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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마당 문화기획아카데미 특별강좌Ⅰ] 잠재적 피해자와 잠재적 가해자 사이
관리자(2007-07-16 01:31:07)
창의적 문화기획과 저작권-Copyright와 Copyleft
잠재적 피해자와 잠재적 가해자 사이
강의 한승헌ㅣ변호사·법무법인 광장
주최 : 사단법인 마당
일시 : 2007년 6월 16일 오후 3시
장소 : 전주 한옥마을 최명희문학관
저작권은 이제 우리시대의 새로운 화두입니다.
저작권법은 ‘저작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법률’을 말합니다. 제작자와 소비자가 명확하게 분리되어 있던 과거, 저작권은 그리 크게 문제될 것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인터넷이 우리생활의 일부가 되면서, 우리는 지금 개인들이 창작물을 창작하면서 동시에 이용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한승헌 변호사는 지금을 ‘만인이 저작자이자, 만인이 이용자인 시대’라고 말합니다. 누구나 잠재적인 피해자가 될 수 있고, 누구나 잠재적인 가해자가 될 수 있는 지금, 저작권에 대한 관심은 클 수밖에 없습니다.
제6기 마당 문화기획 아카데미가 한승헌 변호사를 초청해 ‘창의적 문화기획과 저작권-Copyright와 Copyleft’를 주제로 특별강좌를 열었습니다.
한승헌 변호사의 특별강좌를 2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사실, 이런 강좌를 한다고 해서 여러분께 무슨 도움이 될 만한 것도 없는데, 그저 여러분들과 마주한다는 기쁨 때문에 이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소유권 따로 저작권 따로
오늘은 ‘창의적 문화기획과 저작권’, 이런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지식정보화시대에는 무체재산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가령 우리가 책을 한 권 샀다고 합시다. 돈 주고 샀으니 소유권이 나한테 있습니다. 이건 유체물이죠. 그런데 문제는 이 책속에 담겨 있는 문장이라든가 사진을 내가 읽고 보거나 내 개인을 위해서 복사한다든가 하는 것은 좋은데, 거기에 있는 문장을 그대로 복사해서 많이 배포한다든가 사진을 함부로 복사해서 이용한다든가 하면 안 되죠. 책 한권이라는 유체물의 소유권을 취득한 것뿐이지, 이 안에 있는 요즘 말로 컨텐츠 즉 무체재산의 이용권을 취득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이용하려면 반드시 권리자의 허락과 그 허락에 따르는 대가를 지급해야 하는 것입니다. 좀 복잡하죠. 그래서 저자, 출판사, 그 밖에 사진이 있으면 사진작가 등 여러 사람의 권리가 이 안에 저작권으로 잠겨져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돈 주고 샀는데 왜 그 내용을 자유로 이용 못할까 하는 생각, 그건 소유권중심의 사고인데, 지금은 그게 아니라는 거죠.
