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8 |
[문화시평] 박동화 Ⅱ 독백(獨白)
관리자(2007-08-14 19:24:33)
열정의 주문(呪文)이 불러내는 연극 개론
여원경ㅣ문화기획자
연극을 통해 펼치고자 했던 끓어오르는 순도 100%의 꿈과 사랑! 목 놓아 외치지만 목이 메어버린 관객을 향한 터질듯 한 사랑! 아니 시커멓게 타들어 가버린 짝사랑! 그 다하지 못한 사랑이 혼령이 되어 아직도 공연장을 맴돈다.
사람들은 누구나 나름의 아름다운 얘기들을 간직하고 살아간다. 잠시 눈을 감고 떠 올리면 오래지 않아 입 고리를 살짝 잡아당기는 결코 빼앗기거나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자신의 소중한 보물 같은 이야기 말이다.
‘독백’은 아기로 태어나 백발이 성성한 머리칼을 휘날리며 한 평생 무대 위에서 사라질 때까지 인생에서 예정된 대사를 모두 마치고, 퇴장하고 싶었던 故 박동화 선생님을 중심으로 이상과 열정을 가지고 함께 무대를 만들어왔던 연극인들의 풋풋한 삶을 담은 이야기이다. 단순한 시대의 반추가 아닌 연극을 생각하면 벅차오르는 감정에 완벽한 꿈과 사랑을 담아낼 수 없어 화려한 커튼콜을 거부했던 선생님의 열정, 부서지고 다시 연희되는 연극이라는 거대 판에서 후배들의 입을 빌어 인생의 못다 한 대사를 들리는 ‘독백’으로 꾸민 연극이다.
경험의 거울 같은 무대 위 세 장의 액자 틀에 선생님을 기억하게 만드는 에피소드의 연결과 생존 당시 올린 작품들의 재구성을 긴밀히 오가며 새날의 아침에 더욱 더 깨끗하고 밝게 되살아나는 열정을 담고 있다.
단체장의 말 한마디에 전주시민회관의 천정이 봉합되는 사건, 권력의 편에 전락해버리는 언론사와의 논쟁, 길상(백민기 분)의 죽음 등은 불모지에서 시작된 연극의 밑동잡기가 어려웠음을 짐작케 한다.
또한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거대하고 위대하게 현시되는 선생님의 모습이 아닌 언제나 작아질 수밖에 없었던 인간적인 애환을 담고 있다. 과거를 존중하고 좋은 특질을 소중히 여기고, 실수에서 지혜를 빌리고, 상처와 실패를 승화시켜 왔던 시대의 모습을 잔잔한 연출로 보듬는다.
이상적인 삶으로서가 아닌 친근한 이야기로 무대 위의 질문과 형상화는 현재에도 밀접하게 닮은 구석이 있어 현재까지 통용되는 명제이다.
‘독백’은 연극에 대한 작가(김정수)의 고민이 작가로서 박동화를 ‘독백’으로 담아내고, ‘독백’에 대한 연출(류경호)의 고민이 박동화에 대한 극 속 연출(염정숙 분)의 고민을 통해 액자형태의 사진을 분석해 나간다.
사건이 전개됨에 따라 사진은 분해되고, 과거와 소통하기 시작한다. 마지막 툭 터져버린 무대 위에 박동화(고조영 분)의 혼령과 과거의 박동화(조민철 분)는 시대는 변했어도 여전히 산재되어 있는 현실적 딜레마를 안고 ‘그래도 막을 올리는’ 전북연극의 시간적 연속성이다. 전설적인 위인으로 묘사가 아닌 친근한 이웃이자 벗으로, 사랑과 열정으로 잉태시킨 연극은 무대 위 이상(연극정신)과 현실(자본)사이의 노정에서 극도로 분열되고 고뇌하는 연극인들에게 전환점으로서 진정한 삶과 의식들의 단면을 보여준다. 연극정신의 굴곡이 남겨놓은 시대적 흔적과 자취를 통해 새로운 정신의 궤적을 만들어 나간다. 보는 관객들을 찡긋거리게 하고, 무대를 사랑하고, 무대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열정을 가진 사람에게 친근하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도 여기 있을 것이다.
