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7 |
[오래된 가게] "지금은 아저씨덕에 내가 살아"
관리자(2007-07-16 01:16:16)
전주시 효자동 안동슈퍼
"지금은 아저씨덕에 내가 살아"
최정학기자
전주시 효자동의 전주박물관 입구 옆에는 작은 구멍가게가 있다. 새로 지은 듯 깔끔한 건물의 주황색의 간판에는 ‘안동슈퍼’라는 이름이 선명하다. 인근에 주택가가 많은 것도 아니고, 가게 앞 전주 김제를 잇는 자동차 전용도로에는 차들이 쌩쌩. 구멍가게의 위치라고 하기에는 어색하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전주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안동’을 내건 가게 이름이 먼저 눈에 와 닿는다.
“아저씨가 고향은 남원인데 본이 안동 권씨여. 그래서 그렇게 지은거여. 나는 저기 경북 상주가 고향이고. 전라도 광주에서 만났어. 결혼해서 남원서 살다가 또 서울 올라가서 살다가 전주 온지는 한 25년 됐어. 여기서 가게 시작한지는 한 10년 됐고. 처음에는 컨테이너 박스를 전세 8백에 얻어서 했지. 그러다가 작년에 건물 새로 짓고 계속하는거여.”
정작 가게 이름으로 내건 ‘안동’은 본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이었지만, 뜻밖에 이곳 주인인 김규자(64세)할머니의 고향이 경상도였다. 그러고 보니, 말투 곳곳에서 경상도 특유의 억양이 느껴진다.
“여기 근방이 뭐가 없잖어. 차들이나 다니지. 그래서 나도 처음엔 뜨내기 손님들이나 있을줄 알았어. 그런데 하다보니까 뜨내기들이 아니어. 이 동네 사는 사람들은 아니지만, 온 사람들이 계속 와.”
이 가게를 찾는 대부분의 손님들은 전주와 김제를 오가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가게를 지나면서 사는 담배며 음료수들이 제법 많다. 특히, 출퇴근 시간에는 혼자 가게를 지키는 김규자 씨가 손님들을 일일이 다 챙기지 못할 정도다. 남보다 일찍 혹은 늦게 퇴근하는 손님들까지 생각하면, 가게 문을 적어도 5시 30분에는 열어 12시까지는 닫지도 못한다.
“그래도 손님들이 다 친절하고 착해. 뭘 하나 사더라도 꼭 ‘감사합니다’하고 인사를 하고가. 내가 바빠서 못 챙길 때는 물건들도 자기들이 다 알아서 가져가고, 계산도 알아서 다 해. 혹시 잘못해서 더 남겨주면, 나중에라도 꼭 돌려줘. 고맙지.”
퇴근 시간이 아직 안되었는데도, 가게에는 손님들이 끊이질 않는다. 여름이라 그런지 시원한 음료수와 아이스크림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박물관이 근처에 있어 카메라 필름을 구비해 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더러는 시원한 맥주나 막걸리를 가게 앞 탁자에서 마시고 가는 손님들도 있다.
“안주도 없이 그냥 먹고 가는거야. 나는 술값만 받고, 안주는 없으니까 그래도 앉아 쉬면서 한잔 하시려면 드시고 가라고 그러지. 그럼 자기들이 안주 가져와서 먹고 가기도 하고 그래. 그냥 알아서 내다 먹어. 그래도 가만히 먹고 가는 사람은 없어. 다 돈은 알아서 내고가. 그냥 동네 노인분이나 청소하시는 분들이 왔다갔다 하시면 내가 맥주 한잔 하고 가시라고 드리기도 하고.”
계란을 납품하는 아저씨가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아저씨 얼굴에 땀이 송글송글하다. 계란을 제자리에 놓아둔 아저씨 손에 시원한 공짜 아이스크림 하나가 안긴다. 땀으로 얼룩진 아저씨 얼굴이 금새 환해진다.
“아저씨가 작년에 갑자기 돌아가셨어. 그 양반이 생전에 병원에 안다녔어. 그런데 급성폐렴으로 병원에 가서 바로 돌아가셨어. 병원 가실 때도 본인은 돌아가실 줄 알았나봐. 목욕하고 이발하고, 나 고생한다고 마당 쓸고 자판기 물도 갈아놓고 병원에 가셨으니까.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장사하느라고 같이 가지도 못했는데. 지금은 그것이 원이 돼.”
계산대 너머 담배 판매대 위에는 지난해 세상을 떠난 권병호 씨의 사진이 조그마한 테이블 액자에 끼워져 있다.
“아저씨한테 배운 것도 있고, 난 그냥 욕심없이 살고 싶어. 아저씨가 마음이 좋아가지고 남한테 다 줘버려. 살아 있을 때 사업도 많이 했는데, 그러니 잘 될 리가 없지. 그런데, 지금은 아저씨가 살아 있을 때 베풀었던 덕으로 내가 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