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8 |
[문화시평] 2007 바젤 아트페어 참관기
관리자(2007-08-14 19:26:58)
일상의 삶속에서 미술문화 깊게 향수하기
최효준 | 전북도립미술관관장
17세기 초 유럽에서 유행하던 문화탐방여행 ‘그랑 투어(Grand Tour)’는 영국에서 시작되어 남유럽에 이르는 코스였는데, 2007년 미술의 ‘그랑 투어’ 코스는 거꾸로 남유럽 베니스(이탈리아)에서 시작하여 바젤(스위스)과 카셀, 뮌스터(독일)를 거쳐 런던(영국)의 경매장을 향했다. 6월 10일 베니스 비엔날레, 12일 바젤 아트페어, 16일 카셀 도큐멘타, 17일 뮌스터 프로젝트가 연이어 개막되고 18~19일 런던에서 주요 미술 경매가 열려, 현대미술과 그 시장 동향에 관한 세계적 관심의 궤적이 17세기 그랑 투어의 역방향으로 북상했다.
수개월씩 계속되는 여타 행사와는 달리 ‘미술의 올림픽’이라고 불리는 38번째 바젤 아트페어 ‘아트 바젤(Art Basel)’은 엿새 동안 열렸다. 스위스, 프랑스, 독일의 접경지역, 라인강변에 위치한 인구 20만의 소도시 바젤, 시내의 행사장 ‘메세 바젤’의 공기는 세계 미술시장의 지글거리는 열기로 유례없이 뜨거웠다. 200여대의 전용기가 인근공항에 뜨고 내렸고 6만명의 방문객이 다녀갔다. 한국 화랑으로서는 국제갤러리와 PKM갤러리가 참가했는데 대체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한다. 베니스에서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이우환의 작품 등이 여러 화랑 부스에서 눈에 띄었다.
오늘날 전례 없는 세계 미술시장의 활황세는 거품 붕괴를 경고하는 우려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4~5년간 지속되리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작년 세계 미술시장의 규모는 300억불(28조원)로 추산되고 올해 그것이 500억불(47조원)까지 확장되리라는 전망도 있다. 그 원인은 다음과 같이 분석된다.
세계적으로 과잉 양상을 보이는 유동성, 주요 국가에서의 나타나는 저금리와 완화된 대부 정책, 그리고 부동산 경기의 둔화, 경제개발대국 중국, 인도, 러시아, UAE의 신흥 자본가들의 진입, 투자대상이 마땅하지 않은 상황에서 상대적 고수익율의 이점, 헤지펀드와 아트펀드 등 대형 자금의 지속적인 유입, 신흥 부호로서 높은 사회적 신분과 세련된 취향을 과시할 수 있는 미술품 소장에 따른 매력, 그리고 유증자산으로서의 미술품의 이점 등등... 이들 요인의 플러스 효과가 미술품 투자의 전형적인 단점 (낮은 유동성, 높은 거래비용, 긴 보유기간, 양질의 작품과 정보의 만성적 부족 등)의 마이너스 효과를 상쇄하고도 남는 것이다.
이번 바젤 아트페어에 출품된 주요 작품의 분포 양상에서도 드러났지만 오늘날의 세계 미술시장은 작년 기준 낙찰총액이 10조원에 이르는 경매시장이 주도하고 있다.
경매가격이 실 가치를 반영하는 적정가가 아닐 수 있다는 구조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경매는 국내외적으로 미술품의 주된 거래방식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경쟁심, 흥분, 즉각적인 결정의 필요로 혈중 아드레날린을 샘솟게 하는 경매 고유의 속성을 선호하는 오늘날 미술계의 취향 변화는, 한 자리에서 한꺼번에 다양한 판매자와 작품을 만날 수 있고 한정된 시간 안에 즉시 구매를 결정하는 아트페어의 성격과도 통한다. 올해 바젤에서는 세일 날 백화점 개장과 동시에 고객들이 다투어 달려들듯 작품의 선점 경쟁까지 연출되었다.
이제 수년전까지 만해도 유수의 아트페어 장에서 느낄 수 있었던 애호가들 특유의 섬세하고 은근한 여유와 심미(審美)의 분위기는 거의 사라졌다.
적지 않은 애호가들, 작가들, 그리고 도저히 좋은 작품 취득의 차례를 맞지 못하는 공공미술관 관계자들은 그 점을 아쉬워하였다.
그런데 바젤 아트페어의 특징은 세계 유수의 딜러들이 저마다 위력을 뽐내는 300개의 부스로 이루어진 공간이 전부가 아니라는데 있다.
