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8 |
[김규남의 푸진사투리] “흥! 오두가 났나? 왜 저 모양인구?”
관리자(2007-08-14 19:32:24)
<b>“흥! 오두가 났나? 왜 저 모양인구?”</b>
김규남 언어문화연구소장
세간에 ‘어처구니’가 ‘맷돌의 손잡이’라는 주장이 있다. 이 말이 쓰이는 상황을 고려해 보면 이 주장은 신기할 정도로 적절하고 실감나는 표현이다. 콩이나 팥을 삶아 가지고 맷돌 앞에 섰을 때 맷돌의 손잡이가 없는 상황을 상상해 보라. 이 얼마나 황당하고 무계한 일인가. 그러니 당연히 상식 밖의 해괴한 일을 당했을 때 ‘어처구니없다’라는 말은 가히 빛나는 표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맷돌 손잡이 이름이 ‘어처구니’인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그래서 그런지 네이버 창에서도 ‘어처구니’의 어원에 대해 아마추어 어원학자들의 논쟁이 뜨겁다. 기와를 맞추려면 요철이 있어야 하는데 그 요철에서부터 ‘요철구니’라는 말이 나왔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 ‘엄청’이라는 말에서 ‘엄청구니>어처구니’가 나왔다는 사람도 있다. 이쯤 되면 어원학자의 도움을 받아야 할 상황이지만 어떤 단어의 출발을 과학적으로 밝히 드러내는 일은 역시 난제 중에 난제이다. 그래서 어원을 밝히는 일에는 응당 민간어원설(folk etymology)이 난무할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민간어원설은 대부분 아주 예리한 관찰과 풍부한 상상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래서 그 자체가 창작의 영역에 포함되는 것 같다. 민간어원설의 한 예로 ‘얼굴’이란 말이 ‘정신(얼)이 드나드는 굴’이라는 주장이 있다. 즉 ‘눈, 코, 입, 귀’가 모두 굴의 형태이며 그 속으로 정신이 드나들기 때문에 얼굴이라는 표현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 주장 역시 ‘어처구니’만큼이나 일리가 있어 보이지만 기실 이야기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재미있다. 그 재미의 원천은 나름대로 이치가 있고 그 이치의 바탕에 세밀한 관찰과 상상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충분히 훌륭한 창작이라고 할 만하지 않은가. 우리 역시 그에 대한 과학성을 따지기보다 그저 흐뭇한 마음으로 즐기면 될 일이다.
채만식의 소설 태평천하에 ‘오두가 나다’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 역시 선뜻 그 뜻을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다. 먼저 ‘오두가 나다’라는 말이 어떤 상황에서 사용되었으며 그러한 어휘 사용에 어떤 내막이 숨겨져 있는가에 대해 살펴보자.
① 짝 찢을 년! 그년이 서방이 안 돌아부아주닝게 오두가 나서 그러지, 오두가 나서 그리여! <서양국 명창대회>
② 윤 직원 영감은 <중략> 며느리 고씨더러, 짝 찢을 년이니 오두가 나서 그러느니 한바탕 귀먹은 욕을 걸쭉하게 해 주고 나서야 적이 직성이 풀려 <마음의 빈민굴>
③ ‘흥! 누구 말마따나, 오두가 났나? 왜 저 모양인구? 암만 그래보지? 내가 애먼 화풀이를 받아주나·····.’<관전기>
위의 예문 ①, ②는 며느리 고 씨의 불편한 심기와 그 행실에 대해 윤 직원 영감이 걸쭉하게 욕지거리를 섞어 폄하하는 말이며, ③은 그의 청맹과니 손자 경손이 제 조모 고 씨의 나무람을 고깝게 여겨 하는 말이다. 위의 예문에서 ‘오두가 나다’는 모두 고 씨가 마음이 언짢아서 하는 행태에 대해 윤 직원과 그의 손자가 비아냥대거나 대놓고 폄하하며 하는 표현이다.
