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8 |
[특집] 전라감영 복원 Ⅱ
관리자(2007-08-14 20:07:01)
전라감영 복원, 새로운 논의를 위해 무엇을 담을 것인가부터 고민하자
홍성덕 전북대박물관 학예사·문화저널 편집위원
전라감영의 복원이 수면에 드러나고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논의한지 10년이 넘었다. 전라북도 청사 이전 문제가 검토되면서, 청사가 이전되면 그 부지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대안마련으로부터 논의가 시작된 것이다. 전라북도에서는 옛 도청부지가 조선시대 이래 전라감영이 위치해 있었던 곳이라는 점에 주목하였고, 때문에 부지를 매매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전라북도 기념물 107호 지정한 것 역시 이전한 뒤 남게 되는 4천8백여 평의 부지에 ‘전라감영터’라는 역사성을 부여한 것이다.
도청 이전이 가시화하면서 전라감영터에 대한 활용방안은 구도심 공동화 문제에 집중되기 시작하였다. 즉 전라감영의 역사성으로부터 도청 이전이후 초래될 수 있는 구도심의 침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는 도시 문제로 옮겨간 것이다. 이때부터 논의의 핵심은 구도심 활성화를 전제로 하는 전라감영복원으로 모아졌고, 역사적 진정성과 경제적 삶의 문제가 중첩되면서 그 방향성의 정립를 둘러싼 고준담론이 무성하였다.
그 사이 전주시와 전라북도 사이에 많은 검토서가 만들어 졌고, 전북발전연구원의 보고서가 나왔으며, 전라감영터에 대한 발굴이 완료되었고, 전주시의 의뢰를 받아 올해 원광대학교 도시 및 지역개발연구소에서 ≪전라감영 복원 기본계획≫ 보고서가 나오기에 이르렀다. 고고학적 연구성과와 복원 기본계획 보고서가 나오면서 침잠되었던 감영복원문제가 다시 표면위로 부상할 것이다. 본 글에서는 논의의 새로운 진전을 위해서 감영복원문제와 관련된 논의의 방향을 모으고 건설적인 토론이 진행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몇 가지 방향성에 대해 조심스런 제언을 하고자 한다.
방향의 재정립, 전라감영 부지의 공간성에 주목하자
사실 전라감영 복원문제는 단순히 복원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기술적 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감영 문제로 토론을 하다 보면 ‘복원’의 범주와 구도심 활성화가 혼재되어 의견들이 오고가곤 한다. 감영 전체를 복원해야 한다는 주장이나 일부 복원을 주장한 것 역시 그것이 구도심의 활성화에 더 적합할 것이라는 의견을 전제로 하고 있다. 감영 복원이 필요없다는 일부의 주장도 있긴 하지만 도기념물로 지정되어 있고, 복원 문제가 도청이전과 연계되어 있다는 현실적 제한 때문에 크게 드러나지는 못했다.
전라감영 복원 기본계획도 때문에 복원의 범주를 설정하는 것을 넘어 활용성의 문제까지의 계획을 수립한 것이다. 따라서 향후의 논의는 부분 복원에 동의하고 여타의 시설활용에 대해 어떤 소프트웨어를 담아낼 것인가에 모아져야 한다. 또 다시 복원의 여부나 범주로부터 토론이 시작된다면 지난 10년 동안 소비해 온 논의를 재현하게 될 것이고, 이것은 구도심에 거주하는 사람들이나 행정, 학계 모두에게 손해이다.
감영복원 기본계획에 제시된 기본방향 대상 부지의 확대와 4개 권역의 설정에 대해 동의해야 할 것이다. 적어도 ‘복원’에 대해서는 선화당을 중심으로 하는 감사영역의 복원으로 제한하는 점에 대해서만이라도 소모적인 논의를 할 필요는 없어야 할 것이다. 타 시설들의 소프트웨어를 논의함에 있어 주목해야 할 점은 공간이 갖는 기억을 조선시대의 전라감영으로 제한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논의의 출발이 전라감영이었기 때문에 조선시대에 불가피한 상황이었는지 몰라도 전라감영터가 가지는 의미는 조선시대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고려시대 전라도를 통활하던 치소(감영과 같은 행정기관)가 어디에 있었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도시의 확장 변화를 고려해 볼 때 조선시대 감영터나 감영과 관련된 각종 영역과 동떨어져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그 부지가 가지고 있는 역사성은 적어도 1천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조선시대 감영부지가 그 이전이나 그 이후 지속적으로 지방 통치행정기능의 중심으로 끝없이 지속된 것은 전주가 유일하다.
