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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6 |
[길 위의 추억] 나, 능라의 바닷길 인도양에 있었네
관리자(2007-06-14 11:08:42)
나, 능라의 바닷길 인도양에 있었네 글 | 박남준 시인 저 푸르름을 무어라 불러야하나. 인도양의 바다가 푸른 비단을 펼친다.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모호하다. 수심 4,000미터, 언제 내가 2.000미터가 넘는 산을 오른 적이 있었는가. 잠기고 싶다. 몸을 던지고 싶다. 먼지처럼 나는 부유할 것이다. 푸르다, 푸르스름하다, 아니다. 푸르뎅뎅하다, 짙푸르뎅뎅하다, 푸르청청하다, 푸르짙짙하다. 푸르밝밝하다, 아니다. 코발트, 코발트 블루, 블루 사파이어, 아니다. 저건 푸른빛이 아니다. 인도양은 바다가 아니다. 세상의 어떤 명명으로도 이름지을 수 없다. 우리가 지어 부르는 이름이란 얼마나 잘못된 허울에 지나지 않는가. 색에 대한 형용사가 어느 민족의 언어보다도 풍부하다는 나의 모국어로도 표현할 수 없다.   망망하다는 말은 바다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세상의 빛들이 변하는 시간 일몰의 바다, 인도양은 황금의 연금술을 피워 올린다. 태초를 건너온 풍경이 거기 있었다. 모두들 말문이 막혔다. 존재론적인 고민에 빠져들기도 했다. 욕망이 덧없음을 깨닫는다 한갓 춘몽이었음을 일깨운다 인도양에 지는 해가 황금빛 능라의 길을 뱃머리에 펼친다 해가 진다 달이 뜬다 해의 길이 거두어 지고 해처럼 붉은 달이 길을 닦는다 손짓한다 견딜 수 없다 잔인하다 이 살인지경의 도저한 시간 밀려온다 전율처럼 꽂힌다 새처럼 몸을 떤다 탕- 내 몸은 관통 당했다 바다를 보면 떠오르고는 했다. 나 태어나 살던 작은 바닷술 마셨다. 필름이 끊겼다. 항거할 수 없는 풍경이 결국 왼쪽 발을 관통했다. 며칠 걸릴 것이다. 뼈가 부러졌는지 인대가 끊어졌는지 퉁퉁 부어오른 왼쪽 발을 끌며 나는 절뚝거린다. 왼쪽 발이 다치고야 나는 의자를 꺼내들었다. 우리들이 기숙하는 선실 바로 옆 갑판 난간에 의자를 끌고 간다.   세상의 땅 끝으로부터 가장 먼 의자에 나가 앉았다. 날마다 상학이와 나, 그리고 용주와 창훈이가 한조가 되어 복식탁구를 치고는 했다. 서로 배를 움켜쥐고 웃느라 허리가 개미처럼 잘룩해질 정도로 즐거웠는데. 혼자 남아 고래당번을 선다. 사전에도 없는 이 고래당번이라는 말은 혼자 갑판에 나가 바다를 바라보는 사람에게 너 지금 고래를 기다리며 당번을 서고 있느냐는 뜻으로 우리가 지어 부른 말이다. 어제는 날치 몇 마리만 겨우 보았을 뿐이었다. 하루종일 바다만 바라본다. 뭐라고 돌고래 떼라고 마침 우리가 밥을 먹으로 식당에 가있었는데 창 밖을 내다보던 용주가 소리쳤다. 우르르 갑판으로 몰려나갔다. 돌고래 떼를 보았다 수십마리가 배 곁으로 다가와 뛰어오르며 묘기를 펼친다. 장관이었다. 저럴 수가, 점프 점프 우리들이 손을 들어 가리키며 외치자 마치 알아들었다는 듯 뛰어오르고는 했다. 인도양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물고기들은 날치였다. 은빛처럼 투명하고 빛나는 푸른색의 몸을 가진 날치들은 물을 차고 날며 4-50미터는 거뜬히 비행을 하는데 마치 새처럼 날개 짓을 하다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는 놀라운 비행술을 보여주기도 했다. 기관실을 방문했다. 이를테면 배의 뱃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쉽지 않는 기회였다. 