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9 |
[특집-책] 종이책이 종말을 맞았다고?
관리자(2007-09-15 11:47:02)
끝날 것 같지 않던 여름도 시간 앞에서는 어쩔 수 없나봅니다. 가을, 책읽기 좋은 계절이 왔습니다. 맨 처음, 누가 어떤 이유로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가을이 책 읽기에 좋은 계절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책 한권 읽기가 말처럼 그리 쉽지만은 않습니다. 이제 곧 쏟아질 ‘올 가을에 읽어볼만한 책’들 앞에 우리 대부분은 한없이 작아지기만 합니다.
이번 호에는 ‘책’을 다뤄봤습니다. 올 가을 읽기 좋은 책 추천은 아닙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책 이야기, 나의 독서기, 책의 진화 등 책에 얽힌 재미난 이야기들을 엮어 보았습니다.
가을은 산책하기도 좋은 계절입니다. 산책 나가는 길, 그동안 읽고 싶었던 책 한권 들고 나가보는 것은 어떨까요? 시원한 가을바람에 떨어지는 낙엽이 책갈피 되어주지 않을까요.
●책: 인간의 사상이나 감정을 글자나 그림으로 기록하여 꿰어맨 것.
책·서책(書冊)이라고도 한다. 언어사적(言語史的)으로 말하면 서(書)나 적(籍)은 모두 ‘문서(文書)’ 책이라는 뜻인데, 서는 죽찰(竹札)이나 헝겊 조각에 붓으로 쓰는 것이고, 적은 죽찰에 기록(記錄)하는 것이 원의(原義)로 되어 있다. 즉, 중국에서 진(秦)나라가 아직 천하를 통일하기 이전 시대의 서책의 재료는 대와 나무였다. 대의 경우, 길이 26cm 전후의 판대기를 만들어 거기에 8자(字)에서 30자 정도를 한 줄에 쓴다. 그러나 30자 이상 100자 정도까지를 쓸 필요가 있을 때에는 길이 90cm 내외의 나무 판대기를 이용한다.
100자 이상이 되면 판대기를 여러 개 가죽으로 엮어 책(冊)을 만든다. 시황제(始皇帝) 이전에는 비단 헝겊도 역시 서사(書寫)의 재료가 되고, 권자본(卷子本)의 원형이 되었을 것으로 상상되나, 비단은 원래 값이 비싸 널리 보급되지는 못하였다. 이와 같이 자연 그대로, 또는 가공(加工)한 적정한 재료를 골라, 그 위에 글자나 그림 모양을 필사(筆寫)하고, 또는 인쇄한 것을 합리적으로 배열하여, 보존하는 데나 운반하는 데도 알맞게 엮은 것이 서적이므로, 글자나 그림 모양을 가지고 있던 고대 민족은 생활권에서 얻어지는 갖가지 재료를 가지고 서책을 만들었다.
<두산백과사전>
최초의 책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책’의 정의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인간의 사상이나 감정을 글자나 그림으로 기록하여 꿰어맨 것.’ 이런 정의에 따르자면, 서양 최초의 책은 고대 이집트의 ‘파피루스’ 발명과 함께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그 전에도 인류는 끊임없이 ‘기록’의 생활을 해왔다. 몇 만 년 전, 구석기시대부터 동굴벽에 동물들을 그려 넣어 성공적인 사냥을 기원하는가하면, BC 2000년경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는 점토판을 이용해 서사시를 기록하기도 했다.
점토판은 그 전 임의로 움직일 수 없던 동굴이나 바위라는 매체와는 비교할 수 없는 매력을 갖고 있었다.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는 질이 좋은 점토가 많이 생산되었다. 그들은 적당한 크기와 두께를 가진 점토판을 만들어 양면이 굳기 전에, 설형문자(楔形文字)를 적어 넣었다. 이것을 햇볕에 말려 가마에 넣고 구우면 돌처럼 굳어지는데, 이것은 당시로서는 더 없이 훌륭한 서적이 되었다. 재료를 구하기도 쉬웠고, 기록하기도 쉬웠다. 더군다나 불에 구우면, 물에 젖거나 동물들로부터의 해도 입지 않는 등 보존성도 좋았다. 때문에 이 지방에서는 수천 년에 걸쳐 점토판 서적문화가 성했다.
하지만, 불편한 점도 없지 않았다. 무엇보다 점토판 서적은 무겁고 운반하기가 불편했다. 여기에 비슷한 시기, 메소포타미아 지방과 함께 대문명을 이룬 이집트에서 더 편리한 형태의 서적인 ‘파피루스’가 발명되었다. 결국 점토판 서적은 그렇게 쇠락하게 되었다.
파피루스 서적이란, ‘이집트의 나일강변에서 자라는 파피루스의 줄기를 세로로 얇게 잘라 종횡으로 배열하여 밀착시킨 용지에 기록한 고문서’를 말한다. BC 2400여 년 전부터 사용하기 시작해 서기 1000년경 까지 약 3500년 이상이나 사용되었다. 파피루스 용지는 24×15cm 정도의 크기가 보통이며, 서적의 경우는 20매씩 잇대어 붙여 한권으로 만들었다. 여러 장을 꿰어 엮었다는 점에서 본격적인 서적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이후 파피루스는 양피지라는 고급 재료가 등장할 때까지 티모테오스의 시극 『페르시아인』, 메난드로스의 희극, 아리스토텔레스의 변론편(辯論篇), 시 및 극문학 작품 외에 그리스도교 문학인 『마리아의 복음서』 『바울로 행전(行傳)』 등 거의 모든 그리스나 라틴의 걸작들을 기록하는 중요한 서적으로 쓰였다. 생활 속에서도 각종 법령(法令), 재판 관계 문서, 징세 관계, 등기류 공문서와 결혼계약서, 유언장, 각종 편지 등 현재 종이가 하는 역할을 거의 완벽하게 해왔다. 비슷한 시기, 동양에서는 대나무나 비단을 이용한 서적을 만들어 이용하고 있었다.
