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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7 |
[최승범 시인의 풍미기행] 냉콩국수, ‘서시유’빛깔과 존득거리는 맛
관리자(2007-07-16 00:40:02)
[최승범 시인의 풍미기행] 냉콩국수, ‘서시유’빛깔과 존득거리는 맛 하긴, 하지절이니 앞으로 가을바람이 이르기 까지는 날로 기온이 높아질 수밖에 없을 터이다. 그런데도 어느덧 수은주가 28도를 웃돌고 있다. 길을 걷자면 숨이 턱에 찰 정도다. ‘밥맛도 떨어졌어. 어디 입맛 당길 먹거리가 없을까.’ 마침 점심시간 가까이 박남재화 백, 예전(藝田)여사와 같이한 자리에서의 푸념이었다. ‘콩국수 어때요. 냉콩국수 잘하는 집이 있는데….’ ‘그것 좋지요. 이 철 음식이기도 하고.’ 우리는 곧 마음이 모아졌다. 찾아간 집은 중앙상가 남문께의 골목 안에 있었다. 「매일분식」(전주시 태평동 36-19, 전화 063-254-4652)의 보람판이었고, 내부도 깨끗한 단장이었다. 16년의 식당 역사라고 했다. 콩국수라면 어린시절의 추억부터 어려든다. 여름철에도 냉콩국수가 아닌 온(溫)콩국수였다. 밀가루 반죽도 어머니의 손결이었고, 그 반죽덩이를 국수방망이로 밀어 둥글고 얄팍하게 펴는 것도 어머니의 손결이었다. 얄팍하게 밀어낸 것을 밀가루로 분칠하여 갸름하게 접어서 국수가닥으로 써는 것도 어머니의 손결이었다. 미리 마련하여 솥에서 끓고 있는 콩국에 국수가닥을 풀어 넣어 익힌다. 익은 국수가닥을 건져 대접에 사려 넣고, 끓고 있는 콩국을 적당량 떠내어 붓는다. 그 위에 오이썰이를 안구어내면 몫몫의 콩국수가 되었다. 더운 날인데도 이 콩국수 한 대접을 훌훌 입김 불어가며 먹자면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솟아도 속은 시원한 느낌이었다. 울안의 감나무잎을 스쳐오는 한 점 바람이면 어느 부챗바람이 이보다도 더 서느러울 수 있으랴 싶었다. 나는 한 대접의 콩국수를 비우고도 으례 더도리하기 일쑤였다. 「매일분식」의 냉콩국수가 나왔다. 보름달보다도 더 큰 세라믹스 대접이다. 서시유(西施乳)처럼 뽀얀 콩국이다. 톱톱한 국물이다. 그런데도 국수 위에 콩가루가 뿌려져 있고, 오이썰이에 토마토도 몇 점 올라 있다. 국수가닥은 칼썰이가 아니요, 국수틀에서 뽑아낸 것이라고 했다. 국수틀로 뽑아내는데도 반죽을 잘해야 국수가닥의 맛을 살릴 수 있다는 덧붙임이었다. 아닌게 아니라 국수 맛은 입안에 들어 헤프게 무르지도 퍼지지도 않는 맛이다. 존득거리는 맛이 여간이 아니다. 콩국물을 수저로 떠먹자니 성이 차질 않는다. 양손으로 대접을 앙구어 훌훌 마셔야 감질이 풀리는 것 같았다. 따라나온 찬은 딱 두 가지, 배추겉절이와 단무지일 뿐이다. 처음엔 찬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냉콩국수 만으로도 입안은 온통 즐거웠기 때문이다. 따라서 간을 챙길 겨를이 없었다. ‘이 겉절이 맛있다. 이것만으로도 밥 한그릇 감식할 수 있겠다.’ 박화백의 말이었다. 그제야 나도 찬에 생각이 미처 젓가락을 옮겼다. 배추·부추·당근썰이를 버무렸는데 희한한 젓갈맛이 풍긴다. 주인 조중현씨에게 젓갈 이름을 물었다. ‘멸치젓 까나리액젓 황석어젓 만으로 물을 쓰지 않은 겉절이’라는 것이었다. 과식 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으나, 한대접을 싹 쓸어 비웠다. ‘잘 자시네요. 국수는 소화도 잘 돼요.’ 예전여사의 말이었다. 콩국수는 콩의 담백질·지방질로 하여 특히 땀을 많이 흘리는 여름철에 몸을 보할 수 있다고도 했다. 냉콩국수 한 대접 값은 4천원, ‘대장부’ 점심이래도 이만하면 족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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