여기 CD 하나가 있습니다. 돈 주고 샀습니다. 여기에 노래가 수록됐다고 가정하면 그 노래를 듣는 것은 자유입니다. 이 CD를 누구에게 넘겨주거나 빌려주거나 파는 것까지도 자유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담긴 음악을 복제한다든가 다른 곳에 올리는 것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개인이 아니라 방송사의 경우에도 (뭐, 예전 LP판이나 오늘날의 CD도 다 법적으로 음반입니다.) 녹음된 음반 하나를 방송하려면 그 안에 담겨있는 권리자들이 전부 손을 내밀게 되어 있습니다. 즉 작사, 작곡한 사람은 저작권자입니다. 노래를 부른 사람은 소위 실연자인데 인접권자로서의 권리가 있습니다. 악단의 연주자도 실연자로 보기 때문에 독자적인 권리를 주장합니다. 음반을 만든 회사는 음반제작자로서의 권리가 따로 있습니다. 이처럼 음반 한 장에 많은 사람의 권리가 얽혀 있다보니까 이것을 이용하는 데에 불편이 많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어떤 쪽의 권리를 존중하고 그 승낙이나 대가를 일일이 전제로 해서 문화매체를 이용한다면 저작권 존중도 좋은 일이지만 문화의 향상 발전에 오히려 저해를 가져온다는 걱정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러지 않더라도 가령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PC, 복사기, 디카, 휴대전화 이런 것들이 창작수단이나 전송수단도 되고 창작물을 이용하는 기능도 갖습니다. 예전에는 무엇을 만드는 (시설과 여건을 갖춘) 사람이 있고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이 따로 있어서 창작자 또는 제작자와 수요자가 분리되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되어버린 인터넷 이용을 통해서 창작물을 생산하면서 동시에 이용을 합니다. 이렇게 되니까 저작자와 저작물 이용자가 부류를 달리하는 것이 아니라 만인이 저작자이자 만인이 이용자가 됩니다. 그러다 보니 누구나 잠재적인 피해자가 될 수도 있고, 잠재적인 가해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사권(私權)의 경우는 공권과 달라서 그 권리를 절대적으로 보호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헌법에서도 개인의 권리는 법에 의해서 제한을 하고 있는데, 어느 선까지 제한을 할까, 어느만큼 풀어주는 것이 좋을까 하는 적정선을 정하는 것이 법의 어려움이고 법 해석의 어려움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전에는 저작권의 침해라는 것이 종이매체, 문자 활자 중심의 매체를 통해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규모에서나 형태에서 그렇게 사회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었는데, 지금은 아까 말씀드린대로 침해의 여지가 너무도 커지고 권리관계가 매우 복잡해져서 저작권의 수비범위가 너무 넓어지다보니, 저작권법이 제 구실을 다하기가 어려울 정도가 되었습니다.
도깨비가 무식하면 부적도 소용없다
우리의 경우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지금까지는 적당주의가 유지되어 왔습니다. 잘 몰랐다든가, 복잡하다든가, 그게 뭐가 잘못이냐, 나는 영리를 위해서 한 일이 아니다라고 변명을 하거나, 편하게 논문도 쓰고 남의 흉내를 내면서 범법을 해왔겠지만, 이제 세상이 정말 달라졌습니다. 지식정보화시대라서 권리의식이 모두 예민해져가고 트러블이 늘어나고 경우에 따라서 법정까지 비화가 됩니다. 우리 국내 끼리라면 또 모르는데, 외국인의 권리까지 보호해주어야 하고 외국정부의 압력이 드세져 가지고 이젠 외국의 지적재산권을 제대로 보호를 안 해줄 수가 없게 되었어요. 거기에다 지적재산권 문제, 저작권 문제만 국한해서 따지면 괜찮은데, 만일 저작권 보호기간을 20년 더 늘려주지 않으면 미국에 한국산 자동차 수입하는 걸 제한하거나 관세를 높이겠다, 이렇게 나옵니다. 그럼 우리는 자동차 수출로 해서 얻는 경제적인 이득하고 저작권 보호 좀 더 해줘가지고 부담하는 마이너스를 비교하면 저작권 양보를 안 할 수가 없다는 것이죠. 결국 우리는 즉 WTO나 FTA에 끌려들어가지 않을 수 없는 세계적인 추세와 현실을 직시하고 합리적인 대응을 해 나갈 수 밖에 없다는 말씀을 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기이한 현상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고위직에 있거나 올라갈 사람을 찍어내리기 위해서 표절 같은 저작권문제를 제기하여 표적이 됐던 사람을 기어코 끌어내리거나 주저앉히는데 악용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저작권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떤 사람을 추락시키기 위한 하나의 요격용 미사일로 이 저작권을 써 먹는데, 그게 번번이 성공했습니다. 여러분 잘 기억하시죠. 이 분야를 공부하는 사람은 뭐 그렇게 해서라도 저작권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의식도 바로잡힌다는 면에서는 약이 될 수 있다고 보면서도 한 개인을 물먹이는 흉기로 써먹는 것이 유감스럽습니다. 그러니까 어느 대학 총장이 요격을 당하고 사임을 해도 그 사람의 저작권 위반 여부는 끝내 규명을 해야 되는데, 그 사람이 그 자리를 그만 두면 언제 뭔 얘기 했느냐는 듯이 그날로 논의가 쑥 들어가 버리는 거예요. 아직도 이런 수준입니다.
