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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7 |
[길위의 추억] 두바이, 아리비아 사막에 누워
관리자(2007-07-16 01:20:58)
거기 인도양 건너 아라비아 두바이, 아리비아 사막에 누워                                                                                                          박남준 | 시인   메이데이 5월 1일 노동절, 배를 타고 오면서 불어난 몸무게가 만만치 않다. 늘어난 뱃살을 바라보며 건강한 일을 하며 흐르는 땀에 대해,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흘리는 아름다운 땀에 대해 생각해본다.   뱃머리에 나가 아침 바다를 바라본다. 햇살에 반짝이며 수면을 푸르릉 거리며 가르는 새떼들, 확실하지는 않지만 도요새무리였다. 민물도요나 좀더 작은 좀도요로 보이는 새떼들, 내가 언젠가 부안 염전 등지에서 보았던 도요새들의 장관을 이루던 군무를 떠올린다.   그때 나는 하늘을 향해 일제히 날아오르며 검고 흰빛으로 빛나던 수백, 수천마리의 춤을 보며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얼마 전 나는 그야말로 악- 하고 비명을 지르고 싶은 경악을 금치 못하는 사건을 대했다.   서산과 인근 태안의 일부주민들이 천수만 일대에 도래하는 철새들의 서식처를 파괴하기 위해 갈대밭에 휘발유를 끼얹고 불을 지르며 박수를 치고 앞으로 철새들이 오지 못하도록 서식지를 없애버리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환경부에서 세계적인 철새 도래지인 천수만 일대를 생태, 자연도 1등급 권역으로 지정 고시하겠다는 발표 때문에 야기된 일이다. 문제는 지자체에서 이 지역 일대를 레저단지로 개발하려고 하는데 환경부의 조처로 해서 개발제한을 받게 될 것이고 이로 인해 부동산 매매 등 개발과 그로부터 생기는 반사이익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새들이 밥 먹여 주느냐고, 사람이 사는 것이 우선 이라고 말하는 이들을 탓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를 탓하겠는가. 개발이라는 이기적이고 헛된 망상의 꿈에 사로잡혀있는 세상의 세태를 우리 스스로 만들어오지 않았는가.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는 것이 진실로 살아있는 것이라는 것을 고민하지 않는 사람들, 나와 내 가족만이 아니라 이웃과 이웃, 자연의 모든 생명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아름다운 삶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 수치스럽고 수치스럽다. 이 인간이라는 야만적인 동물.   배는 나아간다. 도요새떼들의 날개 짓 너머 멀리 섬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섬들, 마치 하나의 바위로 이루어진 것처럼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보이지 않는 희뿌연 회색 빛 암석의 섬들로 인해 어렴풋 아라비아 사막지대가 그려진다. 참 멀리도 뱃길을 달려왔구나.   부산항에서 두바이까지 뱃길로 12,000km, 배를 내릴 시간이 가까워진다. 드디어 육지다. 직각에 가까운 경사면의 깎아지를 듯한 해안선, 마치 어떠한 인간들의 발길도 단호히 거부한다고 출입금지의 경고 판을 세워둔 것 같은 암벽의 해안들은 새들의 낙원이 되어주고 있으리라.             망망하던 바다의 풍경은 점점 바뀌어간다. 섬들과 멀리 육지들과 바다새들이 아닌 황조롱이와 같은 뭍의 새들, 그리고 종이배나 나뭇잎 배라고 여길 만큼 작은 고깃배들, 거기 고작해야 한 두 명의 어부가 타고 있으리라. 일엽편주의 저 배에 몸을 싣고 그물을 드리우며 만선의 꿈을, 집으로 돌아갈 환한 뱃길의 비지땀을 흘리고 있으리라.   오후 1시30분 경, 배의 왼쪽으로 아지랑이 같은 기류에 감겨 나타나는 빌딩들의 두바이, 중동지역의 가장 큰 물류기지라는 두바이 항이 보이기 시작한다. 