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6 |
[특집] 6월 민주화항쟁 20주년 ‘뜨거웠던 거리의 역사, 그 성과를 넘어’
관리자(2007-06-14 11:31:43)
‘뜨거웠던 거리의 역사, 그 성과를 넘어’
글 | 박종훈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대표
올 해는 6월 항쟁 20년이 되는 해이다. 처음으로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어 각종 행사들이 다른 어느 때보다도 많이 진행됨을 누구나 느낄 것이다.
6월 항쟁은 86년 1월 박종철고문치사 사건으로 시작되어 6월10일 호헌철폐와 직선제개헌 투쟁을 뛰어넘어 7,8월 노동자대투쟁 그리고 대선으로 이어지는 한해의 역동적인 투쟁의 성과이지만, 크게는 4.19, 5,18을 포함한 60년, 70년, 80년의 국민적 저항과 투쟁의 성과를 포괄하는 역사의 한 분수령이자, 이후 한국 사회를 발전시킨 새로운 시대정신의 시작여서, 그 이후 20년을 포함해서 6월 체제라고 부르고 있다. 유신체제, 독재체제라는 말과 비교하면 6월 체제가 갖는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또 6월 항쟁은 오히려 1987년 대선 실패와 그 이후의 과정에서 문민정부, 민간정부, 국민정부을 구축하고 우리사회의 변화를 주동한 민주화 담론의 중심에서 개혁을 추동한 살아있는 역사발전 동력이다.
따라서 6월 항쟁 20년을 돌아보는 것은 역사와의 대화이자, 미래 사회발전과 비전을 위한 새로운 모색의 시작이다.
이름도 명예도 필요 없는 수백만 명의 현장의 실천이 바로 6월 정신의 기본이다
아직도 억압의 굴레에 빠져 있는 아시아, 아프리카와 남미의 여러 국가들의 민중들에게는 6월 항쟁은 살아있는 민주주의 교과서이다. 실패한 좌절의 경험에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고난의 투쟁의 경험이 아니라, 독재체제의 권력재창출의 강력한 무기인 체육관 간선제를 폐지를 시작으로 직선제 쟁취와 선거과정을 통해 독재정권을 바꾸어 버린 획기적인 사건은 결코 우리나라만의 역사적 경험이 아닌 세계사의 획기적인 사건으로 인식되고 있다.
특히 광주민중들을 학살한 전직 대통령을 구속하고, 사회 전체적으로 절차적 민주주의를 완성시키는 역동적인 과정은 지금도 남아있는 제3세계 독재자에게는 강한 경고가 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민중들은 민주화는 수십 년 뒤의 먼 미래가 아니라, 바로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인식 속에서 투쟁의 가속화를 촉구하는 힘을 바로 6월 항쟁에서 얻고 있다.
87년 6월 당시,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하고, 투쟁의 주역은 바로 보름동안에 진행된 전국적 거리투쟁에 참여한 이름도 명예도 없는 평범한 국민들이다.
투쟁이 시작된 맨 첫날은 창문에서 박수를 치던 시민들은 바로 거리의 보도로 쏟아져서 시위대를 체포하는 경찰들에게 야유를 퍼부었고, 이어서 보도에서 차도로 내려와 시위를 주도했다. 경찰에 주눅 들었던 시민들이 거리에서 6월 항쟁의 주역으로 등장하자, 이제와는 다른 새롭고 강한 자신감과 함께, 투쟁에 의해서 민주화의 전초인 직선제개헌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이 절정으로 높아져 갔다.
실제로 매일 수백만 명이 참여하는 6월 항쟁 기간의 거리시위에는 누가 지도부라 할 것도 없이 집단적인 축제의 광장이 되었다. 말이 아니라, 몸짓으로, 몸짓을 뛰어넘는 행동으로 보여준 시민들의 투쟁은 군부개입의 위협이나 역쿠테타의 위협을 뛰어 넘어, 항복을 받아 내는 동력이 되었다.
‘대통령을 내손으로…’라는 간단한 구호 속에 담겨져 있는 민주화의 시발점은 이렇게 이름도 없고 명예도 없는 수백만 명의 시민들의 투쟁에 의해서 쟁취되었다. 이런 이유로 6월 항쟁은 당시 국민운동본부가 있었지만, 투쟁은 자발적으로 시작되어, 전국적 통합을 이루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이런 귀한 투쟁의 경험들은 시기 때마다 등장했으며, 최근에 실천되었던 것은 탄핵반대집회였다.
이런 이유로, 개인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6월 항쟁에 참여한 모든 분들에게 집단적으로 명예 민주화유공자로 선언하는 것을 6월 항쟁 20주년에 정부에 의해서 이루어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성명이 명시되지 않은 수백만 명에게 집단적으로 부여하는 명예 민주화유공자는 6월 항쟁의 주역으로 이름도 없고, 얼굴도 없는 수백만 시민을 복권시키는 상징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6월 체체 이후의 민주주의는?
