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07.7 |
[이흥재의 마을 이야기] 아름다운 등대의 푸른섬 이야기
관리자(2007-07-16 00:52:08)
아름다운 등대의 푸른섬 이야기 서해 먼 바다에 떠 있는 어청도 등대를 보러 갔다. 어청도 가는 길은 영화나 소설의 주인공이 환상을 찾아 떠나는 여행같다. 당일 날 배가 뜰지 어떨지는 누구도 쉽게 예측할 수 없고, 배가 출항을 했다가 중간에서 다시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맑았다가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비바람이 몰아치는 변덕스런 섬 날씨여서, 육지로 나오는 일은 더더욱 불확실하다. 갑자기 폭풍우가 불면 며칠씩 묵어야 하는 일이 다반사여서, 예기치 않게 섬에 갇혀있는 동안 흔히 영화나 소설처럼 구구절절한 사연들이 생기는 것이다. 처음가는 섬에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섬으로 들어가는 여객선 안에서 전북의대 이창섭 교수에게 전화를 했다. 이교수가 방글라데시에서 공중보건의로 근무 할 때 만났던, 해군 대령 이대복 전대장의 친절한 안내를 받아 봉수대, 등대, 치동묘를 장맛 비속에서도 꼼꼼이 답사할 수 있었다. 그날 저녁, 우연히 묵게된 민박집 아주머니는 중학교 6년 후배였고, 그 후배가 초대한 어청도 우체국장은 까마득한 중학교 후배였다. 셋이서 소주한잔에 조촐한 번개 동창회를 열었다. 섬에 오기 전날 밤엔 상상도 못했던 소설 속의 이야기가 펼쳐진 어청도의 밤이었다. 흔히 어청도에서는 중국 산동반도의 “새벽 닭 우는 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산동반도까지는 직선거리로 300km 밖에 안되어 서울에서 전주까지보다 조금 먼 정도이다. 이름처럼 늘 푸른 어청도는 섬도 주변바다도 푸르다. 바다 빛깔이 황해(黃海)가 아니라 청해(靑海)다. 이런 어청도를 지키는 신이 있다. 중국의 전횡 장군이다. 기원전 200여년경 유방이 항우를 물리치고 한나라를 세우자, 역발산기개세의 항우는 자살을 했고, 그를 따르던 전횡은 500여명의 군사를 데리고 서해바다로 망명에 나선다. 자욱한 안개 속에서 문득 푸른 섬이 나타났다. 이 섬에 내려 “어-청도”라 이름을 짓고 이곳에 살았다고 한다. 전횡이 봉수대가 있는 산 정상에서 부채를 펼치자 서해를 항해하던 모든 배들이 휘감겨 딸려왔다는 전설이 있다. 이 전설속의 전횡이 어청도의 수호신(神)이다. 치동묘는 마을 사람들의 안녕과 풍어를 관장하는 전횡 장군을 모신 신당이다. 비록 문짝도 낡아서 떨어지고 건물도 쇄락했지만, 전횡 장군의 초상화와 벽면 안팎에 그려진 용이나 모란 등의 퇴색한 단청은 화려했던 옛 영화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신당마당의 무성한 잡초와 내려앉은 지붕은, 섬에 있는 대부분의 신당이 거의 사라져 가는 현실을 대변해 주고 있다. 어청도는 예나 지금이나 군사적 거점이다. 어청도 주봉인 서방산위에 고려시대 왜구를 막기 위해 새운 봉수대가 있다. 둥그스런 석축으로, 군산의 고방산 봉수대와 신호를 주고 받았다. 지금은 봉수대의 전통을 이은 등대와 해군부대가 주둔하고 있다. 봉수대와 등대 그리고 해군부대는 어청도가 지리적으로 전략적 요충지임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러·일 전쟁 후 러시아 조차지였던 다렌을 인수받는다. 오사카와 다렌을 연결하는 정기 여객항로가 개설되면서, 어청도는 중간 기착지가 되었다. 어청도에 도착한 배는 중간 기착지에 잘 도착했다는 무전을 친다. 그래서 이런 먼 바다 섬에 당시 최첨단 통신망인 전보를 칠 수 있는 우편국이 전주, 군산 다음으로 들어선 것이다. 일본사람들은 방파제를 만들고 어업조합을 결성한 후 거주 일본인을 위한 소학교를 세운다. 어청도를 완전 장악한 후 한일합방이 이루어지고 1912년 3월 1일 등대가 점등된다. 인천을 제외하고는 가장 빠른 시기에 서해안에 점등한 어청도 등대는, 오직 일제의 대륙 침략의 정략적 목적으로 건설되었다. 섬이 여객선, 화물선 그리고 일본 해군 함대가 정박하는 중간 기착지가 되면서 한집 건너 술집, 한집건너 다방이 생겨 노래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대학시절 M·T 가서 저녁식사 후 빙 둘러 앉아 부르는 노래 중 하나가 ‘등대지기’였다.                얼어붙은 달그림자 물결위에 지고                한겨울에 거센 파도 나르는 작은섬                생각하라 저 등대를 지키는 사람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민속학자 주강현 선생은 “어청도 등대를 보지 않고는 제대로 된 등대를 보았다고 말하지 말라”고 얘기한다. 100여년 가까이 어청도를 지키고 있는 등대는, 영화「빠삐용」에서 마지막 탈출하는 절벽처럼 아슬아슬한 천길 낭떠러지 위에 있다. 풍수지리상 섬의 ‘혈’자리에 있는 등대는 하얀 드레스를 입은 아름다운 여인의 자태처럼 곱다. 흰 사쿠라 꽃이 피어있는 등대 박공과 100여년전 주물로 만든 검정칠 계단은 비록 좁고 옹색하지만 등대의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균형 잡힌 빼어난 몸매를 자랑하는 등대탑의 중간 창 윗부분은, 우리 한옥의 처마선을 연상케 한다. 한편의 시같은 풍경이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