멀리서보니 빌딩들은 높고 낮은 통계수치를 나타내는 막대그래프가 바다 위에 불쑥불쑥 솟아있는 것처럼 보인다. 두바이 항구 곳곳에 석유탱크들이 즐비하다. 그 너머로 보이는 것은 사막의 모래사장들뿐 삭막하기가 그지없다.   이제 곧 내려야 한다. 모두들 다시 한번 짐 정리를 하며 방 청소를 한다. 어제 우리는 체중기에 올라가 보았다. 4월 15일 부산항을 출발하여 배 안에서 보낸 17일 동안 우리 네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몸무게가 각기 5-5,5kg이 불어났다.   볼에 통통 살이 올라 그렇지 않아도 둥굴납작 너부데데하여 윤곽이 뚜렷치 않던 얼굴이 찐빵처럼 부풀었다. 겨울도 없는 머나 먼 열사의 남국에 와서 하필 찐빵을 떠올리게 하는 얼굴이며 푸대자루 같은 몸매라니 도대체 무슨 꼴이란 말인가. 거울을 보니 한숨이 절로 난다. 이것 참 폭삭 망해버렸구나. 이일을 어찌할꼬.   4시 15분 경, 배가 두바이 항에 접안을 마쳤다. 뱃머리가 180도 회전을 하여 접안을 했는데도 예상보다 시간을 앞당겨 마쳤다고 한다. 접안을 할 때마다 온 세포의 신경들이 곤두서며 날카로워진다는 선장님도 이제 한시름 놓이겠다.   오후 5시 현대하이웨이호에서 내렸다. 모두들 나와서 손을 흔든다. 그간 정들었다. 정들자 이별이라고 그런 말이 있지. 돌아서며 뒤 돌아서며 손을 흔들었다. 비오는 날 아랫목에 배를 깔고 엎드려 굳이 사진첩을 들춰보지 않아도 내 생애의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배를 타고 오며 잠시 내려 땅을 밟아보았던 홍콩이나 말레이시아 클랑 항구에서도 그랬지만 두바이에서도 현대상선에 근무하시는 과장님이 마중을 나오셨다. 라마다 호텔에 여장을 풀고 부장님이 기다리신다는 식당으로 가서 저녁식사, 바닷가의 카페에 가서 맥주와 물 담배를 곁들이기도 했다.   그런데 뭔가 몸이 자꾸 이상하다. 앉아있을 때는 느끼지 못하는데 걷거나 멈추어 서있을 때마다 몸이 기우뚱거렸다. 아니 몸이 기우뚱거린다기보다는 딛고있는 바닥이 출렁거리며 흔들리는 것이었다.   경미한 지진이 일어났는가 그렇게 생각하다 물어보았더니 땅 멀미라는 것이란다. 그간 흔들리는 배에 몸이 스스로 맞추어 적응을 했는데 바닥이 흔들리지 않으니 다시 몸이 되돌아가려고 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인 것이다. 우리의 몸이란 얼마나 신비로운 것이냐. 그러나 저러나 배 멀미도 하지 않았는데 땅 멀미라니.     다음날엔 현대상선의 배려로 현대모비스 물류창고를 방문하고 사막 투어를 하게 되었다. 아랍에미리트 연합이라고 부르는 U.A.E는 남한보다 약간 작은 나라지만 전국토의 99퍼센트가 사막으로 덮여있는 곳이다. 고층건물들이 즐비한 도심을 벗어나기가 무섭게 아스팔트로 포장된 도로를 제외하면 곧바로 사막지대가 펼쳐지고는 했다. 아랍에미리트의 사막지대는 아라비아 사막의 끝 부분에 해당되는 곳이다.       차를 타고 두바이 시내에서 한 시간 가량 달렸다. 다시 나는 망망한 바다에 서있는 것인가. 사막에 와서 바다를 본다. 바람결에 씻겨간 모래톱들이 겹겹의 파랑을 이루고 있는 그 사막에 해가 지고 별이 뜬다.   아라비아, 사막의 별들을 기다리는 그 밤, 차도르를 입은 여자에게 몇 번을 망설인 끝에 팔을 걷고 내밀었다. 그녀는 익숙한 솜씨로 내 왼쪽 팔뚝에 붉은 전갈의 헤나문신을 그려주었다. 약 한달정도 붉은 전갈은 내 몸의 일부가 되어 스며들 것이다. 우리들은 서로의 팔뚝을 내보이며 코브라의 문신을, 낙타의 문신을 자랑스러운 훈장처럼 여기며 의기양양했다.   주먹만한 별들이 팡팡팡 팝콘이 튀겨지듯 사막의 하늘에 뿌려진다. 오아시스와 눈이 슬픈 낙타들과 사진으로는 절대 찍을 수 없었다. 나의 짧은 문장으로도 결코 설명할 길이 없다. 그 사막에 서서 어린왕자의 사막을 떠올렸다.   “아프지 않게 물어줘.” 사막의 여기저기를 둘러보아도 그 사막에 누워 기다려보아도 나를 아프지 않게 물어줄 어린왕자의 노란 뱀은 나타나지 않았다. 살 때문이라 생각했다.   내가 소혹성 612호로 돌아가지 못하고 이 땅으로 되돌아온 것은 순전히 찐빵처럼, 푸대자루처럼 불어난 몸무게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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