6월 항쟁은 6월당시를 뛰어넘어 6월 체제로 불리워질만큼 우리사회의 민주주의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면서 발전하게 된다.
6월 항쟁이후 민주주의 제도화 즉 절차적 민주주의 실현이 높아지면서, 민주주의 추구 내용도 새롭게 변화하게 된다. 냉전체제극복과 반부패, 탈권위, 풀뿌리민주주의 등의 정치적 민주주의의 내용은 내실화를 기하게 된다.
그러나 올해가 6월 항쟁 20주년이자, IMF 10년이라는 뼈아픈 고통이 계속되고 있는 해라는 것을 기억한다면, 6월 체제가 해결하지 못하고 오히려 방관하고, 또 최근에는 한미FTA를 통해 추동한다는 느낌이 있는 세계화 전략 속에서 우리사회의 양극화문제가 심화되고 있다는 점은 가슴 아프다.
6월 항쟁은 독재정치의 과정 속에서 나타나는 정치절차의 문제나 인권의 문제, 그리고 노동자의 인권이라는 우회적인 경로를 통해 국민적 공감과 동력을 얻어 권위정치를 무너뜨렸으나, 여전히 세계시장과 그를 매개로 한 재벌들에 대한 개혁이 전면적으로 제시되거나, 재벌개혁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IMF하에서 구조조정을 통해서 몇 가지는 개선되었으나, 이 것은 시장자체가 살아남기 위한 재벌들의 자구책이었다.
따라서 절차적 민주주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시장중심의 양극화현상이 우리 사회의 새로운 현상으로 등장하고 갈수록 그 격차가 심화되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수도권과 지방, 대기업과 중소기업, 자동차산업과 농업 등 새로운 문제들의 확대발전은 6월 체제를 뛰어 넘어 새로운 대안의 담론과 실천을 요구하고 있다.
최소한 ‘인간의 얼굴을 한 시장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경제개혁의 문제가 주요한 관심사인 현실에서 새로운 담론운동이 필요하다.
6월 체제가 만든 것은 아니지만, IMF 10년이라는 현실로 인해 이제는 6월 정신을 새롭게 계승하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그리고 자만과 관료화된 ‘기존 정부의 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이 이제는 6월 체제의 계승이 아니라, 이번 대선에서 보수정부의 등장으로 사라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흔히 유럽이나 미국에서 진행되는 보수정권의 집권의 의미와 우리나라의 의미는 같은 것이 아니고, 획기적으로 다르다. 한반도의 평화, 양극화해소를 통한 지속가능한 발전이 가능한 사회로 발전이 아니라, 과거 권위주적 정권의 분단정책과 양극화 가속화 등으로 우리사회가 몇 십 년 후퇴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기 때문에, 6월 항쟁 20주년에 맞이하는 대선은 정말 중요하다.
6월 체제를 뛰어넘어, 지속가능한 발전이 가능한 사회복지체제로 가느냐? 아니면 과거 보수로의 회귀냐? 라는 중대한 계기에서 실천적 대안을 6월 항쟁 때처럼 남녀노소를 뛰어넘어, 동서라는 지역을 뛰어넘어, 또 정치권의 작은 차이를 뛰어넘어 대통합이 이루질 때, 6월 체제는 그 역할을 다하게 될 것이다.
6월 항쟁 20년을 맞이하는 지금, 우리는 20년 전의 6월 항쟁과 그 성과인 6월 체제를 기억하고 사회문화적 차원에서 올바르게 기념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민주화운동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가 등장하는 현실에서 한 세대 전인 20년 전의 6월 항쟁을 투쟁의 역사로서 기억하고, 그 것을 한 사회의 가치로서 정립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흔히 기념을 박제화된 기념관으로 생각하거나, 변화 없이 반복되는 기념행사로만 인식하고 있는 현실에서 기념의 의미를 재정립하는 것도 시급히 필요하다.
과거청산과 미래유산이라는 측면에서 과거사의 잘못을 정리하고, 이 것을 미래사회의 유산으로 남기는 작업은 우리사회 전반 민주화의식의 고취와 세계민주주의 발전에 기여를 할 것이다.
그러나 기념의 핵심은 6월 체제 외부에서 충격을 안겨준 IMF 10년을 극복하기 위한 경제개혁을 포함한 미래 한국사회진로와의 징검다리라는 것이다. 민주화운동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와 민주화운동을 폄하하는 집단들에게 과거를 기억시키고 기념하는 것과 미래사회를 위해 계승 발전시키는 것은 둘 다 세상을 바꾸는 일이 될 것이다.
유신체제는 과거청산 차원이라면, 6월 체제는 극복과 계승을 통해 보다 승화된 미래체제로 변화될 것을 바라는 것은 온 국민의 소망일 것이다.
박종훈/ 6월 항쟁당시 호헌철폐국민운동전북본부 정책실장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대표와 전북시민사회단체상임공동 대표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