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7 |
[특집·등대] 푸른바다의 하얀 보석 Ⅳ
관리자(2007-07-16 00:50:06)
고군산군도의 끝섬, 말도 등대
해가지면 등대가 깨어난다
●‘군산에서 남서쪽으로 약 40Km 떨어진 해역에는 유독 조그마한 섬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곳이 있다. 선유도, 장자도, 관리도, 방축도, 명도, 말도 등 예순세 개의 높이가 낮은 섬들이 바다에 무리지어 있는 이곳은, 그 모습이 마치 야트막한 산들이 모여 있는 것 같다고 해서 ‘고(古)군산군도(群山群島)’라고 불린다. 말도(末島)는 고군산군도 중에서도 맨 남서쪽에 위치해 있는 섬이다. 전북에는 단 두개 밖에 없는 유인등대 중 한 개가 이곳에 있다. 일제강점기였던 1909년 일본에 의해 등대가 세워져, 100여 년이 다되어가는 지금까지 그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말도로 가는 배는 오전 9시와 오후 2시, 하루 두 차례. ‘장자훼리호’가 장자도와 관리도, 방축도, 명도를 거쳐 말도에 이른다. 오전 9시 군산내항에서 말도행 배를 탔다. 약 한 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첫 기착지 장자도를 시작으로 관리도, 방축도, 명도에 금방금방 다다른다. 군산에서 한 시간여를 나왔을 뿐인데도 바다색깔은 확연히 다르다. 도착지에 예정한 말도에 도착한 건 출발한지 두 시간이 다되어갈 무렵이었다. 몇 사람이 내리고, 선착장에서 배를 기다리던 몇 사람이 타자 배는 이내 다시 군산으로 출발해 버린다.
선착장 바로 옆에는 태풍이 왔을 때 마을의 작은 배들이 피신할 수 있는 내항이 만들어져 있다. 방파제의 끝에 나란히 서있는 하얀색과 빨간색의 작은 무인등대가 섬의 운치를 더한다.
선착장에서 길은 정반대의 두 갈래 길로 나뉜다. 오른쪽 길은 마을로 가는 길이고, 왼쪽 길은 말도등대로 가는 길이다. 외딴 섬 안에서도, 섬의 가장 바깥쪽 외딴 곳에 떨어져 있다. 될 수 있는 한 멀리멀리 빛을 보내기 위해서는 그렇게 외딴 곳에 홀로 있어야할 것이다.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 산 위에 우뚝 솟은 등대가 보인다. 틀림없이 말도등대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말도등대는 현재 공사 중이다. 1989년 세워진 원형의 콘크리트 등탑을 철거하고, 팔각탑으로 바꾸는 공사다. 지난해 11월 철거를 시작해, 오는 9월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는 콘크리트 구조물이 거의 다 세워져 있는 단계다. 등탑이 공사 중이라 임시등멸기가 등대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비록 등대의 제 모습을 보지는 못했지만, 그곳은 전망만으로도 충분히 가볼만한 가치가 있었다. 등탑이 있는 곳으로 가자, 갑자기 시야가 탁 틔였다. 온통 푸른색이었다. 거칠 것이 없었다. 선착장 앞, 여러 섬들이 바로 눈앞에 보이던 풍경과는 대조적이었다. 과연 등대가 있을만한 자리였다. 등대의 서쪽으로 파랗게 펼쳐진 바다 위에는 점점이 하얀 고깃배들이 떠 있었고, 저 멀리 커다란 배들이 지나가는 것도 보였다.
“여수나 목포에서 인천이나 평택을 가든, 아니면 군산에서 오가는 배든 간에 서해를 오가는 배들이라면 이 해역을 안지나갈 수가 없어요. 저 남쪽으로 보이는 섬이 위도구요. 서쪽으로 멀리 희끄무리하게 보이는 섬 있죠? 거기가 사격장 문제로 시끄러웠던 직도에요. 그 옆이 청자가 발견되면서 유명해진 십이동파도구요. 거기서 북쪽으로 보이는 섬이 어청도, 그리고 저기 북쪽으로 길다란 띠 같은 것 보이죠? 거기가 새만금방조제에요. 그 너머 보이는 산은 군산내항이구요. 군산에서 배탄 곳이 저곳이에요.”
배로 두 시간을 달려온 곳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말도에서 군산항까지는 약 30여Km, 육지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조망을 이곳 말도등대는 보여주고 있었다. 그만큼 해안지리적으로 요지에 자리 잡고 있다는 증거다.
말도등대에는 세 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등대지기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정확한 명칭으로는 항로표지관리소 직원이다. 등대는 밤에 불을 밝혀 배에게 위치를 알려주는 이외에도 생각보다 훨씬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일몰?일출 때 등대를 껐다 켰다하는 일부터, 평상시 등대의 유지보수관리, 안개가 많이 끼는 날이면 ‘무신호’를 가동하기도 하구요. 세 시간에 한 번씩 기상대에 풍향 풍속 구름 등을 측정해서 알려주는 일과 매일 아침 해수온도와 비중을 측정해서 알려주는 일 등을 합니다.”
근래에는 배에 항로전자장비가 발달하면서 ‘DGPS’라는 장비를 관리 운영하는 역할의 비중이 크다. 위성을 이용해 선박에 정확한 전자해도를 제공하는 장비다. 선박들의 안정운항을 위한 전자장비가 발달했지만, 등대도 그 기능을 발전시키면서 여전히 필요성을 이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등대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보람도 그만큼 크다.
“아무래도 섬이다보니까 힘들긴 힘들죠. 외딴 섬인데다가 또 거기서도 따로 떨어져 있어야 하니까요. 식수문제도 힘들구요. 2년 전까지만 해도 빗물을 사용했어요. 그마저도 떨어질 때가 많았죠. 여기 등대 올라오는 길 닦은 지는 7년 정도 되는데, 그 전만해도 필요한 물품들을 다 직접 나를만큼 힘들었죠. 하지만, 자긍심은 커요. 평상시에는 잘 모르지만, 폭풍이나 파도가 거셀 때 저 멀리 항해하는 선박들을 보면 저배들이 이런 상황에서도 운행할 수 있는 이유가 내가 여기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보람이 생기죠. 야간에 이 근방에서 일반 소형어선들이 작업을 할 때도, 우리 등대 불빛에 의존을 많이 한다고 하더라구요.”
말도에서 하룻밤을 자고 나올 생각이 아니라면 늦어도 3시 50분까지는 선착장에 나가 배를 기다려야 한다. 군산에서 2시에 출발한 배가 그 시간쯤이면 말도에 도착하기 때문이다. 아직 등대는 잠들어 있을 시간이다. 해가 지면 비로소 등대도 깨어나 눈에 보이지도 않는 먼 곳까지 불을 비출 것이다. 웬만한 등대 불빛은 40Km 정도에서도 너끈히 보인다고 한다. 군산 앞바다, 저 멀리서 깜빡이는 불빛이 보인다면 말도등대가 거기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