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7 |
[문화현장] 열차도 사람도 드물어서 간이역
관리자(2007-07-16 01:59:05)
『군산-임피역』
열차도 사람도 드물어서 간이역
유선주 | KBS전주방송총국 리포터
햇살이 뜨겁게 철로위에 앉고, 아름드리 나무 그늘아래 조그만 벤치가 놓여있는 간이역, 바람에 흔들리는 꽃잎, 노란 나비. 가느다란 바람을 실고 오는 기차. 사람이 찾지 않아도 항상 그 자리인 간이역… 느긋한 시골 간이역의 추억. 누구에게나 간이역은 우리에게 추억을 떠올리게 만들어 주는 묘한 매력을 품는다. 이런 간이역이 하나둘 사라져 가는 것은 추억이 사라지는 것 같아 못내 아쉽다.
군산엔 현존하는 역사 건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역이 있다. 바로 군산시 임피면 술산리 임피역. 1912년 12월에 지어져 1924년 간이역으로 역무원이 배치됐고, 1934년 보통역으로 승격됐다. 1981년 국가사적 284호로, 지난 2005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서울역(1925년 준공)보다 13년 앞서 세워진 근대건축물로 현존하는 역사 건물 중 가장 오래된 역인 것이다.
초록색 박공지붕(지붕면이 八자 모양으로 양쪽 방향으로 경사진 지붕)에 미색과 옥색 페인트로 칠한 현존 최고(最古)의 역사(驛舍)… 그러나 이곳도 승객감소가 이어지면서 결국 지난 해 10월 마지막 밤 10시 45분 익산행 열차가 마지막으로 역무원의 배웅을 받으며 지금은 무인(無人)역사로 운영되고 있다.
열차를 기다리는 승객들의 말벗으로, 역을 오가는 마을사람들의 소식통으로 낯선 여행객의 안내자였던 역무원들까지 간이역의 풍경이 되었는데, 아쉽다는 말로도 부족한. 이곳 임피역은 전주-익산-군산을 잇는 노선으로 하루 열여섯 차례 임피역을 통과하지만 정작 역을 이용하는 승객은 하루 40-50명 선, 한달동안 기차표를 팔아 얻은 총수입은 150만원을 넘지 못했다. 승객 대부분은 군산역 앞에 서는 새벽시장에 나서는 할머니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지금은 합판으로 못질이 된 대합실을 거쳐 열차에 오르면 이런 소박한 시골의 기차역에서도 자본의 논리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어디 이뿐이랴. 군산선 복선화 사업으로 익산시 오산면까지 복선전철화가 되면 임피역에 존치를 장담할 수도 없다. 올 6월부터는 전국의 시골 간이역 59개가 문을 닫았다. 더 이상 기차가 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철도공사가 기차시간표를 바꿀 때마다 간이역들이 조금씩 없어졌는데, 이렇게 한꺼번에 50개가 넘는 역이 없어지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였다. 알고 있었나. 이들 시골 간이역에 여객영업 정지는 대부분이 승객이 없어서이다. 하루 이용객이 10여명을 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데, 이렇게 시골 간이역들이 하나 둘, 아님 한꺼번에 몇십 곳이 문을 닫아도 사실 우린 모른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 주위의 모든 것이 답답하고 말 한마디 하기 싫을 때 그냥 배낭하나 매고 찾은 간이역이 그리워 질것이다.
간이역은 오랫동안 이 땅의 이름 없는 장삼이사들을 실어 나르던 달구지 같은 완행열차 정류장이었습니다. 하지만 무조건 빨리 달려야 한다는 속도중독증의 미친 세월을 만나, 이땅의 아름답고 한가로운 간이역은 다 떨어진 고무신짝처럼 버려지고 허물어지고 잊혀져 내동댕이쳐지고 있다.
- 2004년 환경단체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이 간이역에게 준 풀꽃상 내용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