엔진과 발전기들, 바닷물을 담수로 만드는 조수기며 화장실 폐수처리기, 온수기 등 기관실이 움직이는 일들을 박태국 기관장님의 친절한 안내로 알 수 있었다. 크르릉 크르릉 굉음을 지르며 기계들이 움직이는 곳, 특히 발전기가 돌아가는 곳은 사우나실이 달리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현대하이웨이 호, 이 큰배가 움직이는 것은 하루에 천만원이 넘게 든다는 80여톤의 벙커시유가 연소되며 나오는 에너지 때문이 아니라 여기 기름 밥에 절은 옷을 입고 일하는 이들이 흘리는 건강한 땀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밤 9시, 우리나라시간으로 계산하면 자정을 넘긴 시간이다. 통신방실로 올라간 창훈이가 내려와 빨리 일어나라고 한다. 이 배의 제일 꼭대기인 브릿지 바로 아래층엔 우리들이 혼자 있고 싶거나 글을 쓸 일이 생겼을 때 이용할 수 있는 방이 하나 있었다. 그러나 항해가 끝나갈 무렵까지 그 통신방실에서 잠을 잔 횟수는 4명 모두 하루 이틀을 넘기지 않았다. 모두들 무슨 일인가 하며 윙브릿지에 올라갔다. 인도양의 밤하늘 별들의 잔치에 초대한 것이다. 처음으로 갑판에 누워 별들 별빛들, 별의 안부를 묻는다.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남십자성이며 날치 떼들이 푸른 바다위로 새처럼 날며 직선의 비행을 하듯 별똥별들이 밤하늘을 가로지르며 은빛 찰나의 선을 그린다. 바다 속에서 해가 뜨고 바다 속으로 해가 졌다. 달도 해처럼 붉게 뜰 수 있다니. 바다 속에서 달이 뜨고 바다 속으로 달이 졌다. 검푸른 저녁 무렵이면 출렁거리며 반짝이는 흰 파도는 마치 가없는 연못위로 무진무진 피어오르는 백련 꽃의 향연 같다. 오늘은 점심식사가 끝나고 비상훈련이 있는 날이다. 기름유출에 대비한 훈련이며 기관실 화재진압, 계기고장으로 배가 자동통제작동이 되지 않을 때 키를 수동으로 조작하는 비상조타훈련, 구명정에 탑승하여 탈출하는 과정 등등 모두들 땀을 흘리며 훈련에 열중이다. 나는 아직 부어오른 왼쪽발로 절뚝거리고 있으므로 오늘도 세상의 땅 끝에서 가장 먼 의자에 앉아있다. 바다거북이 한 마리를 보았으며 소원처럼 고래 한 마리를 보았다. 등에 세로로 된 줄무늬가 있는 고래, 줄무늬 고래였다. 오늘 고래당번은 성공이었다. 성능이 시원치 않은 디지털 사진기 때문에 줄무늬 고래가 꽤 가까이 까지 다가왔는데도 사진 찍기를 실패해서 섭섭했지만 그래도 눈으로 담을 수 있었으니 그게 어디냐고 위안을 했다.     어느덧 배에 오른 지 16일째다.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저녁 7시, 배가 서쪽으로 서쪽으로 나갈 때마다 하루나 이틀 꼴로 한시간씩 시간이 후진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시간으로 대략 밤 12시쯤이다. 며칠 전에 용주가 그랬다. 4월 29일이 아버지 제사라고 혹시 잊어버릴지도 모르니 기억해달라고 했었다. 소주가 없으니 양주 한 병, 그리고 우리가 안주로 준비해둔 마른 한치 몇 마리 올려놓고 술 따르며 절 올리고 방안에서 조촐히 지내자고 했다. 그러나 사실 윙브릿지 갑판에 올라가 제사를 모시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기는 했다. 그랬었는데 제사장소가 변경되었다. 바로 우리가 원했던 장소에 제사상이 훌륭히 차려지고 있단다. 집 떠나 만리타향 배를 타고 가면서 제사는 무슨 제사냐고 누구는 제사 없는 사람이 있느냐고 혹여 눈치를 보일까봐 일부러 방안에서 지내자고 말을 맞추었던 것인데 어찌된 일이냐고 하니 선장님이 지시를 해서 제물들을 차렸다고 한다.       