AD 105년, 후한의 ‘채륜’에 의해 세계 처음으로 드디어 종이가 발명되었다. 채륜이 발명한 제지술은 나무껍질 등을 돌 절구통에 짓이겨 물을 이용해 종이를 만드는 것이었는데, 이것은 현대의 종이만드는 법과도 거의 같다. 당시는 한나라가 재건된 후, 통일왕조로서 기초가 다져진 때였다. 당연히 정치문화적 필요에 따라 기록을 위한 재료가 많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채륜은 궁중에서 수공품을 원활하게 조달하는 것이 일이었고, 이를 위해 과거부터 이어오던 비능률적인 재래방법에 대해 연구를 거듭하다가 그 결과 제지술을 발명하게 되었다.
그가 발명한 제지술은 당시 커다란 환영을 받았다. 값비싼 비단과 달리 나무껍질을 이용했기 때문에 원료는 값쌌고, 많은 양을 한꺼번에 생산할 수 있었다. 여기에 사용하거나 휴대하는데 기존의 것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편리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발명된 제지술은 AD 751년 당나라가 아바스족에게 패하여 제지공을 포함한 많은 포로들이 납치당한 것이 계기가 되어 이윽고 서양으로 전파되기 시작해, 13세기 경에는 지중해를 건너 이탈리아에 상륙하게 되었다.
이때까지, 책의 원료는 점토판에서 나무껍질, 대나무, 양가죽, 비단, 종이에 이르기까지 제지술은 진화에 진화를 거듭했지만 여전히 책은 극소수 사회 부유층의 전유물이었다. 일일이 사람이 손으로 쓴 필사본의 책들은 노력과 비용이 너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15세기,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판 발명이라는 인쇄술의 발전은 혁명과도 같았다. 금속활자판이 발명됨으로써 합리적인 가격으로 책을 대량 생산하는 규모의 경제를 이룰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일반인들도 책을 읽고 느끼고 창작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책은 특권층만의 전유물이 아니게 되었다.
서양에서는 현대사회를 이루게 된 이유로 산업혁명이나 프랑스혁명 등 보다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발명을 더 큰 업적으로 생각하는 이유도, 금속활자의 발명이 대중들에게 사상을 전파하게 함으로써, 다른 혁명들도 가능해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나라를 비롯해 동양에서는 그 전보다 훨씬 일찍부터 목판 및 금속활자가 사용되고 있었지만, 서양처럼 커다란 파급효과를 가져오지는 못했다.
구텐베르크가 인쇄기를 발명한 이후부터 인쇄술의 규모는 급격하게 증가했다. 18세기 말에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화는 인쇄술의 발달을 더욱 가속화 시켰다. 인쇄술의 수요가 점점 증가함에 따라 19세기 초에는 증기기관으로 작동되는 고속 인쇄기가 발명되기에 이른다. 얼마 후부터는 자동식자기인 라이노타이프가 도입되어 활판대신 식자로 문자가 인쇄되었고, 20세기에 들어서는 사진식자기와 레이저사식기가 등장하는 등 책은 더욱 쉽고 간편하게 만들어지게 되었다.
책의 진화는 더 이상 없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제 책은 ‘인간의 사상이나 감정을 글자나 그림으로 기록하여 꿰어맨 것’이라는 정의를 파괴하며 진화하고 있다. 책을 읽지 않는 시대, 그것은 책이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21세기 들어, 전자책이 나왔을 때 사람들은 ‘종이책의 종말’을 섣불리 예단하기도 했다. 전자책은 ‘문자나 화상과 같은 정보를 전자 매체에 기록하여 서적처럼 이용할 수 있는 디지털 도서’를 말한다. 독자 입장에서 보면 종이책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고 필요한 부분만 별도구입이 가능하다는 점이 편리하고, 출판사 입장에서도 제작비와 유통비를 절약할 수 있고 업데이트가 쉽다는 장점이 있다. 여기에 전자책은 독서를 하면서 동영상 자료를 보거나 배경음악을 들을 수도 있고, 휴대용 단말기 등에 저장하여 언제 어디서나 쉽게 원하는 책을 찾아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장점에도 불구하고 전자책의 파괴력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사람들은 오랜 세월동안 손끝과 눈에 익숙한 종이책의 정서를 떨쳐내지 못했다.
최근에는 ‘듣는 책’이 새로 나왔다. 말 그대로 눈으로 읽는 책이 아닌, 귀로 듣는 책이다. 앞으로도 또 어떤 식의 진화된 책이 나올지 모른다. 불과 몇 십 년 전만해도 모니터로 보는 책이나 귀로 듣는 책은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 우리들의 손끝에 익숙해진 아날로그 종이책의 질감과 촉감, 그 정서를 떨쳐버리기는 힘들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