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8 |
[서평] 『회남자』다문화주의 시대에 읽어야 할 고전
관리자(2007-08-14 19:19:32)
다문화주의 시대에 읽어야 할 고전
이유선ㅣ군산대 연구교수
우리가 어떤 책을 고전이라고 부를 때, 우리는 그 책이 단지 오래된 책이라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물론 고전의 반열에 오르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어떤 책이 그저 오래되었다는 것만으로 고전이 되지는 않는다. 그 책을 고전으로 만드는 것은 그 오랜 시간 동안 이루어지는 다양한 해석의 노력이다.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독자들에게 읽히면서, 그 시대에 맞게 새로운 해석이 시도되는 책이 고전이 되는 것이다.
고전은 그렇게 새롭게 해석되는 가운데 자신의 생명력을 유지한다. 독자는 자신이 속한 시대의 눈으로 고전을 읽게 되고 거기서 삶의 교훈을 얻는다. 따라서 고전이 된 책의 ‘진정한’ 의미를 찾는 것은 무의미할 뿐더러 가능하지도 않다. 책 속에는 사실 ‘고정된,’ ‘진정한’ 의미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떤 책의 의미가 고정되어 사람들이 더 이상 새로운 해석을 하려고 하지 않게 되면 그런 책은 결코 고전이 될 수 없다.
김성환의 이 책 『회남자--고대 집단지성의 향연』은 우리 시대의 눈으로 적극적으로 해석한 고전의 전형이다. ‘고대 집단지성의 향연’이라는 부제를 통해서 짐작할 수 있듯이, 저자는 중국의 유명한 고전인 ‘회남자’를 인터넷 시대에나 유행하게 된 ‘집단지성’의 발로였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세계화, 정보화, 다원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필요한 다문화주의적인 가치관을 기원전 2세기에 저술된 ‘회남자’로부터 끌어내고자 하는 의도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 것이다.
저자가 책 속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우리는 근본주의, 배타주의, 중앙집권, 집단의식, 위계질서에 대한 거부가 확산되는 가운데, 지방분권, 다원주의, 집단지성, 탈위계를 시대적인 가치로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정보기술의 발달을 배경으로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는 세계화는 지금까지 상상할 수 없었던 다원화된 사회를 만들어내고 있다. 세계화의 과정은 통합과 분화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과정이다. 신자유주의 경제는 다국적 자본을 형성하면서 국경을 점점 무력화시키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국경을 뛰어넘은 지역적인 공동체가 만들어지기도 하고, 이질적인 문화들이 소통되는 속도가 급속하게 빨라지기도 한다.
우리 사회도 이미 단원적인 사회가 아니다. 여덟 쌍 가운데 한 쌍이 국제결혼을 하고 있고, 이주노동자들이 없이는 국가 경제가 잘 돌아가지 않는 상황이 되었다. ‘한민족’이라는 말은 이미 우리 사회의 어떤 구성원들에게 상처를 주는 단어가 되었다. 국민국가를 단위로 하는 민족주의 이념은 유럽연합과 같은 지역 공동체를 이루어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동북아 국가들에게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저자가 ‘회남자’라는 고전에 집단지성이라는 인터넷 시대의 용어를 접목시킨 이유는, 노장 사상에 바탕을 두고 수많은 학자들이 저술한 이 책이야 말로, 다문화주의적인 가치를 확산시켜야 하는 오늘날의 시대적인 요구에 부합하는 고전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유방의 손자인 유안에 의해서 기원전 2세기에 편찬된 ‘회남자’는 수 천 명의 빈객 방사들에 의해 저술되었다는 점에서 ‘집단지성’의 산물이라는 평가는 부적절하다고 말할 수 없다. 더욱이 중앙집권적인 권력에 봉사했던 유학에 맞서 변방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다원주의를 옹호하고 있다는 점에서, 저자가 회남자를 포스트모더니즘과 유비시키는 것 역시 그럴듯하게 다가온다.
동양의 문화를 그저 유교문화권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던 필자와 같은 문외한에게 인의와 예의규범을 타락한 세상의 산물이요, 말세의 징표라고 말하는 회남자는 꽤 충격적으로 읽힌다. 회남자의 세계관에서는, 자연이란 상대적인 것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전체이기 때문에 그 안에 있는 어떤 것도 다른 것보다 더 우월하거나 열등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인위적인 가치규범을 절대화하기보다는 자연적인 도덕에 따라서 사고하고 실천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가 된다. 자연적인 도덕에 따른다는 것은 모든 것을 각자가 처한 상황에 맞게 바라보고 그 상대적인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질적인 문화들이 충돌하고 갈등할 수밖에 없는 다문화주의 시대에 가장 필요한 덕목을 회남자는 지적하고 있는 셈이다.
이 책의 미덕은 두 가지다. 첫째, 동양고전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는 사람이 읽기에도 쉽고 분명하다. 저자는 회남자라는 고전이 탄생하게 된 시대적, 사상적 배경을 친절하게 서술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해석의 관점을 매우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둘째, 어려운 고전을 재미있게 풀어놓았다. 저자의 독특하고 간결한 화법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고전의 한 가운데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물론 모든 강한 해석이 그렇듯이, 이런 미덕은 경우에 따라 독이 될 수도 있다. 독자에게 다른 해석을 시도해 볼 여지를 남기지 않는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을 읽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일단 3부의 본문을 먼저 읽고 나서, 1, 2부의 친절한 해설을 비판적으로 읽어 보는 것이다. 일단 통독을 했다면, 다시 3부로 돌아와 한 구절씩 음미해 보도록 하자. 이번 여름을 보내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이유선/ 고려대학교에서 문학사를 전공하고, 문학석사와 철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군산대학교에서 철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과학기술의 철학적 이해』, 『한중일 시민사회를 말한다』, 『현대사회와 소비문화』 등이 있고, 역서로는 『철학자 가다머 현대의학을 말하다』, 『프래그머티즘의 길잡이』, 『정의에 관한 6가지 이론』 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