‘독백’은 권위주의, 물질 중시의 사회 통념을 배제하고, 이상의 실현을 통해 웃음과 희망을 주고자 했던 시대적 소명으로서 연극작업에 대해 이야기한다. 거대한 우주를 무대 배경으로 태양과 달빛의 조명을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 그릇으로서 연극 작업이 어떻게 하면 연극다울 수 있고, 소외되고 눌려 사는 사람들에게 운명의 지층들을 뚫고 넘을 수 있는지에 대한 연극인들의 사랑과 선의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다. ‘통속’하기만 한 인생이 ‘통속’하기만 하지 않은 것은 짐작이나 추측으로 알 수 있는 통속적인 내용 외에 사람과 부대끼고 엥기면서 더하여지는 보너스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화려한 무대 메커니즘, 풍족하진 않지만 적지 않은 지원속에서도 자꾸 과거에 허기지는 것은 흥행과 경제 논리에 휘둘리는 무대에 대한 귀찮음이다. 힘겨웠지만 아름다운 시대를 기억하는 몇몇 선생님들로부터 듣는 얘기가 있다. 춥고 배고팠지만 열정으로 뭉쳤고, 변변치 않은 무대였지만 동료의 풋풋한 채취가 있었던 시절로서 추억담이다. 또한 지하 공간의 퀴퀴한 냄새에 대한 동경과 땀 냄새로 얼룩진 볼 품 없는 사람들이 그리워진다는 시대의 편린들에 대한 동경심으로서 현재 연극에 대한 비판이다.
연극을 만드는 손길과 자기현시(自己顯示)만을 바라다 갈수록 퇴색해진 배우의 눈이 세상의 제 빛깔을 구별해내지 못하고 연극을 보는 사람들의 눈과 귀가 연극이 만들어내는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 본다.
대학교 때 우연히 접한 시(詩)가 떠오른다. <아무도 고요와 평화를 영원히 즐길 수는 없다 / 그러나 불행과 파괴가 끝은 아니다 / 초원의 풀이 불에 다 타버렸어도 / 여름이 되면 다시 그것은 자라나리라> 존 스탠톤의 시로 기억한다.
화려한 무대 메커니즘과 자본이 무대를 잠식하고, 땀과 열정으로 이어 온 무대를 현혹하고 있다 하더라도 연극을 만들며, 무대를 지키려 했던 연극인들의 열정이 덧없음은 아닐 것이다.
순간순간의 뼈마디로 이어져 가고 영원으로 통하는 낱알이 되어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와 소통하고 푸름을 더하며 곁에 자리하고 있다. 故 박동화 선생님의 씨를 뿌리는 마음도 그러하였을 것이다. 허영이나 거짓이 아닌 내 정성과 땀방울로 언제고 웃을 수 있는 언제나 흥얼댈 수 있는 기쁨으로 항상 무대를 꿈꾸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막은 오른다.
연극을 보고 나오며 스스로에게 다짐해본다. 욕망을 떨어뜨리고 나목(裸木)으로 서서 다시 사색을 시작해야 할 시간인 듯 하다. 내 이름 ―이세상의 연극에서 내가 맡은 이름― 이 사랑스럽다. 인생의 연극이 끝날 때까지 그리하여 내가 이 세상에서의 내 역할을 끝내고 분장실에서 화장을 지우고 의상을 벗을 그때까지 내 역할을 사랑하기 위해서 그리고 내가 해야 할 대사와 몸짓이 엉키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를 채근해야겠다. 그리고 아쉽고 못 다한 이야기가 없도록 하루하루에 열정을 더하여 살고 싶다. 나의 ‘독백’이다. 내 도플갱어의 ‘독백’이다.
여원경/ 현재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을 다니면서, 문화기획자로 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