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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6 |
[오래된 가게] 전주 용머리고개 ‘한일민속대장간’“이제 이 일은 민속이요”
관리자(2007-06-14 11:11:14)
전주 용머리고개 ‘한일민속대장간’“이제 이 일은 민속이요” 글 | 최정학 기자 용광로 속에서 시뻘겋게 달궈진 쇠뭉치가 나온다. 김한일 씨의 손길이 바빠진다. 쇠뭉치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두드린다. 이내 식어버린 쇠뭉치가 다시 용광로에 들어가고 대장장이의 손길에 내맡겨지길 몇 번. 단단하고 뭉툭하기만 하던 쇠뭉치가 서서히 제 쓰임의 꼴을 갖춰가기 시작한다. 그 모습이 확확 달아오르는 용광로의 열기도 잊을 만큼 재밌다. 전주시 완산구 서완산동. 상공에서 내려다본 산의 모습이 마치 용의 머리 형상을 닮았다고 해 이름 붙여진 ‘용머리고개’는 골동품 가게와 대장간이 모여 있는 이색적인 공간이다. 한일민속대장간도 그곳의 한켠을 차지하고 있다. 화려하게 제법 멋을 낸 간판 아래 괭이, 호미, 시퍼렇게 날선 조선낫 등 농기구가 진열되어 있다. “1955년에 남부시장에서 형님하고 같이 시작했지. 그때가 한 1975년 쯤 되았을랑가. 그러다가 남부시장 현대화 사업한다고 나 혼자 독립해서 이쪽으로 옮겨 왔지.” 지금으로 치자면, 중학생 정도 되는 앳된 나이에 대장간일을 시작해 50년 넘게 용광로 앞을 지켜온 김한일 씨의 얼굴이 구릿빛으로 그을려져있다. 그 사이 가게의 이름도 ‘한일철공소’에서 ‘한일민속대장간’으로 바뀌었고, 김씨의 손재주도 전국적으로 알려졌다. “돌 일하는 연장이 내 특기여. 나만 하는 열처리 공법이 있지. 그래서 지금은 강원도에서도 찾아오고 경상도에서도 물건 보내달라고 하고, 내가 오래 해논게 이름이 알려지면서 전국적으로 많이들 찾아와.” 대장간 일이 불을 다루는 일이라 비가 오는 날이면 손님이 없을 것 같지만, 이곳은 정반대다. 그의 손재주를 신뢰하는 ‘현장 일’하는 사람들이 일을 할 수 없는 비오는 날 이곳으로 작업 연장을 수리하러 몰리기 때문이다. 몇 십 년 된 단골들도 많다.   “대장간 일이라는 것이 물론 품목이 정해져 있는 것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은 손님 주문에 따라야해. 호미를 하나 만들더라도 손님이 ‘어디에다 쓸테니까 어떻게 만들어주쇼’하면 거기에 맞춰줘야지.” 하지만, 시대는 변하고 있고 대장간의 일감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옛날엔 괭이, 호미 같은 농기구랑 솥이 많이 팔렸지. 그때는 일일이 손으로 김 메고 해야하니까 너도나도 농기구를 많이 사갔어. 지금이야 농업이 기계화가 되가지고 잘 안팔려. 호미 하루에 몇 개씩 팔고, 괭이나 낫 같은거 또 몇 개씩 팔고 그러지 뭐.” 김한일 씨가 이곳에 이전할 때만해도 따로 직원을 네 명이나 두고 일할만큼 손이 딸렸다. 일거리가 줄어들면서 지금은 직원들도 다 떠났다. 그래도 김 씨는 이 일을 아직 놓지 못하고 있다. “이제 이 일은 ‘민속’이요. 없어지면 안되는거지.” 다행히, 그의 막내아들 김창호 씨가 3년 전부터 아버지의 일을 거들겠다고 나섰다. 반평생을 쇠를 다뤄왔기 때문에 그 일이 얼마나 힘든지 말해줬지만, 아들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하도 하겠다고 해서, 대신 날 원망하지는 말란 말만 했지. 내가 어렸을 때부터 이 일을 해왔지만, 이거 정말 어려운 거요. 불조정할 줄 알아야지, 왜냐하면 너무 많이 달구면 쇠가 물이 되가지고 베려버리고 너무 적게 달구면 쇠를 다루기가 힘들고 하니까. 달군 쇠를 두드려서 모양을 만들줄 알아야지, 만들고 나면 물에 담궈서 열처리할 줄 알아야지. 오래해야 혀. 금방 되는 것이 아니여. 하나하나 배워야지, 내가 하는거 보고 눈썰미로 알기도 하고. 아무튼 안해보믄 못허는 것이니까.” 이제 김 씨는 아들이 제법 잘 하고 있다고 칭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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