그리고 저작권에 대해서 비록 전문가 수준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알아야지 의문도 생기고 또 누구에게 무엇을 물어볼 것인가, 또 누가 조언을 해주고 자문에 응할 때 그 내용을 이해하고 법대로 해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금 속된 말로, 도깨비가 무식하면 부적도 소용없다고 하는데, 적어도 부적을 보면 뭔가를 알아차릴 수 있는 도깨비는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여기에 문화기획자들이 모인다고 들었는데, 사실 저는 문화기획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합니다. 그냥 출판기획, 공연기획, 행사기획 이런 말만 들었지, 기획이 정확히 뭔가 모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선 공연기획이나 출판기획, 어떤 행사, 전시 그런 기획에서 하는 일은 제가 보기에는 어떤 구상이 선행되고, 그 구상을 실현시키기 위한 이런저런 방법과 단계를 거쳐서 하나의 작업이 이루어지는 것, 이것이 기획이 아닌가. 그러다보면 기획이 어느 단계까지는 아이디어 수준에서 머물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아이디어 자체는 저작권의 보호대상은 아닙니다. 아이디어가 표현으로 구체화 되었을 때, 그 표현만 보호합니다.
초등학교 5학년짜리가 쓴 글도 법적인 저작물
저작물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먼저 법적인 검증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출판이나 전시나 공연을 할 때 필요한 요소, 즉 작품이라도 좋고 작품이 아니더라도 좋은데, 어쨌던 이용할 요소가 정해지면 그것이 법적으로 보호되는 것인지 아닌지, 다시 말하면 권리자로부터 허락을 받고 필요하다면 대가를 지불해야만 내 기획에 써먹을 수 있는 것인지를 검토하라는 것입니다.
우선 그 목적물이 저작물인가 아닌가 하는 것을 따져보아야 합니다. 저작물은 무엇인가. 이것은 저작권법에 정의 규정이 있습니다. 일반적인 상식하고 비슷하면서 그러나 엄격하게는 일치하지 않습니다. 법대로 하면 ‘인간의 사상,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을 저작물이라고 합니다. 인간의 사상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 그러면 우선 글이라든가 그밖에 우리가 만들어낸 콘텐츠는 그 수준이나 내용여하 간에 저작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문으로 저작물(著作物)이라고 써놓으면 참 그럴듯 한데 여기에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두 가지 오해가 생기는데요. 하나는 ‘저작’이라는 말이 너무 근엄하고 거룩해요. 어감상 전문가, 학자, 작가가 만들어내는 어떤 표현물, 이런것만 저작물인 것처럼 느껴지는데, 그것은 아닙니다. 시간이 없어서 더 자세히 설명하진 못하지만, 단적으로 말해서 초등학교 학생이 쓴 글도 훌륭한 저작물입니다. 훌륭하다는 것은 글의 내용이 훌륭하다는 것이 아니라 남의 것 베끼지만 않았으면 저작물로서 당당하게 인정을 받는다는 거죠. 그 옛날 문교부 시절에 교과서 만들 때 초등학교 5학년 어린이의 글을 교과서에 실으면서, 지은 어린이의 이름과 글의 표현을 맘대로 바꿨다가 소송을 당해서 문교부 다시말해 대한민국 정부가 초등학교 5학년 어린이한테 패소한 적도 있습니다.