‘메세 바젤’ 주 전시장, 그 ‘이성을 잃은 듯한’ 시장의 열기 속에서 자본의 위력에 주눅 드는 이들도 눈과 발길을 조금 돌려보면 다양하고 치밀하게 준비된 흥미로운 부대 프로그램들과 만날 수 있다. ‘아트 언리미티드(Art Unlimited) 프로젝트’는 부스 전시의 제약을 뛰어넘을 목적으로 기획되었고 드높은 천장고의 전시장에 발상, 개념, 매재 면에서 예상을 뒤엎는 작품들이 많았다.
전시장 밖에 '퍼블릭 아트(Public Art)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설치된 애니쉬 카푸어의 거대한 오목거울, 폴 맥카시의 6미터 높이의 외설스러운 산타 등 아홉 점의 조형물은, 현대미술의 장(場)이 “해방된 판타지, 우스꽝스러운 풍자, 적나라한 사회적 발언”(피터 아스프덴)으로 점철된, 우리 마음을 빼앗는 스릴 넘치는 매혹의 장임을 말해 준다. 전문가와 관객이 만나는 대담 행사도 이루어져 급변하는 환경 속 당대 미술관의 새로운 역할과 위상 등에 관한 토론 등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이렇듯 다양하고 풍성한 행사 속에서 경제 논리는 문화의 외장 속에 잘 숨겨져 있었고 문화적 가치는 적어도 외형상은 경제 논리에 종속되지 않아 보였다.
바젤은 그 미증유의 열기와 직접 관련이 없는 단순한 애호가들이나 비영리부분의 관계자들에게도 많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고전미술과 현대미술이 어우러진 바젤 쿤스트뮤지엄에서는 방대한 규모의 상설전과 함께 쟈스퍼 죤스의 회고전이 열리고 있었고, 바젤 아트페어의 산파였던 화상(畵商) 에른스트 바이엘러(Ernst Beyeler)가 설립한 렌조 피아노 설계의 바이엘러 재단 미술관에서는 빼어난 풍광과 하나가 된 건축물 속에서 전무후무할 규모의 뭉크의 회고전이 빛났고, 기업과 지자체의 합작인 샤우라거(Schaulager) 미술관은 그 독특한 건축미가 로버트 고버의 대형전시를 잘 살려주고 있었다.
방금 전 ‘메세 바젤’ 주 전시장의 그 강한 열기가 이 고즈넉한 도시의 한 구석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오히려 생경한 느낌으로 기억되었다.
걷잡을 수 없이 타오르는 화염은 언젠가 잦아지게 마련이다. 과열된 시장이 조정국면에 들어서기까지 수년 사이에 적지 않은 성공 사례들이 알려지겠지만 적어도 미술 시장에서 단기 투자의 효과가 증권, 부동산 투자의 경우와 별 다름이 없을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든다. 시장 가치는 부침을 겪으며 장기적으로 상승할 것이나 단기적으로는 타 분야에서처럼 산이 높으면 골도 깊을 것이다. 단기적으로 접근하면 ‘타이밍의 게임’이 되어, 승자가 있으면 패자도 있고 큰 성취에는 위험도 따를 것이다.
재 속 깊이 늘 꺼지지 않고 살아 있는 은근하고 진득한 불씨가 없이는 기세 좋은 화염을 생각할 수 없다. 샤우라거 미술관과 바이엘러 미술관의 입장료는 15프랑 내외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곳은 누구라도 만오천원 내외의 돈을 지불하고 최고의 미술관에서 최고의 전시를 관람할 수 있는 인프라가 풍부한 곳이었다. 시장과 작품 값에 대한 정보도, 구매 능력도 없는 다수 대중도 얼마간의 대가를 지불하면 풍성하기 그지없는 미술문화를 향수할 수 있는 토양이 거기 있었다. 그 위에서 미술 문화가 꽃 피고, 부침(浮沈)을 겪으면서도 미술품의 장기적인 가치 상승이 있고, 불멸의 미술품의 창작이 이루어지는 것이리라.
십수년전 필자가 진행한 삼성미술관의 <팝아트의 슈퍼스타 앤디 워홀>전시에 워홀의 대작 수십점을 대여해준 이가 스위스 취리히의 브루노 비숍버거였다. 그와 바이엘러 등은 모두 화상(畵商)이지만, 한 세기 가까운 세월에 걸쳐 이루어진 그들 컬렉션의 양과 질은 그것으로 세계적 미술관을 설립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전설적인 헤지펀드의 운용자 슈타인하트나 코언 등은 각각 수십년동안 미술 분야에서 수억불을 투자하고 수억불을 버는 수집광이기도 한데, 오늘에 이르기까지 많은 시장의 큰손들이 안목과 애정과 열정을 가진 애호가들이었고 그들이 바로 이 엄청난 시장의 초석을 놓은 것이다.
