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7 |
[전라도 푸진사투리] 오발이, 사발이, 쌍발이, 짝발이
관리자(2007-07-16 01:26:28)
오발이, 사발이, 쌍발이, 짝발이
김규남 | 언어문화연구소장
지난 가을 아들과 함께 바다에 간 적이 있다. 바다에 갈 때마다 녹음기와 조사 자료를 갖고 갔지만 이번에는 그냥 여행을 즐기기 위해서였다. 오랜만에 아들과 함께하는 여행이어서 둘은 참으로 알뜰한 교감을 나누었다. 배를 타고 가는 내내 우리는 연인이 되었고 섬에 도착해서도 두 사람이 함께 타는 자전거를 빌려 살뜰한 하이킹을 즐겼다.
그러나 부자 관계로부터 비롯된 의무감 때문이었는지 어느새 나는 섬 지역의 인문지리적 특성을 아들에게 전해 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녀석 말대로 에너지가 넘쳐서 가만 앉아 있을 수 없어 하는 놈이라 물을 향해 뛰어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나는 그저 감사하고 행복해 해야만 했다.
그러다가 뜻밖의 기회를 얻어 우리는 ‘쏘내기(강판 플라스틱으로 만든 기계배)’를 타고 전날 던져놓은 그물을 걷어 올리는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바다 사나이의 억센 손만큼이나 ‘쏘내기’의 엔진 소리가 굵어지자 이내 튕겨 오르는 바닷물과 바다 냄새가 온 몸과 마음을 휘감았다. 그 시원한 느낌 때문에 갈앉은 삶의 찌꺼기들이 한 꺼풀씩 벗겨지는 듯했다.
그렇게 한 이십여 분을 달려 배는 바다 한 가운데 멈추어 섰다. 너울대는 파도 때문에 배는 금방 ‘꺼울러질’ 것 같기만 한데 중년의 사나이는 무심히 걸쇠를 내려 그물의 줄 한 가닥을 걷어 올렸다. 묵직한 그물이 그 속내를 드러내며 오징어, 소라, 낙지, 도다리, 광어가 줄줄이 올라올 때마다 우리는 탄성을 질렀다. 그리고 넘실대는 파도와 그물에서 떼어낸 고기들이 갑판 위에서 퍼덕이며 내는 생명의 소리는 지난 날 이 바다에서 벌였던 수많은 사투 그리고 사냥의 본능으로부터 피어오르는 수컷의 야성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였다.
그런 알뜰한 재미를 다소 감소시킨 것은 다름 아닌 오발이 새끼들이었다. 오발이 새끼, 발이 다섯 개 달린 녀석들, 그놈들은 바로 불가사리들이었다. 불가사리 즉 오발이 새끼들 때문에 그물이 망가지는 것뿐만 아니라, 마치 거머리처럼 혹은 노인과 바다의 상어떼처럼 혹은 죽은 고기를 잡아먹는 하이에나 떼처럼, 이미 잡힌 고기들은 표피가 다 벗겨지고 속이 드러나 이미 허옇게 죽어 있는 상태였다. 그게 자연의 이치건만 그래도 인간의 기준으로서는 이놈들은 여간 골칫거리가 아니었다.
그 불가사리를 전라북도와 충청도의 바다에서는 오발이라 부른다. 다섯 개의 발이 달려 있으니까 그렇게 불렸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런데 문제는 이 녀석들의 명칭이 다른 지역으로 가게 되면 터무니없는 상태가 된다는 사실이다. 전라남도 신안 앞바다에서는 이 녀석을 사발이라고 부른다. 발은 분명히 다섯 개인데 왜 사발인가. 거기서 조금 동쪽으로 더 가서 경상남도 거제 앞바다에서는 또 쌍발이로 불린다. 해안을 따라 더 동쪽으로 가 경상북도 포항 지역에서는 이 녀석들이 짝발이가 된다. 오발이야 불가사리의 발이 다섯 개이니까 이치 상 그렇다 치더라도 사발이와 쌍발이 그리고 짝발이는 도대체 어찌된 영문인지 알 수가 없다.
말이 만들어지는 일반적 원리를 설명할 때 학자들은 언어의 자의성 혹은 임의성(arbitrary)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이는, 어떤 의미나 사물이 하나의 단어로 표현될 때 그 단어와 의미 사이에는 필연적인 연관이 없으며 다만 사회적 약속만이 이 둘 사이의 관계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돈이라는 말이 한국어에서 일정한 어휘로 자리매김하는 데는 꼭 돈이란 표현이 아니어도 상관이 없으며 다만 한국어를 매개로 한 언어사회의 구성원들 간에 일정한 약속에 따라 그 관계가 설정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어에서는 그것을 ‘머니’, 중국어에서는 ‘치엔’, 일본어에서는 ‘오까네’라고 부를 수 있는 것 역시 언어의 임의성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왜 하필 한국어에서는 돈이고, 영어에서는 머니, 일본어에서는 오까네, 중국어에서는 치엔인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한 일인지도 모른다. 물론 돌고 도니까 돈이고, 뭐니뭐니해도 ‘머니’가 최고니까 ‘머니’라고 했다는 식은 그 발상이 그럴 듯하지만 증명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종종 어원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기발하고 재미는 있지만 그 주장을 객관적으로 증명하기가 매우 어려운 지난한 학문의 영역에 속하는 셈이다.
이렇게 보면, 불가사리에 대한 지역적 차이 역시 그 지역 나름대로의 어떤 사회적 약속에 의해 그러한 명명이 생긴 것이다. 어떻든 각각의 지역이 언어의 임의성에 바탕을 두고 사회적 약속의 결과로 어휘가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더라도, 오발이와 불가사리의 관계와 그 나머지의 차이는 참 재미있고 신기한 차이가 아닐 수 없다. ‘사발이’, ‘쌍발이’, ‘짝발이’ 도대체 이 신기한 결합의 바탕엔 무엇이 있었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