저작물은 인간의 사상, 감정을 표현한 것이어야 합니다. 표현, 다시 말해서 생각이나 감정이 외부로 나타난 것이어야 합니다. 표현이 안 된 인간의 사상, 감정은 저작권으로 보호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기 ‘표현’이란 것은 어디에 고정되어야 하느냐, 가령 책으로 나왔다든가 글로 기고를 해서 신문에 실린다든가 이렇게 고정이 되어야 하느냐 하는 거죠. ‘고정’은 법의 요건은 아닙니다. 즉 표현이 고정 안되어도 저작물입니다. 지금 제가 강의하고 있는 것은 저의 말 즉 표현이 고정이 안 되고 있습니다. 말로 한 것은 고정이 안되고 흔적이 없어지지만 고정을 요건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지금 제가 말하는 것도 저작행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지금 말하는 것이 저작물이라면 좀 황당하게 들리지요.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제가 말하는 내용을 어느 분이 녹화하거나 녹음해서 그 복제물을 여러 사람에게 배포하거나 판매하면 그게 바로 저의 저작권을 침해하는 것입니다. 그 단계에 들어가면, 아 그게 권리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단, 영상저작물 즉 영화 같은 것은 고정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가령 책의 제목이라든가 표어라든가 무슨 구호, 카피 이런 것은 원칙적으로 저작물로 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본시 몇 개의 단어를 조합해서 이루어지는 그런 제목에 대해서 저작권을 인정하게 되면 매우 곤란한 경우가 생깁니다. 만약 제주도의 어느 어린이가 ‘반달’이라는 제목으로 시를 썼다고 칩시다. 그 제목의 저작권을 인정하면 전국의 어느 누구도 ‘반달’이라는 제목을 못 쓰죠. 또 ‘사랑’을 제목으로 수필을 썼는데 그 사랑이라는 제목에 저작권을 인정하면 우리 4천만 동포 누구도 ‘사랑’이란 제목을 못 쓰게 되지요. 가령 경제학원론, 서양사개론 그런 제목의 책이 수십 가지 나와 있지만 그 제목은 저작물로 안보기 때문에 괜찮습니다. 그러나 어떤 제목에는 상당히 창의성이 있는 경우가 있죠. 아주 오래된 이야기입니다만 작가 박완서씨의 수필 책 제목이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였는데, 참 독창성이 있어보이지만 그래도 거기에 저작권을 인정하기에는 아직은 인색하죠.
프랑스 저작권법에는 제목도 창작성이 있으면 보호한다는 규정이 있어요. 그래서 제가 그 쪽 변호사에게 물어봤어요. 이런 진보적인 조항이 있다고 그러는데 이 조항에 의해서 제목에 저작권을 인정한 사례가 있느냐, 창작성이 인정된 제목의 실례라도 알고자 그렇게 물었는데 대답인즉, 그런 조항만 있지 인정한 예는 없다는 거예요. 표어, 구호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카피의 경우, 카피 한 대목을 위해서 얼마나 머리를 쓰고 시간과 비용을 투입하는데 마땅히 저작물로 인정을 받아야 할 것이 아닌가 하는 주장이 나올만합니다. 실제로 여기에 대해서는 찬반논쟁이 있습니다.
