세월이 내게 안겨준 것은, 이 땅에서 영원히 주변인으로 살아가라는 노비문서일 뿐이었다. 비명문대생, 비인기학과, 비수도권, 비주류 등등. 어른의 문턱으로 넘어가기 무섭게 내 타이틀 앞을 장식하던 그 ‘비(非)’라는 문자는 내 청춘의 숨통을 끊어버리는 비수와 같았다. 허나 ‘아, 이 지리멸렬한 인생!’이라는 비탄의 어조를 끊임없이 내뱉던 그 시절, 나는 아주 좋은 벗(友)을 한 명 만나게 되는 행운을 얻었다. 그리고 그 좋은 친구를 통해 나는 새롭게 삶의 희망을 보았다. 피기도 전에 시들어 말라가던 상처투성이 내 청춘은 그렇게 다시 숨을 고르기 시작하더니 점점 꽃봉오리를 맺혀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도 좋았던 나의 벗! 그것은 다름 아니라 ‘책’이었다. 만남이란 항상 우연의 낭만성으로 포장되지만, 결국 필연이라는 운명의 형식으로 귀착된다. 나와 책의 만남도 우연처럼 시작되었으나 돌이켜보면 그 우연도 결국 필연이 아니었나 싶다. 원했던 대학도 원했던 학과도 아니었지만, 열아홉이라는 나이에 시작된 대학생활. 3월 초가 생일인 나는 새학기라는 시기와 맞물려 생일선물 만큼은 항상 호황기를 누려왔는데, 이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다만 좀 특별한 게 있었다면, 대학신입생이라는 타이틀 때문이었는지 이 해의 생일에는 유독 책선물이 많았다는 것이다. 시집과 소설책 그리고 여러 유명한 사회과학 입문서가 내 품에 한 아름 안겨졌는데, 이 때 알게 된 작가가 이문열이었다. 이 작가의 출세작 <젊은 날의 초상>과 <사람의 아들>은 나를 몹시도 흔들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생일 선물이 아니라 내 일생의 좋은 선물을 받았다고 해야 할까? 청춘의 고독과 인간 존재의 한없는 무거움에 대해서 묵직한 화두를 던져준 이 두 권의 소설을 통해, 나는 책이라는 신성한 존재와 지독한 사랑에 빠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 1년 동안 나는 이문열의 작품이라면 절판되어 시중에 잘 나오지 않는 것까지 찾아내 읽을 정도로 열의를 보였다(이젠 내 마음 속에서 애정도 증오도 아닌 무관심의 영역에 내동댕이쳐진지 오래인 작가이지만, 적어도 그 시절 내가 책읽기의 ‘마력’에 젖어드는 데에 절대적인 공헌을 한 작가임을 상기시키면, 이문열은 내 삶에서 분명 또 하나의 ‘아비’라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독서열은 식지 않고 점점 뜨거워져 갔다. 황석영, 이청준, 양귀자, 조정래, 박노해 등 주로 문학을 통해 시작되었던 책읽기는 역사와 철학, 사회과학 등으로 자연스레 영역확장이 진행되었다. 특히 대학 2학년 때 읽었던 에드거 스노우의 <중국의 붉은 별>은 20세기 혁명가들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켜, 마오쩌뚱 뿐만 아니라 체게바라와 카스트로, 호치민, 레닌, 말콤 엑스 등의 삶을 대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다양한 일생은 내 무거운 일상의 심연에 묻혀있던 ‘열정’이라는 것을 깨우는 그 무엇이 되어주었다. 어쨌거나 군에 입대하기 전까지의 2년 동안 내가 읽은 책은 250권 정도 된다. 아주 많다고도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그리 적다고도 할 수 없는 그 분량의 책들을 통해 나는 분명 초?중?고 12년의 교과과정 동안에는 경험할 수 없었던 황홀경을 경험할 수 있었다. 내 삶이, 그리고 내 인식이 급격히 팽창하는 일종의 빅뱅현상을 겪었다고나 할까? 어쩌면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는 이 시기에 내 삶의 주인공이 바로 나라는 진리를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종종 집으로 전화를 걸어 무슨무슨 책 좀 사서 소포로 부쳐달라며 가족들을 무척이나 귀찮게 했던 26개월의 군대시절. ‘책은 결코 배신을 하지 않는다’라는 자명한 진실을 이미 터득했기에, 최전방에서의 답답한 생활 속에서도 내 오감을 자극하는 책 속의 깨알같은 글씨들을 나는 쉼 없이 사랑할 수 있었다. 자유의 일부를 국가에 헌납했던 이 때, 나는 책을 통해 두 명의 스승과 조우하게 되었는데, 바로 루쉰과 리영희가 그들이다. 그 두 지식인의 글은 적어도 내가 오랫동안 품고 있었던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비교적 명쾌한 해답을 내려주었던 것이다. 제대 후 2년 동안 지속된 낭인(浪人) 생활. 그리고 그 후 새롭게 시작된 대학생활. 그 사이 나를 설레게 하고 또 가슴 아프게 했던 몇 번의 연애사건들을 헤쳐 나오며, 나는 어느 새 책과 더불어 내 존재의 성채를 비교적 견고히 쌓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이 시절 동안에는 김현, 강준만, 고종석, 김훈, 기형도, 김승옥, 최인훈, 박태원, 칼 포퍼,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니코스 카잔차키스, 나쓰메 소세키, 폴 오스터 등의 고유명사가 나와 함께 해주었기에, 내 청춘은 그리 고독하지 않았다. 그리고 서른 살! 세월의 가속도에 약간의 어지럼증을 느끼다가 문득 고개를 돌려보니 내 옆자리에는 3천 권을 훌쩍 넘긴 책들이 성벽처럼 촘촘히 쌓여있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내 나이의 앞에 숫자 ‘2’가 붙어있던 지난 10년 동안 정말 원 없이 책을 읽는 호사를 누려온 셈이다. 그래서 그랬을까? 삼십대도 벌써 중간의 문턱에 거의 다다르고 있는 지금에 와서도, 나는 내 20대 시절에 대한 일말의 후회가 없다. 비록 해외여행 한 번 못해본 청춘이었지만, 어쩌면 그 보다 더 다양하고 재밌는 풍경들을 마음에 담아주는 ‘벗(책)들’이 있었기에 그것은 가능했을 것이다. 주변사람들은 요즘도 나에게 가끔 묻는다. “책을 왜 그리도 많이 읽느냐”고. 하지만 나는 아직도 그 물음에 대한 속 시원한 답을 알지 못한다. 내 삶의 운명과도 같은 여자를 보고 첫눈에 반한 이유를 조목조목 말할 수 없듯, 그 이유는 말로 쉽게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직접 그 ‘지독한 사랑’에 빠져보았을 때에야 비로소 알 수 있는 것이라는 다소 무책임한(?) 답을 건넬 수밖에….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