점심식사 후식으로 나온 오렌지를 집어들며 그런 말을 했었다. 제물과일로 쓰면 되겠네 하고 그랬는데 선장님이 그 말을 듣고 무슨 제사냐고 연유를 물었고 누군가 자초지종의 내막을 말했던 것이다. 전라북도 산골 장수 땅에서 머나먼 인도양 잘 찾아오시라고 상학이가 지방을 썼다. 술잔을 올리고 제사상에 엎드려 용주가 어깨를 들먹거린다. 인도양에서 제사상을 받는 이는 아마 지구상에서 용주 아버지가 처음일 것이다. 몇 년째 나는 아버지의 기일에 가지 않았다. 집안에 종교적인 문제로 제사방식을 가지고 자꾸 분란이 일자 대세를 따르기도 전통제례방식을 고집하기도 내내 불편했다. 전통제례방식이라고 해보았자 지방을 쓰고 술잔을 올리며 거기 엎드려 절 두 번 하는 것이 고작인데 절이 안 된다니 그게 무슨 해괴한 말인가. 그게 어찌 우상숭배며 미신이란 말인가. 아무튼 나는 아버지의 제사에 가지 않았다. 집안 사람들에게는 알리지 않고 혼자 가끔 강원도 횡성의 산소에 가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는 했다. 작년 설날 다른 해 같으면 보통 해남의 미황사에서 명절을 맞고는 했는데 어디든 가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밖에 나간 것처럼 문을 잠그고 방안에서 뒹굴 거리며 밥상을 차리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을 떠올렸다. 밥 한 그릇 아버지의 몫으로 떠놓으며 마주 앉았다. 제사를 지내던 밤이 갔다. 4월의 마직막 날 어느덧 현대하이웨이호는 아라비아해의 오만만에 들어섰다. 용주와 함께 배의 제일 앞부분 선수갑판으로 나갔다. 해적순찰 당직을 서며 이 근처까지는 와보았는데 그때는 좀 겁이 나서 여기까지 나와보지 못했던 것이다. 숙소에서부터 여기까지 그리 먼 거리는 아닌데 아직도 부기가 빠지지 않은 왼쪽 발을 잘 내딛을 수 없어 발뒤꿈치로만 걸었더니 발목이 시큰거리고 힘이 든다. 뱃머리는 엔진소음도 들리지 않고 오히려 고적하기조차 하다. 뱃전에 파도가 치며 물보라를 만든다. 그 물보라에 너울거리며 춤을 추는 색동저고리 같은 무지개가 걸린다. 날치 떼가 은빛 비행을 한다. 날치들은 여전하다. 멀리 머얼리 날개를 펼쳤다 곤두박질을 하듯 뛰어든다. 이따금 어디서 나타났는지 새들이 수면을 차고 날아오르는 날치들을 향해 쏜살처럼 달려든다. 뱃길의 보이지 않는 저편 오른쪽쯤은 인도의 경계를 넘어 파키스탄이 그리고 왼쪽 어느 어림쯤엔 사자와 기린이 초원의 풍경을 이루고 있을 킬리만자로의 아프리카 대륙과 아라비아반도 오만의 육지가 있을 것이다. 물빛이 달라졌다. 그 푸른 것, 뭐라 형용할 수 없던 인도양의 물빛이 육지가 가까워오자 서서히 녹색의 빛을 띄기 시작한다, 수심이 얕아져서 연안의 바다 빛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선상에서의 마지막 밤, 선장님의 배려로 노래방에서 조촐한 자리가 (사실은 전혀 조촐하지 않았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해 여기에서는 조촐하다고 쓸 수밖에 없음) 만들어 졌다. 승무원들이나 선장님, 기관장님은 내일 마지막 기착항의 하역 문제 등으로 인해 무척 삼가하고 있었지만 우리는 저마다 18번을 부르며 짧은 기간이었지만 이별의 아쉬움과 그간의 고마움에 기꺼이 몸을 다 바쳐 목청을 드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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