이러한 상황을 토대로 ‘오두가 나다’를 사전적으로 풀이하자면 ‘언짢은 일을 당하여 심기가 몹시 불편해지다’로 표현할 수 있다. 시쳇말로 치자면 ‘골이 나든 뿔이 나든’ 한 상황이다. 우리에게 ‘오두’라는 말은 보통의 경우 ‘오두방정’으로만 사용된다. 그래서 ‘오두’만을 따로 분리했을 때 ‘오두’의 정체는 좀체 오리무중이다. 이런 경우는 ‘방정’과 관련된 여러 어휘들의 속성을 살펴 그로 말미암아 ‘오두’의 정체에 다가서는 것이 순서이다.
‘오두방정’과 가장 가까운 것은 ‘초라니방정’이고 그 외에도 ‘입방정’, 전라도에서는 ‘깨방정’이란 말도 있다. ‘초라니’는 ‘음력 섣달 그믐날 밤에 대궐에서 악귀와 사신을 쫓는 나례(儺禮) 의식을 거행하는 자로 황금빛의 네 눈과 방울이 달린 곰 가죽을 씌운 큰 탈을 쓰고 붉은 웃옷에 검은 치마를 입었다고 하니, 그 모양이 어떠했을지 짐작할 만하다. 홍길동을 죽이려는 홍 판서의 첩 초란의 짓이나 하회별신굿에서 양반을 놀리는 ‘초랭이’의 방정맞은 행동 역시 모두 ‘초라니방정’으로부터 비롯되었을 것이다. 또한 ‘입을 재게 놀려 떠는 방정’은 ‘입방정’, ‘깨를 털 듯, 깨가 튀듯, 깨처럼 자디잘 듯’ 떠는 방정은 ‘깨방정’일 것이니, ‘방정’도 떠는 모양에 따라 ‘초라니, 입, 깨’ 등의 어휘가 사용된 것을 알 수 있고 ‘오두’ 역시 그와 관련된 한 방편임을 알 수 있다.
일각에서는 ‘오두’가 ‘괴상한 잡것이나 또는 온갖 잡귀를 낮잡아 이르는 말’ 즉 ‘오도깨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그 주장을 빌자면 ‘오두가 나다’는 ‘괴상한 잡것이나 잡귀’처럼 된 상태이며 그로 말미암아 방정을 떠는 것이 ‘오두방정’인 셈이다. 그리고 그 상태가 더 심해지면 ‘오두발광’을 하게 된다. ‘오두’가 ‘오도깨비’에서 왔는지에 대한 주장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오도’와 함께 출현하는 동사 ‘나다’에 어울리는 명사들 ‘화, 심술, 짜증, 신경질, 골’ 중에서 ‘뿔’까지 있는 것으로 보면 ‘오두가 나다’는 평상심이 깨져 불덩이 같은 화가 치밀어 오른 상태이니 붉으락푸르락한 그 얼굴에서 ‘도깨비’를 연상할 만하다. 게다가 ‘초라니, 깨, 입’으로는 발광을 하기 어렵지만 ‘도깨비’는 발광을 함 직도 하다.
그러니 ‘오두방정’에서의 ‘오두’는 ‘초라니방정, 깨방정, 입방정’ 등에서 ‘초라니, 깨, 입’과 ‘방정’이 분리될 수 있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분리될 수 있으며, 악귀를 쫓는 초라니의 모습이나, 깨와 관련된 일련의 행위나,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미주알고주알 쏟아내는 말본새 등과 관련하여, 방정을 떠는 또 다른 상태다. 게다가 ‘방정’에서 그 세기를 더하여 ‘발광’에 이르는 데는 ‘오두’만이 그 자리에 설 수 있다. 그러니 ‘오두’가 성질 사나운 ‘오도깨비’의 행태를 담고 있을 만하다.
작가 채만식은 ‘오두’와 ‘방정’을 분리하여 사용하였다. 그가 우리에게는 낯선 방식으로 제시한 ‘오두가 나다’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오두’를 ‘오도깨비’로 인식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우리는 한 작가가 가진 세밀한 언어의식으로부터 그 단어 속에 숨겨진 진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그에 대해 좀더 세밀하게 다가갈 기회를 가진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