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07.8 |
[정현숙의 잘 사는 이야기] “장마의 끝에서”
관리자(2007-08-14 19:47:06)
<b>“장마의 끝에서”</b>   산 속에서는 일기의 변화 계절의 변화가 명명백백, 너무나 뚜렷하다. 더구나 햇볕에 전기에너지를 의존하고 사는 우리 집은 흐린 날과 개인 날의 차이가 그렇고 그런 기분만의 차이에 그치는 게 아니다. 오늘 일용할 전깃불을 구하느냐 못 구하느냐의 차이로 갈라서고, 이제 붉은 고추를 따서 널어놓는 이 철에는 저 고추가 오늘 햇살에 마르느냐 오늘 구름에 곯아 문드러지느냐의 차이가 되기도 한다.   다행히 장마의 끝자락인 오늘은 예보와 달리 장대비가 오지 않고 구름 사이로 가끔씩 쨍쨍한 볕이 나오는 날씨라 냉장고까지 덤으로 돌아가고 있다. 감사!   자연은 정말 대단하다. 가뭄에 채소밭이나 어린 나무에라도 물을 줘 보면 아무리 넉넉하게 갖다 부어도 잠시 비 한 줄기 뿌리는 거에 미치지 못하고, 뭘 말려 보려고 방에 불을 때고 선풍기 바람을 돌려 봐도 쨍한 햇볕 잠깐 비추는 것에 견주지 못한다.   그러니 애써 하려고 할 일이 아니라 자연의 흐름을 잘 읽어 비 올 때 씨앗 뿌리고 해 날 때 고추를 딸 일이다. 그것이 안 되면, 아직 농사 급수가 모자라는 거지. 농사도 하늘이 말리면 못 짓는다고 하지 않던가. 그래서 어줍잖은 농사를 짓는 나도 하늘의 눈치를 수시로 살핀다.   천천히 지나가지만 조금도 어김이 없는 계절. 봄 가뭄에 좀체 자라지 못하던 오이도 장마를 지나면서 넝쿨을 쭉 뻗어 아침마다 길쭉길쭉하게 새로 굵어진 오이가 열리고, 토마토도 붉게 익어간다. 어느새 우리 마당에도 백련이 피고 해바라기가 장대하게 자라 그 당당한 꽃을 피우고 있다. 어쩌면 그리도 확실하게 크고 확실하게 노란지. 여름 꽃은 푸른 잎 속에 보일 듯 말 듯 붉게 비치는 범부채나 보라색으로 자잘하게 피는 박하 같은 꽃도 감동을 주지만, 해바라기나 다알리아, 호박꽃처럼 나 여기 있다고 호기있게 마당을 밝히는 꽃들이 역시 제격이다.   장마철은 일 년 농사의 중간점검 시간이다. 우리도 벌써 몇 가지나 수확(?)을 했다. 제일 먼저 차를 땄고, 그 다음에 매실, 오디, 마늘, 양파, 차밭 둘레에 제멋대로 자라서 붉게 익은 야생 복분자, 그리고 지금 오이, 토마토, 가지.   복분자를 따러 다니던 밭에서 어진이와 나는 작은 새집을 봤다. 어떻게 그런 곳에 집을 지었을까. 복분자 줄기 몇 가닥 사이에 풀을 모아 걸쳐놓은 집. 처음에 나는 새들이 떠나간 빈 집인 줄 알았다. 어진이가 갖고 싶다고 해서 헤쳐 보는데 그 속에 파란 새알이 있었다. 하나, 둘, 셋, 넷……, 모두 네 개였다. 어진이 주먹 하나도 안 들어갈 둥지 속에 하늘색 조그만 알들이 네 개나 들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복분자 잎사귀 몇 개가 그 위로 겹쳐지며 둥지를 덮고 있었다. 얼른 다시 덮어 두고 돌아왔는데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비가 내렸다. 아직 알이니까 괜찮겠지 하고 이틀 뒤에 갔더니 세상에! 이번에는 그 속에 짹짹 소리도 못하는 갓난아기새들이 소복 들어 있었다. 다시 황급히 덮어두고 돌아왔는데 그 다음 날 다시 비가 내렸다. 천둥까지 치고. 무사할까, 젖지 않았을까 궁금해 하며 며칠 뒤에 갔더니, 여전히 어린 그 새들이 입을 벌려가며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이젠 됐다. 그 후로 우린 복분자도 끝난 그 쪽으로 더 가지 않았다.     농약도 안 치고 먹을 것도 많은 우리 밭 주위에는 원래 새들이 많다. 콩밭에는 아예 꿩들이 진을 치고 사는데 학교 갈 때와 올 때 늘 마주치는 장끼를 본 어진이가 어느 날은 큰 발견이나 한 듯이 꿩이 정해진 시간에 나온다고 엉뚱한 소리를 했다. 아침 여덟시 몇 분에 나오고 오후 네 시에 나오는데 아마 열두 시에도 나올 거라나. 내 생각에는 어딘가에서 알을 품고 있을 까투리를 지키는 것 같았는데 정말 네 시간마다 나왔을까? 여름이 되면서 그 장끼는 안 보이고 아직 날개가 덜 자란 꿩 병아리가 밭고랑 사이로 들락날락한다.   그리고 복숭아. 복분자 옆에 심은 복숭아는 봉지도 안 씌우고 거름도 안 줬건만 향기롭게 익어 우리는 몇 주일간 매일 밭을 들랑거리며 차례로 익어가는 복숭아를 따먹었다. 내년에 나무들이 자라서 더 많은 복숭아가 열리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다가 마음을 고쳐먹었다. 욕심. 그렇지. 복숭아가 아주 많아서 행복할 수도 있지만 내 손으로 심은 나무가 자라 향기로운 열매를 맺었다는 건 분명 그냥 맛있는 과일을 먹었다는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옥수수나 감자처럼 그해 심어 그해에 수확하는 작물들과도 또 다른 느낌, 그것은 ‘오랜 시간이 지난 뒤’를 생각하며 땅에 한 그루의 나무를 심었고, 그 나무를 잘 가꾸어 나와 가족들이 그 열매를 먹었으며, 이 후로도 오랫동안 나무는 해마다 복숭아를 주렁주렁 열어 많은 사람들이 먹을 수 있게 된다는 의미가 들어있는 그런 것이었다. 어쩌면 사람으로 태어나서 이 땅 위에 뭔가 보람있는 일을 할 수 있다면 그건 바로 나무를 심는 일이 아닐까 싶다.   이제 장마가 끝자락이다. 자귀나무 꽃이 필 때면 농사일이 한가할 때라 친정나들이를 간다던 동네 아주머니의 말마따나 장마 내내 자귀나무꽃이 피었고 이제 그 꽃이 진다. 장마가 끝나고 고추 따서 널어 말리고 참깨 터는 일철이 다시 시작되었다는 뜻인가. 우리도 벌써 붉은 고추를 따서 말리기 시작했다.   어느 새인지 모르게 짙어진 녹음, 쓰르라미와 매미, 새들이 요란하고 잠자리가 높이 날아오르면서 이제 불볕더위가 눈앞에 있고, 장마를 핑계 삼아 한가롭던 마음도 바빠질 것이다. 그리고 여름은 콩밭을 키우고 수숫대를 키우는 불볕과 함께 또 몰래 가을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