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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7 |
[서평] 소리 속, 우리네 삶을 되돌아 보다
관리자(2007-07-16 01:41:34)
『소리, 말할 수 없는 마음을 듣다.』   소리 속, 우리네 삶을 되돌아 보다                                                                                                          최정학 | 기자   “소리라는 것은 사전적 풀이로는 ‘귀에 들리는 공기나 물체의 빠른 진동’, ‘말’, ‘소문’, ‘판소리나 잡가, 민요 등의 노래’ 또는 그저 ‘노래’나 ‘말소리’ 등을 말합니다. 소리라는 것에 그렇게 큰 의미를 두지는 않지요.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우리네 삶이 소리 속입니다. 소리와 더불어 세상에 태어나고, 온갖 소리 속에 살다가 가는 것이지요.”   최승범 전북대 명예교수가 우리네 삶과 애환, 정서가 녹아 있는 107가지의 소리들을 엮어 『소리, 말할 수 없는 마음을 듣다』를 펴냈다. 월간 《객석》에 ‘널뛰는 소리’를 시작으로 10여 년간 연재했던 ‘한국의 소리를 찾는다’를 엮어 낸 책이다.   “우선 내 주변의 소리부터 다시금 챙겨보고 싶었습니다. 연재하는 동안 언제나 다음 호에는 무슨 소리를 소재로 쓸 것인가 일종의 고심을 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것은 그때마다 추켜들고 싶은 소리가 공손홍이 말한 화응의 소리였으면 싶었기 때문입니다. 공손홍이 말한 ‘화응’이란 ‘소리가 조화를 이루면 하늘과 땅도 이에 화응한다’를 두고서 한 이야기죠. 그런데 지금 우리주변에서 이런 소리를 떠올리기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최승범 교수가 말하는 좋은 소리란 우리들의 귀 뿐만 아니라 눈도, 코도, 혀도, 살갗도 산드럽고 즐겁게 하여 화응할 수 있는 것. 이런 소리를 찾다보니 자연히 시끄럽기 만한 오늘의 소리보다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게 됐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접했던 소리들을 되생각하면 비록 세상살이는 어렵고 고달픈 것이었대도 사람살이만은 낙낙한 마음으로 정겹고 즐거운 것이었어요. 그런데 그 소리들이 사리지고 있어요. 지금은 아예 들을 수 없는 소리도 많지요. 물레 소리며, 문풍지 소리, 두레박 소리들을 지금 어디 가서 들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씩 하나씩 책을 보면서 옛날을 회상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좋지요.”   『소리, 말할 수 없는 마음을 듣다』는 최승범 교수의 다른 책들처럼 어렸을 적 아버지나 할어버지에게 들었던 이야기들을 비롯해 각종 문헌과 옛시조, 야사, 민담, 민요, 소설, 현대시, 에세이 등에 담긴 소리를 고루 다루어 놓았다.   ‘좌르르 톰방톰방, 시름을 잊게 하는 향기’ 술 거르는 소리, ‘스르륵 스스륵, 시퍼렇게 밝게 밝게 서거라’ 칼가는 소리, ‘예쁜 계집에 배 먹어가듯 사운 사운 사운’ 쟁기질 소리, ‘늬 머리 흔들, 내 다리 삽작’ 널뛰는 소리, ‘수월수월, 방 안에 일렁이는 묵향’ 먹가는 소리, ‘백 발의 시름, 세상의 파란 다스리는 유장함’ 거문고 소리 등 직접 들을 수 있는 소리뿐만 아니라, ‘별소리’나 ‘꽃 피는 소리’처럼 마음만으로 들을 수 있는 소리들을 따 놓은 이 책은 그 시대의 삶과 정서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곡식 타작용으로 쓰인 ‘도리깨’나 목화씨를 빼내는 ‘씨아’, 야간 순찰을 돌던 ‘야경꾼’과 대장간 일을 하던 ‘큰 메꾼’처럼 사라져버린 도구나 직업군에 대한 소개와 설명도 재미있다.   하지만,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같은 소리일지라도 상황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는 소리의 변주와 눈으로도 소리를 보고 즐길 수 있도록 한 ‘청각의 시각화’이다.   주부의 하루 일은 부엌문을 여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부엌문을 걸어 잠그는 것으로 끝난다고 할 수 있다. 살림살이가 넉넉하다면, 주부에게 있어 부엌문을 여닫는 일은 한 즐거움일 것이다. 이때 부엌문 내는 소리는 다음과 같다. ― 뻥그르르 하지만 양식이 달리고 찬거리도 제대로 없을 때, 주부가 여닫는 부엌문은 팍팍하고 시름겹게 열리고 닫히기 마련이다. ― 비거덕 삐거덕   부엌문 소리가 크게 다르진 않겠지만, 살림 형편에 따라 다르게 들리는 부엌문 소리가 옛 우리 어머니들의 고단한 삶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오늘 우리들의 오관으로는 쉽게 잡히지 않는 소리들, 사라진 소리들을 글로 되살려 보는 일은 때로는 팍팍하고 짜증스럽기도 한 나의 세상살이, 사람살이에 한 즐거움이 되기도 했습니다. 지난날의 저러한 소리들에 다시 젖을 수 있는 세상을 바랄 수는 없을까 하는 아쉬움도 떨쳐버릴 수 없습니다.”   최승범 교수는 1990년대부터 『풍미기행』, 『한국을 대표하는 빛깔』, 『한국의 먹거리와 풍물』, 『벼슬길의 푸르고 맑은 바람이여』, 『꽃 女人 그리고 세월』 등을 통해 우리네 조상들의 삶과 얼을 되새기는 작업을 하고 있다. 『소리, 말할 수 없는 마음을 듣다』 또한 이러한 작업의 연속선상에 있다. 사라져버린 옛 소리를 오늘에 다시 불러와서, 지금 우리네 삶과 모습을 되돌아보는 것이다. 세상의 변화를 거부할 수도 또 해서도 안 되겠지만, 그 변화 속에서도 줏대를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최승범 교수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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