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8 |
[이종민의 음악편지] "기다림의 즐거움"
관리자(2007-08-14 19:38:03)
“기다림의 즐거움”
내 고장 유월은/ 청매실 익어가는 시절/ 내 마음 절절한 소망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바람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해마다 유월이 오면 파란 바람과 소망을 추수하는 작은 축제를 벌이곤 합니다. 제 고향 ‘화산 양지 바른 곳의 띠 집’(華陽茅齋)에서, 감히 이육사 시인을 흉내 내며 말입니다. 이 잔치를 위해 그 긴 겨울과 그 화사한 봄을 마냥 흘려보낸 것처럼 그 기다림은 절실하기만 합니다. 기다릴 거리가 많은 삶이 아름답고 풍요롭다 할 수 있다면 매실은 정녕, 적어도 저에게는, 그러한 것들을 제공해주는 깊은 샘물과 같은 것입니다.
매실나무 몇 그루 된다고 이런 흰소리? 의아해 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제 친애하는 친지 벗들과 더불어 한동안 부산하게 즐기기에는 충분한 양인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두어 차례에 걸친 매실 따기 이후에도 노랗게 익어 땅에 떨어져 뒹굴고 있는 것들이 죄스러울 정도로 많은 것만 보아도 즐길 수 있는 이상의 양이었다는 것은 쉬 짐작할 수 있는 일입니다. 게다가 매년 그 수확량이 늘어나고 있으니… 별스런 걱정으로 가슴이 멍하니 뿌듯하기만 합니다.
올 총 수확량 450kg. 매실즙 용으로 90kg, 매실술 용으로 50kg, 매실장아찌 용으로 20kg. 나머지는 매실 좋아하는 벗들과 나누어 가졌습니다.
이제 매실즙이 울어나고 술과 장아찌가 익어가기를 다시 기다려야겠지요. 한여름 땀 흘리고 헉헉 숨고르기 하다보면 9월. 그때에 이르면 또 다른 수확의 기쁨을 나눌 수 있습니다. 매실즙 걸러 친애하는 친지들과 나누어 갖는 즐거움이라니! 알맞게 익은 술 걸러 화양모재 아담한 뜰에서 가을날 작은 음악회 마련하는 것은 또 어떻고요.
그러고 나면 다시 매실 수확할 때까지 그 긴 세월을 허송, 기다려야 하나? 천만의 말씀! 매실즙 거르고 그 매실에 다시 소주 부어야 지요. (이건 비밀인데요. 생매실에 그냥 소주 부어가지고는 제대로 된 매실술 얻을 수 없습니다. 그것하고 매실즙 걸러내고 소주 부어 울어낸 것을 적당하게 섞어야 감칠맛 나는 매실술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제대로 된 매실술은 12월이 되어야 맛볼 수 있답니다.)
그때까지 멍하니 기다릴 일은 또 아닙니다. 그거 울어나는 동안 풍요와 다산의 상징답게 턱없이 많은 가지를 내뻗은 매실나무 전지하다보면 12월. 그 매실주 걸러 매실 장아찌 안주 삼아 흰 눈 속에서 매화 피어나길 기다리다 보면 어느덧 춘삼월. 봄바람에 그 매화 흩날리는 모습 바라보며 흥청망청 하다보면 다시 청매실 익어가는 시절! 이처럼 매실농사는 3개월을 단위로 새로운 설렘 거리를 제공해준답니다!
이런 설렘의 기다림이 없다면 우리들 삶이 얼마나 팍팍할까? 오아시스 없는 사막을 아무런 기약도 없이 터덕터덕 걸어가는 꼴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그 팍팍함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기다릴 거리들을 하나둘 마련해 둘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기다릴 거리를 스스로 마련해둔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의지나 노력과 관계없는 것을 막연하게 기다릴 것이 아니라.
막연한 기다림은 ‘고도’를 기다리는 것처럼 허허로울 수 있습니다. 로또와 같은 횡재를 기다리는 것은 덧없는 일입니다. 설사 만난다 하더라도 그 허허로움을 가중시킬 뿐입니다. 횡재(橫財)가 횡재(橫災)가 되어 그 이후의 삶을 더욱 먼지 나게 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마련하기가 어렵다면 자연스럽게 오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 하나의 비책일 수 있습니다. 봄 되면 꽃피길 기다리고 여름 되면 비 오길 기다리고. 매실나무 심어놓고 매실 여물기를 기다리고 매실술 담가놓고 익어가길 기다리고.
저처럼 북한어린이 돕기 모금운동을 펼치는 것도 삶의 팍팍함을 넘어서는 한 방편일 수 있습니다. 매월 모금액 쌓여가는 거 바라보며 모금현황 보고드릴 날을 기다리는 것, 여간 쏠쏠하고 재미 진 일이 아닙니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북한어린이들 돕는 것 말고 자본세상에서 차갑게 굳어지기 쉬운 우리들 마음 따뜻하게 열어가는 것도 보람 있는 일입니다. 게다가 남들로부터 칭찬도 듣고 가끔 언론에 보도도 되고. 사실은 매실 익어가길 기다리는 것에 비길 일이 아닙니다.
나름으로 기다릴 거리를 마련해둔 사람은 여유로울 수 있습니다. 초초해하며 남의 눈치를 살피지도 않으며 조급하게 굴며 스스로의 성정을 강퍅하게 만들지도 않습니다. 안빈낙도(安貧樂道), 바로 그런 경지에 이를 수 있는 것입니다.
12세기 초 이자현(李資玄)이라는 선비가 있었답니다. 이 분은 나라의 음악을 관장하는 대악서(大樂署)라는 높은 지위에 올랐지만 어느 날 홀연 벼슬을 버리고 청평산(淸平山)에 들어가 자연에 묻혀 거문고를 타며 살았습니다. 기다림의 기대를 저버리기 쉬운 세속으로부터 스스로 벗어나 그 기대를 여지없이 채워주는 대자연에 몸을 맡긴 것입니다. 그분의 시 [낙도음](樂道吟)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한 곡조 타도 무방하지만 不妨彈一曲
알아들을 사람이 너무 적구나 祈是小知音
도를 즐기며 살아가는 이의 현묘한 경지를 이해하는 사람이 많지 않음을 탄식하는 내용인가? 아니 스스로의 처지에 만족하며 홀로 그 고고한 경지를 즐기는 흥취를 읊은 것이라 해야겠지요. 기다림의 즐거움을 스스로 조성해가는 지족(知足)의 삶!
황병기 선생의 최근 작품에 같은 이름의 거문고 독주곡이 있습니다. 낙도음, 굳이 풀자면 ‘도를 즐기는 이의 읊조림’ 정도가 아닐까요? 세속의 흐름에 굴하지 않고 독특한 음악세계를 열어가고 있는 황병기 선생, [소엽산방] 이후 오랜만에 접하게 되는 거문고 독주곡입니다. 4악장으로 이루어진 꽤 긴 곡입니다.
거문고 연주는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의 부수석인 허윤정이 맡았는데 그의 첫 음반 [일곱개의 시선]에 실려 있습니다. 황병기 선생의 심오한 여유와 허윤정의 부드러우면서도 깊은 손맛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연주가 아닌가 합니다.
이 곡 들으시며 무더위마저 즐길 수 있는 너그러움 키워 가시기 바랍니다.
이종민ㅣ전북대 교수·전주전통문화도시조성위원회 위원장
※ http://e450.chonbuk.ac.kr/~leecm로 접속하시면, 그동안의 음악편지와 음악을 직접 들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