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07.7 |
[남형두변호사의 저작권길라잡이] 창작자의 정신과 영혼의 연장선
관리자(2007-07-16 01:07:33)
창작자의 정신과 영혼의 연장선   해마다 새 학년의 준비를 교과서 표지를 싸는 것으로부터 시작한 적이 있었다. 그때 책 표지로 안성마춤은 빳빳한 달력 종이였다. 용도 폐기되는 달력이 이처럼 훌륭하게 재활용되었는데, 최근 달력이 다시 재활용되고 있다. 유명 화가의 작품사진을 활용한 대기업의 판촉용 달력을 해가 지나도 벽에 걸어놓는 경우가 그런 예다.   그런데 얼마 전 서울의 어느 병원에서 해 지난 달력의 사진을 오려 액자로 만들어 병원 벽에 붙여 놓았다가 작가로부터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소송을 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쟁점은 작가가 달력에 자신의 작품 사진 게재를 허락한 경우, 과연 사진만을 절단하여 따로 전시하는 것이 허락된 범위를 벗어나느냐였다.   1심 판결은 비록 달력에서 사진만을 오려내었다 하더라도 사진은 달력의 일부임에 변함이 없으므로 달력을 전시하는 형태로 사진을 전시한 것은 이용 허락범위 안에 있다고 보았다(서울지방법원 2003. 9. 18. 선고 2003가단215194 판결). 그러나 항소심에서는 1심 결론을 뒤집고 작가의 손을 들어주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04. 11. 11. 선고 2003나51230 판결). 달력에서 분리된 사진을 통해서는 날짜ㆍ요일을 전혀 알 수 없으므로 달력의 일부라고 할 수 없고 독자적인 사진 예술품으로 인식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런 결론에 도달하는 데는 인쇄기술의 발달로, 달력에 게재된 사진과 판매용 작품사진의 구별이 용이하지 않다는 점이 크게 고려됐다.   물건을 구입한 사람이 그 물건을 어떻게 이용하건 판 사람은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다. 그런데 미술작품, 사진작품과 같은 저작물은 소유자라고 하더라도 경우에 따라서 소유권행사가 제한된다. 우리 저작권법은 “가로ㆍ공원ㆍ건축물의 외벽 그 밖의 일반 공중에게 개방된 장소에 항시 전시하는 경우에는 그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라고 함으로써 소유권자와 저작권자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있다(제35조 1항). 이 사건에서 병원장이 사진액자를 자신의 집 안에 걸어놓았다면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일반 공중이 이용하는 병원 복도에 걸어놓았기 때문에 소유권자라고 하더라도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았어야 했던 것이다. 최근 한 아파트 건설회사가 서울 강남의 오크우드 호텔 1층 라운지에 설치된 ‘평원을 질주하는 말의 군상’을 형상화한 작품을 배경으로 아파트 TV 광고를 촬영하였는데, 10초 정도 광고의 배경화면으로 이 작품이 나온 것이 문제되어 소송으로 비화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07. 5. 17. 선고 2006가합104292 판결). 이 사건의 쟁점은 호텔 라운지가 '일반 공중에 개방된 장소'에 해당하느냐였다. 일반 공중에 개방된 장소에 항시 전시되어 있는 미술저작물은 몇 가지 예외를 제외하고는 어떤 방법으로든지 이를 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제35조 2항).   재판부는 호텔 라운지를 ‘일반 공중에 개방된 장소’로 볼 수 없다는 이유로 건설사ㆍ광고대행사가 작가에게 5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여기에서 병원과 호텔을 다르게 볼 이유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저작권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호텔을 ‘일반 공중에 개방된 장소’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볼 것이 아니라, 같은 조항에서 자유이용의 예외로 들고 있는 ‘판매의 목적으로 복제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아 건설사ㆍ광고회사의 항변을 배척했더라면 하는 생각이다. TV 광고를 위해 촬영하는 것도 넓게 볼 때 복제에 해당하는 것이고, 광고대행사는 광고주에게 판매하기 위해 광고를 제작하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결과적으로 저작권자를 보호하였으면 됐지 호텔 로비를 병원과 마찬가지로 ‘일반 공중에 개방된 장소’로 보든 안보든 그것이 왜 중요한가라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차이가 있다. 이 사건에서 일반 호텔투숙객 또는 방문객이 호텔로비의 미술품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한 경우, 판결대로 호텔로비를 “일반 공중에 개방된 장소”로 보지 않는다면 사적이용을 위한 복제에 해당하지 않는 한 원칙적으로 촬영자체가 금지되게 된다. 그러나 호텔로비를 위 달력사건의 병원복도와 마찬가지로 “일반 공중에 개방된 장소”로 본다면 원칙적으로 촬영은 허용되고 다만 “판매목적으로 복제하는 것”과 같은 예외적인 경우에만 불허되는 것으로서 차이가 있게 된다.   여기에서 ‘사적이용을 위한 복제’라는 것이 문제될 수 있다. 이는 “공표된 저작물을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아니하고 개인적으로 이용하거나 가정 및 이에 준하는 한정된 범위 안에서 이용하는 경우에는 그 이용자는 이를 복제할 수 있다”(제30조)라는 것으로서, 비영리와 일정범위의 소규모 이용을 요건으로 하고 있는데, 예컨대 영리목적이 없되 일정범위를 넘는 다중에 의한 이용의 경우 이 ‘사적이용을 위한 복제’에 해당하지 않게 된다. 바로 이런 경우에 호텔 로비를 “일반 공중에 개방된 장소”로 보는가 안 보는가의 차이가 실익을 갖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미술, 사진, 건축물과 같은 저작물의 경우 소유권자와 저작권자가 달라짐으로써 생기는 문제는 일반 물건과 다르다. 유형물의 경우 소유권이 이전되면 양수인은 소유권의 한 내용인 “사용의 자유”가 있게 되지만, 저작물의 경우 소유권의 이전에도 불구하고 저작권자에게 일정한 권리가 여전히 남아 있게 되어 위와 같이 “사용의 자유”에 일정부분 제한이 가해지는 등 복잡한 문제가 발생한다.   이는 저작물을 영혼의 연장물로 보는 헤겔(Hegel)류의 저작권철학의 산물이 아닌가 한다. 저작권에 관한 철학 중에 헤겔철학을 기반으로 하는 관념론에 따르면 저작물은 창작자의 정신과 영혼의 연장선이라고 보는데, 그 결과 저작인격권이 강조되고 저작재산권의 양도를 제한하게 된다. 우리나라 저작권법은 저작인격권을 강조하는 대륙법계의 영향을 받음과 아울러 저작재산권의 양도를 인정하는 미국 저작권법의 영향을 수용하여 만들어졌다.   아무튼 미술이나 사진과 같은 저작물의 경우 자기가 구입하여 소유권을 갖게 된다 하더라도 이를 공공장소에 전시할 경우에는 소유권 행사가 제한되어 작가의 허락을 얻어야 한다는 것과, 그렇게 하여 전시된 경우에는 누구나 이를 촬영 등의 방법으로 복제할 수 있지만 그 경우에도 판매 등의 목적으로 하는 경우에는 다시 저작권자를 보호하기 위해 제약이 가해질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물을 다루는 저작권이 소유권과 충돌할 때 발생하는 문제점은 이래 저래 새롭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