현대미술의 새로운 강국 중국을 생각한다. 157개의 경매장에서 2조원 규모의 거래가 이루어지는 미증유의 활황을 구가하는 현상만이 중국미술의 전부가 아니다.
수십만명의 큰 손 컬렉터가 꽃이라면, 국전이 열리는 북경과 각 지방의 미술관 전시장을 가득 메우는 허름한 내의 바람에 수천만의 서민 애호가는 그 뿌리다. 세계적으로도 가장 전위적인 중국미술의 ‘후위’에는, 전통적 양식에 기반을 둔 ‘한물간’ 스타일의 중국화와 당대 리얼리즘의 이념과 서양미술의 패러다임을 융합시킨 ‘한물간’ 스타일의 서양화와 판화에 천착하는 수십만의 화가와 그들의 노작을 향수하는 수천만의 애호가들이 구성하는 깊고 넓은 수원(水原)이 엄존한다.
한편에서 미술은 바뀌고 있다. 전지구적 주제에 관해 국지성에 입각하여 강력하게 발언하는 전시가 늘고 있다. 제3세계 작가의 역사, 정치, 사회, 문화적 발언이 절묘하게 시각화되어 서구 대중의 공감을 유도하는 ‘시각자료형’ 작품들이 넘쳐나는 곳이 베니스, 카셀, 뮌스터의 전시장이고 바젤도 그 연장선상에 있었다. 보고, 보여주는 새로운 방법을 끊임없이 탐색하는 현대미술은 속성 상 ‘시장 시스템’의 틀 속에 온전히 가두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만일 그리되는 순간 그 가치의 무한한 잠재성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에.
베테랑 아트펀드 운용자들은 말한다. 미술품에 관한 최고의 투자는 ‘투자’ 자체에 대한 관심이 가장 적은 투자가에 의해 이루어지곤 한다고. 어느 매니저도 대신 보장해줄 수 없는 것은 투자자 자신의 열정, 즉 애호심이요, ‘애호’가 투자와 수집에 선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장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력이 거의 없는 듯 보이는 다수 대중의 애호가 층이 탄탄해져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유례없는 활황 국면 속에서 무력감에 빠져있는 많은 이들의 소리 없는 소리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벽에 그림을 잘 걸지 않는 시대에, 넘치는 고질의 영상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투자가 아닌 향수(享受)의 대상으로서의 미술품을 매개로 어떻게 대중과 소통할 것인지 함께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미술 시장은 다른 분야와는 달리 한 점 작품 당 그것을 구입할 단 한 사람의 컬렉터만 있으면 성립된다. 그러나 한편 시민사회의 미술은 다수 대중에 의해 최고의 조건에서 향수되어야 한다. 이러한 시기에, 과거 서구 미술계의 거상(巨商)들이 그러하였듯이, 입장료 정도를 지불할 능력이 있는 이들을 배려한 정말 좋은 공사립 미술관의 신설과 그 내실화와 양질의 프로그램 개발을 위한 나눔과 배려의 움직임이 시작되어야 한다. 그로써 부침(浮沈)하면서도 장기적으로 성장하고 갈수록 견실해지는 시장을 만들어 가는 길을 닦게 될 것이다.
오늘날 한국에서도 수도권 미술시장은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한국처럼 수도권 편중이 심한 나라도 세계적으로 없을 것이다. 지역의 미술애호가들 가운데서도 미술품 수집에 대한 관심을 늘고 있지만 결국 수도권 시장에 의존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투자 의지보다 애호심이 앞서야 할진대, 우리 지역에서 일상의 삶 속에서 미술문화를 깊이 있게 향수 하는 것, 그것을 위하여 지역적 정체성을 바탕으로 한 문화감수성과 감식안을 키우는 일이 먼저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내적 만족과 현실적 성과가 함께 하리라고 믿는다.
최효준/ 서울대 상과대학에서 경제학 전공. 미국 미시간주립대 경영학 석사과정과 서울대 인문대학 미술사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박사과정을 중퇴. 삼성미술관 수석연구원, 서울시립미술관 수석큐레이터를 지냄. 2004년 5월부터 전북도립미술관장으로 재직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