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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8 |
[최승범 시인의 풍미기행] 함양 오곡밥
관리자(2007-08-14 20:11:40)
무지개 빛줄의 아름다운 맛   7월 중순이었다. 「고하문예관」문우들과 함양(咸陽) 나들이 길에 올랐다. 일행 29인, 명목은 신라 때 고운 최치원(崔致遠)의 숨결이 담겨 있다는 ‘상림숲’과 조선조 연암 박지원의 이용후생(利用厚生)한 치적 어린 ‘안의’고을을 답사하자는 데에 있었다. 하룻길 나들이에는 점심의 즐거움도 따르기 마련이다. 한 고장의 특색있는 별미음식을 대하면 그 즐거움은 한결 더하게 된다. 함양문화원장 김성진(金聲鎭) 시인의 귀뜸을 입어 일행이 찾아든 곳은 「늘봄가든」(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조산리 446. 전화 055-963-7722)이었다.   이 식당의 자랑은 ‘오곡밥 정식’(1인분 7천원)에 있었다. 일반적으로 오곡은 쌀·보리·콩·조·기장을 들어 말한다. 홍석모의 《동국세시기》에도 영남지방의 오곡잡반(五穀雜飯)이 등장한다. ‘오곡반’이면 될 것을 왜 굳이 ‘잡’(雜)자를 넣었던 것인가. 하긴, 북녘에서는 오곡밥보다도 ‘오곡잡밥’으로 흔히 일컫는다고 한다.   함양 오곡밥의 오곡은 무엇무엇일까. 정월보름 아침 차례(茶禮)에 올렸던 약밥(藥飯)의 맛과는 어떻게 다를까. 또 어린시절 남원지방에서 먹었던 오곡밥 생각이 일기도 한다. 저때의 오곡은 찹쌀·기장·수수·검정콩·붉은팥의 다섯 가지였다. 이것들을 한 솥에 섞어 지어낸 밥이 오곡밥이었다.   「늘봄식당」의 ‘오곡밥정식’은 네 사람 당 한상 꼴로 차려져 나왔다. 오곡밥은 몫몫의 밥그릇이 아닌 대오리·싸리나무오리로 엮은 하나의 채그릇에 벌여 놓았다. 밥도 오곡을 한솥에 섞어 지은 것이 아니다. 찰밥·차조밥·수수밥·메밥을 따로 지어 그것을 구분하여 벌이고 그 위에 붉은빛의 찐팥을 담상담상 뿌려 놓았다. 이건 숫제 무지개 빛줄의 아름다움이다.   앞에 놓인 빈 접시에 한 자밤 한 자밤 덜어 내어 먹자니, 맛·맛이 별미다. 오곡에 따라 맛·맛이 다를 뿐 아니라, 찰밥에선 보랏빛이, 조밥에서는 노랑빛이, 수수밥에서는 주황빛이, 메밥에서는 하양빛이, 팥이 앙구어지면 붉은 빛이 입안에 도는 듯한 느낌이었다.   ‘밥은 씹으면 씹을수록 맛이 돋는다’고 했다. 이건 일상의 쌀밥을 두고서의 말이겠으나, 오곡밥을 먹자니 더욱 적실한 말로 다가왔다. 차근차근 씹으며 맛을 즐기자 간도 배어나온다. 따로 반찬에 마음 쓸 것도 없었다.   한참 밥맛만을 즐기다가 상차림을 살폈다. 꼬리곰국·돼지수육·조기구이도 있다. 그러나 무나물·고사리나물·팽이버섯·아주까릿잎·호박나물, 그리고 두부조림·도토리묵 접시에 마음이 쏠렸다. 도토리묵을 이 고장에선 ‘굴밤묵’이라 일컫는다. 육류·어물을 빼고는 모두가 함양산천에서 난 청정한 것이라는 도우미의 자랑이다. 팽이버섯은 중국과 경쟁력을 갖춘 우리나라 으뜸의 재배공장이 바로 함양에 있다고 한다.   그동안 외곽으로 스치기만 했던 함양의 품에 들어보니, 에워싼 산세도 명미하고 품안의 풍광도 아름답다. 먼 옛날은 어떠했을까. 고려 말 목은 이색(李穡)의 시구절 ‘함양 작은 고을에 많은 산이 깊다. 깎아지른 벼랑은 다시 만길이나 된다’를 읊조려본다. 「늘봄가든」을 나와 ‘상림숲’에서 여름 더위를 날렸다. 삽상한 마음으로 안의의 ‘용추계곡’을 향하였다. 도중 김성진 시선집 《내 사랑 함양》의 한 시구절이 눈길을 끈다. ‘높은 산 깊은 계곡 품에 안겨서/ 세상만사 깨끗이 떨쳐 버리고/ 여기서 살다가 나 여기 묻히리.’ 오곡밥 나물찬의 맛도 쉽게 잊혀질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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