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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6 |
[전라도 푸진사투리] ‘깨금박질’과 ‘앙감질’
관리자(2007-06-14 11:01:43)
‘깨금박질’과 ‘앙감질’ 글 | 김규남 언어문화연구소장 여자애들은 ‘삔따먹기’ 남자애들은 ‘오징어살이’가 일상의 놀이였던 시절에는 자연 속에서 사람과 더불어 노는 방식이 퍽 다양했다. 그 중에서 지금 아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놀이 가운데 하나가 ‘오징어살이’이다. 공부에 시달리고 컴퓨터 게임에 중독되어 사람냄새 나는 놀이가 부족한 남자아이들에게 ‘오징어살이’는 일부러라도 권해 볼 만하다. 장깨미 장깨미 장깨미 뽕, 장깨미 뽕, 장깨미 뽕 우와 우리가 이겼다. 자, 깽깽이 깽깽이 깽깽이 발로 나간다잉. 너 머더냐? 깨금발 짚고 깨금박질로 가랑게, 왜 모둠발 짚고 지랄여 지랄이... 너 죽었어잉? 금 밟지 마. 금 밟어도 죽는다잉. ‘장깨미’는 ‘가위바위보’, ‘깽깽이발’이나 ‘깨금발’은 ‘앙감발’, ‘깨금박질’은 ‘앙감질’이 표준어다. 그리고 ‘깨금발’은 그 자체가 표준어인데 ‘발뒤꿈치를 들어올림 또는 그 발’이란 뜻이 있어 전라도 방언의 의미와 다르다. ‘뒤꿈치를 들어올림 또는 그 발’ 이런 상황에 어울리는 것은 손이 잘 안 닿는 선반 위에 꿀단지를 내릴 때, 동생보다 키가 작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살짝 눈속임을 하고 싶을 때이다. 이 상황에서 뒤꿈치를 들어 올리는 것을 전라도 방언에서 ‘꼰지발’이라고 하는데 특히 키가 커 보이기 위해 뒤꿈치를 드는 상황을 한정하여 ‘키발서다’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이 지역에서는 ‘키발서, 키발서지 마’ 등으로 활용하니까 ‘키발’이라는 명사에 ‘서다’가 붙어 행위를 나타나는 동사로 사용된다. 바로 이 ‘키발’의 표준어가 ‘깨금발’과 ‘까치발’이다. 표준어와 전라북도 방언 사이에 혼란이 예상되는 이 단어들을 다시 표로 정리해 두자. ‘깨금발’ 짚고 ‘깨금박질’로 다니다가 오징어 귀와 몸 사이에 ‘⊃⊂’ 모양의 강을 건너고 나서부터 두 발로 담박질할 때의 그 상쾌함은 ‘오징어살이’를 해 본 사람만이 느끼는 쾌감이다. 그때 두 발을 모두 사용하는 것을 우리는 ‘모둠발’이라고 표현했다. 이때 ‘모둠발’은 표준어로 ‘가지런히 같은 자리에 모아붙인 두 발’이란 뜻이어서 벤치에 두 발을 얌전히 모으고 앉은 여학생의 발 모양을 떠올리게 한다. 두 발을 다 사용한다는 점에서 ‘모둠발’은 ‘깨금발’과 상대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우리 지역에서의 의미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여기서 ‘모둠’형을 만드는 원리로는 몇 가지 가능성이 있다. 첫째는 중세국어   에 명사파생 접미사 ‘-움’을 붙여 이루어진 단어로 이미 오래 전에 그렇게 형성되어 단어로 굳었다고 보는 것이다. 둘째는 ‘모두-’라는 동사가 있는 북한어나 경상도 방언에서 명사형 어미‘-ㅁ’이 붙은 형태라고 볼 수도 있다. 중세국어의 ‘    은 현대국어에서 ‘모으-, 모이-’로 변화하여 이것에 명사형 어미를 붙인다면 ‘모음, 모임’이 되므로 ‘모둠’과는 별개이다. 따라서 북한어나 방언형에서 만들어진 것을 빌어다 쓴다기보다 이전 시기의 단어형성의 결과로 만들어진 ‘모둠’을 ‘모음, 모임’과 별개로 일정한 의미 영역로 한정하여 사용하는 것으로 보는 게 나을 것이다. 따라서 ‘모둠’은 현재 초등학교 교실에서 ‘조(組)’를 대신해서 아주 활발하게 상용되고 있으며 음식점에서도 ‘모둠회, 모둠보쌈’ 등 이것저것 여러 재료들을 함께 제공하는 형태의 음식 이름 앞에서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다. 전북 방언에서 ‘모으다’와 관련하여 ‘모태다’라는 방언형이 존재하는데 이는 ‘모으다’의 ‘모-’와 ‘보태다’의 ‘태’가 섞여서 이루어진 말이다.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진 단어로는 ‘틀리다’와 ‘다르다’의 방언형 ‘달부다’가 섞여서 ‘틀부다’가 만들어지거나 ‘-에게다’의 방언형 ‘-기다’와 ‘에게’ 혹은 ‘-더러’의 방언형 ‘-보고’가 합해져서 ‘-보다’가 형성되는 것들이 있다.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진 단어를 혼효어(混淆語, blending)라고 한다. 여러 소재들에 대한 설명이 뒤섞여 산만하지만 다시 ‘깨금발’과 ‘깨금박질’을 중심으로 말하자면 표준어의 ‘깨금발’이 ‘까치발’과 더불어 ‘뒤꿈치를 들어 올린 것이나 그런 발’을 가리킨다면 ‘깨금질’이나 ‘깨금박질’은 뒤꿈치를 올렸다 내렸다하는 행위의 반복을 의미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방언으로서의 ‘깨금발’과 ‘깨금박질’은 한 발 서기와 한 발로 뛰어가기의 의미로 선명하게 사용되어 왔기 때문에, ‘깨금발’을 ‘앙감발’로 ‘깨금박질’을 ‘앙감질’로 바꾸게 하는 것은 전라도 방언화자에게는 매우 낯선 일이다. 오히려 전라도 사람에게 이 단어는 유년 시기의 추억과 정서를 담고 있어서 이 어휘 자체가 유년에 대한 개인적 체험을 떠올리는 중요한 단초가 된다. 바로 이런 점에서 ‘방언은 잘못된 것이고 표준어는 올바르다’는 식의 처방적 태도가 마치 앞선 교육인 것처럼 선도하는 것이 어려서부터 형성해온 말의 정서마저 달라지게 하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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