조선이 몰락하고 일제시대 전라북도 도청이 위치하게 되면서 현재의 위치로 도청이 이전하기까지 감영부지는 전라북도의 행정 중심이었고, 전라북도 도민들에게 있어서는 대동의 공간이었다. 수많은 시민 집회들이 설사 그것이 관제데모의 성격을 지녔을지라도 옛 도청앞 광장 조선시대 감영부지에서 일어났으며, 80년 전주의 민주화 중심지역도 그 광장이었다. 민중권력, 지방자치제의 출발이라 할 수 있는 집강소 정치가 시행된 것도 전라감영이었다. 부채와 인쇄문화 등 전라감영이 가지고 있었던 문화적 기능을 주목하는 점도 그 공간이 가지고 있는 기능성에 바탕한 것이다. 이제부터의 논의는 이와 같은 공간이 가지는 역사성을 어떻게 모아서 담아낼 것인가에 모아져야 할 것이다.
전라감영터의 역사성을 규명하자
우리는 전라감영에 대해서 많은 것들을 모르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라곤 조선시대 내내 전라감영이 전주에 있었다는 점과 전라감사로 어떤 사람들이 임명되었다는 것 정도일 뿐이다. 전라감영의 기능에 대해서는 여타 지방과 다른 독특한 기능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조차도 알 수 없다. 전라감영의 문화적 기능을 언급할 때마다 거론되는 선자청, 심약방, 인출방, 교방 등이 과연 전라감영만의 독특한 기능인지에 대해 그 분명한 근거를 제시한 논문 한 편도 없는 실정이다. 전라감영에 대한 종합적 학술보고서 한 권이 나와 있지 않았음에도 기본계획이 준비되고 사업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논의하는 것조차 어쩌면 본말이 전도된 것일지 모른다.
통상 역사적 공간들에 대한 개발계획의 수립은 그 공간이 가지는 역사적 규명이 선행되는 것이 마땅하다. 개발계획 그것이 복원 또는 재현일지라도 행정기관의 검토서 만으로 추진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체계적이고 종합적이 학술보고서를 만들고, 그 공간이 가지는 역사성을 시민들에게 알리는 한편 시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공간성의 담아 낸 뒤 그러한 역사성을 어떻게 실현시킬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맞는 절차이다.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감영복원 사업이 지지부진하게 담론적 수준에서만 맴돌았던 것이다.
흥행의 성패는 콘텐츠에 있다
시민공청회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지적한 것 중의 하나가 콘텐츠이다. 복원이건 재현이건 공간의 활용방안 수립 추진과 함께 진행되어야 할 것이 바로 무엇을 어떻게 담을 것인가 하는 문제인데 지금까지 그 문제가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경상감영 복원문제가 종합적인 학술조사를 바탕으로 진행된 것이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경상감영이 비한다면 전라감영은 훨씬 풍부한 자료를 가지고 있다.
복원의 성패는 완전한 전체 복원이나 일부 복원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핵심은 그 공간에 어떤 방향으로든지 하드웨어가 들어갈 것인데, 달랑 건물 몇 개 짓는 것이 아닌 무엇을 담은 건물을 지을 것인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전라감영에 담긴 역사적 콘텐츠 그곳을 다녀갔단 감사들은 물론이고 향리와 같은 중인세력, 관청을 들락날락했던 전라도의 백성들의 삶의 애환 등을 찾아내고, 해방 이후의 전북도청과 대동의 공간으로 이야기를 찾아 구성하는 것, 이것은 문화산업을 이야기할 때마다 거론되는 스토리텔링과 연계되어 있다. 이야기가 없는 문화시설은 죽은 시체나 다름없고 결코 흥행을 이어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본방향에 동의한다 해도 전라감영 부지에 대한 활용계획이 구체적으로 시행되고 완공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대상 부지를 확대한다면 그 시간은 더 길어지게 될 것이다. 구 도청 주변의 상권이 급속도로 침체해 나가고 있는 상황을 고려할 때 추진일정을 앞당기는 문제는 구도심활성화와 직결되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의미한 소모적 논쟁을 지양하고 생산적 논의를 진행해 나가기 위해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숙고하고 당장 실천에 옮겨야만 할 것이다.