저작물인가 아닌가를 살펴 본 다음에는 법으로 보호받는 주체의 저작물인가를 살펴봐야 합니다. 우선 우리 국민의 저작물은 보호대상이 됩니다. 북한 동포의 경우를 놓고 보자면, 우리 헌법의 해석상 북한도 대한민국 영토의 일부이지만 사실상 지배력이 미치지 않기 때문에 아주 특수한 문제가 생깁니다. 그러나 우리 남한의 재판에서 북한 저작물을 남한 사람의 저작물과 똑같이 보호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 착오가 생겨선 안 되겠습니다. 그 다음, 외국인의 저작물은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외국인의 저작물이라고 해서 반드시 영어, 불어 등 거기에 쓰여진 언어를 생각하지 마세요. 내국인의 저작물은 우리 한국 사람이 썼으면 한글로 썼든 영어로 썼든 불어로 썼든 그것은 상관이 없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외국인의 저작물 역시 외국인이 창작한 컨텐츠는 무슨 언로로 표현이 되었던 다 외국인 저작물이죠. 그럼 어느 경우에 외국인의 저작물을 보호하느냐. 국내에 상시 거주하는 외국인의 저작물과 (‘상시 거주’에 대한 해석이 조금 필요합니다만,) 국내에서 최초로 그 저작물이 발행되었을 때. (이 ‘최초발행’이라는 것은 외국에서 이미 간행된 것을 가령 일 년 후에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 이런 뜻이 아니라, 그 창작물의 공표가 우리나라에서 처음 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와 책이 외국에서 간행되고 30일 안에 국내에서 간행이 되는 것은 동시간행으로 보아 보호가 됩니다.
다음으로 우리나라가 가입한 조약의 당사국 국민이거나 조약 당사국에서 보호되는 저작물도 내국인 저작물과 똑같이 보호를 합니다. 1957년에 나온 우리나라 최초의 저작권법에 보면 대한민국이 가입했거나 승인한 국제조약에 따라서 외국인의 저작권을 보호한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언뜻 보면 그럴듯한데 실제로는 국제조약에 들어가지 않은 겁니다. 그러다가 미국의 압력으로, 조약에 가입은 하되 소급보호의무를 지지 않는 세계저작권조약에 가입했지요. 그후 다시 미국의 압력이 거세져가지고 지금은 소급보호까지 해야하는 베른조약의 회원국이 되었습니다. 소급보호를 하는 방식이라든가 언제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보호하느냐 하면 계산이 복잡한데, 아주 쉽게 말씀드리면 1957년 이후에 나온 조약 당사국 국민의 저작물과 그 나라에서 발행된 저작물은 보호해주어야 합니다. 음악이든 그림이든 다 허락을 받아야 되고 대가를 지불해야 됩니다.
허락을 받고 이용해야
그 다음엔 소위 ‘비보호 저작물’인가 아닌가를 알아보아야 합니다. 우선 법령이죠. 헌법, 법률, 명령, 규칙, 조례 또 자치단체의 고시, 공고 훈령과 법원의 판결 결정, 이런 것들은 저작권법으로 보호하지 않습니다. 보호하지 않는다는 말은 값어치가 없다는 것이 아니고 법원이나 국회, 정부의 허락을 안 받고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다, 이런 뜻입니다. 이걸 만든 국가기관은 국민이 낸 세금으로 운영되고 거기서 국민을 위해서 법률도 만들고 판결도 나오는 것이며, 또 이것들은 국민에게 널리 알려서 준수가 되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해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비보호 저작물로 한다는 것이죠. 그러나 사법, 입법, 행정 모든 기관에서 만든 것이라고해서 모두 비저작물은 아닙니다. 때로는 정부나 자치단체에서 나오는 연구문서나 백서 같은 것도 저작물로 보는 경우가 있으니까 이런 것은 전문가한테 물어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다음으로 저작권 제한사유란 것이 있습니다. 저작물이니까 저작권도 있고, 보호를 하는데 그래도 좀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유가 저작권법 제23조에서 37조까지 규정되어 있는데요. 여기에 문화기획자 여러분들의 업무와 연관될만한 것 중에서 몇 가지만 소개해드리겠습니다.
학교교육프로그램, 방송, 교육기관에서 하는 복제, 교육기관 즉 학교에서 교과용 도서를 만들 경우에는 그냥 복제가 가능합니다.