앞 뒤 없는 논쟁, 그 태생적 한계
최근 전라감영 복원 기본계획수립용역 결과가 나왔다. 당연히 복원 및 공간조성에 대한 다양한 쟁점을 소개하고 계획의 완성도를 높여 나갈 생산적 토론이 기대될 것이다. 그러나 전라감영 복원계획 수립용역 결과는 두 가지의 문제를 결여하고 있다. 첫째, 전라감영 복원 사업의 추진 가능성에 대한 확신 없이 사전 논의를 간과시킨 점. 둘째, 어떤 관점과 범위 아래 진행 할 것인지 결정하지 못한 채 추진한 태생적 한계가 분명하다는 점이다.
우선, 전라감영 복원에 쓰여야 할 500억원의 돈이 도청 이전 및 신축비용으로 충당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미 지출한 예산부분이 향후 사업진행에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는지 확인 할 필요가 있다.
특히, 기 지출예산이 목적사업에 맞게 쓰인 것인지, 해석에 따라 그렇다 하더라도 추가 지원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인지.
만약 감영복원 사업이 중복지출에 해당하거나, 추가 지원이 어렵다고 한다면 근본적으로 접근방식이 달라져야 한다. (최근 사안의 중대성이나 사업의 타당성을 강조하면서 도비 시비 등 자체예산을 들여서라도 해야 한다는 주장은 일단 제외해야 한다. 중앙정부의 지원과 지방의 출연을 전제로 시작된 복원사업을 갑작이 자부담으로 추진한다는 것은 현재로서는 현실성이 떨어진다).
그리고 여전히 남는 문제는 전라감영복원 사업 추진여부를 선택할 수 있는지의 문제이다. 이미 중앙정부로부터 예산을 받아 집행한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인지, 사업의 타당성여부에 따라 포기하거나 미룰 수 있는 것인지가 분명하지 않다.
사실 도청 신축 때부터 이 부분에 대해 확신을 갖고 대답할 사람이 있을지 궁금했었다.
둘째, 전라감영의 고고학적 발굴조사의 결과이다. 현 시점에서는 와편 이외의 구체적인 유물이 없고, 감영의 기능과 관련해 뚜렷한 결과를 찾아내는데 실패한 걸로 되어있다.
복원 사업의 실체가 있는가의 문제가 걸려 있다. 실재했던 공간이라는 사실만 가지고 복원이 이뤄질 수 없다. 땅 속에서 밝혀진 것이 없기 때문에 새로운 차원의 복원구상이 마무리되어야 한다. 우리가 기대해 왔던 전라감영 복원의 구상이 좀 더 풍부하게 제시되어야 한다. 몇 개의 구획을 통해 기능과 역할을 연계한다고 종합적이고 입체적인 공간 구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오히려 복원의 핵심이 무엇인지 더욱 분명히 해야 한다.
아울러 문화재청 등 중앙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근거와 범위를 확실히 알 필요가 있다. 그에 따라 복원 후 유지관리 계획 수립의 주체가 결정되고 사업비 및 일반관리비 예산의 범위를 정할 수 있다. 아울러 복원시설의 역사 문화적 의미에 따라 향후 조성될 전라감영복원지역의 질적 차원이 결정된다.
셋째, ‘전주는 왜 전라감영을 복원하려 하는 가’이다. 여러 가지 주장이 있어왔음을 잘 알고 있다. 구도심의 활성화 방안에 대한 고려나, 유 무형의 전통문화 유산이 유력한 근거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전주가 특별히 감영복원을 추진할 만한 이유가 있는가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도심 내 주거지역을 중심으로 23곳의 재개발 예정지구가 아파트 건설을 준비 중에 있다. 이미 2곳의 재정비구역이 확정된 상황에서 무분별한 재개발로 도심 경관이 위협받고 있는데 감영 복원을 중심으로 한 대책수립 방안이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는가 이다.
기존 도시 모델을 바꾸기 위해 삶의 질을 우선하는 도시 정책의 전환 포인트를 만들고 이를 역사, 문화 콘텐츠를 통해 실현해 나간다는 것은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도시를 변화시켜 나간다는 것은 공공이 소유한 자원의 동원 방향 등 큰 비용과 사회적 결정을 수반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상적인 도시 개발 및 관리 방향 속에서 이를 실현해 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평소의 문제들 (행정과 문화정책이 도시 차원에서 다뤄지는)에 대한 진단과 처방 없이 사업의 성공은 보장될 수 없다.
전라감영복원사업이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예외적으로 인식하고 싶은 욕망에서 출발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