그 다음엔 비영리 목적의 상연, 상영입니다. 영리목적이 아닌 공연을 한다든가 영화를 상영하는 것은 프리다. 프리란 말은 맘 대로란 말도 있고 공짜란 말도 있는데 여기서는 두 가지 다 해당됩니다. 그런데 여기에 ‘비영리’라는 말은 본전치기만 하고 이윤을 남기지 않겠다는 그런 비영리는 아닙니다. 조금 더 정확하게 법을 찾아보면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아니하고, 청중이나 관중 또는 제 3자로부터 어떤 명목으로든지 반대급부를 받지 않는 경우”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쉽게 말해서 입장료를 안 받아야 되고, 그 다음에 제 3자로부터 어떤 명목으로든지 반대급부적 성격의 돈을 받지 않는 경우라야 합니다. 그리고 출연자를 비롯한 실연자에게 통상의 보수를 지급하는 경우도 비영리 공연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 다음에 그림하고 관계가 있는 설명을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그림 한 점을 샀으면 내것이 되었으니까 어디에 걸어놓던 복사해서 어디에 써먹든 내 맘 대로라고 생각하시기 쉬운데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원 작품을 가진 사람은 그 원본을 전시할 수는 있습니다.
전시라고 함은 사람들의 눈에 뜨일 수 있도록 제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아무데나 걸어놔도 되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미술저작물의 원본(작품)의 소유자나 그의 동의를 얻은 자는 그 저작물을 원본에 의하여 전시할 수 있지만, 큰 길가, 공원, 건축물의 외벽, 그밖에 공중에게 개방된 장소에 항시 전시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집이나 사무실에 걸어놓고 감상하고 이런 훌륭한 작가의 그림을 갖고 있다고 자랑하는 것은 좋은데, 길거리라든가 공원이라든가 건물의 외벽과 같이 여러 사람의 눈에 뜨이는 곳에 상시 전시하면 안됩니다. 그러니까 공원에 하루쯤 들고 나와서 전시하는 행사는 괜찮다고 봐야겠지요. 복사된 것은 어느 경우에도 전시가 허용되지 않습니다.
호텔의 로비 같은 데서도 그림을 볼 수 있는데, 공중에게 개방된 장소에 호텔 로비가 포함되느냐, 안 되느냐. 이 점에 대해서는 법원에서도 서로 상반되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저는 호텔 로비는 당연히 포함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개방된 장소에 항시 전시하려면 그 화가의 별도 허락을 받아야겠지요.
개방된 장소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에 대해서는 무슨 방법으로든지 복제, 이용할 수 있고 사진을 찍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미술저작물에는 그림만 있는 것이 아니고 사진이나 조각이나 이런 것이 다 미술저작물입니다. 다만 다음의 경우에 해당하면 예외가 됩니다.
조각을 사진으로 찍는다면 괜찮지만, 그걸 조각으로 복제하는 것은 안됩니다.
그림의 경우로 돌아가서, 그림 소유자일지라도 판매의 목적으로 복제하면 안됩니다. 그림만 그린 것이 아니라 모든 미술저작물이 다 그렇습니다. 내가 가진 그림이라 하더라도 판매의 목적으로 복제하면 안 되는 거예요.
꼭 그렇게 하고 싶으면 권리자, 화가의 동의를 얻어라. 동의를 꼭 얻어야 되는데 돈을 요구하면 돈을 줘야겠지요. 그런 얘기입니다.
그 다음, 이 그림을 전시하고자 할 때, 도록을 만들기도 하는데, 어떤 때는 도록에 거의 전 작품을 수록하는 경우도 있으나, 그건 잘못입니다. 원 그림을 전시하거나 판매하고자 하는 자는 그 작가나 작품을 해설 소개한다고 해서 전시작품 전체를 화가의 동의도 얻지 않고 도록에 수록하는 것은 안된다는 얘기입니다. 전시회 때 쓰는 팜플렛에다가 몇 작품을 복제해 이용하는 것은 무방합니다.
(다음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