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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6 |
[수요포럼] 난해함, 그것은 ‘다름’의 다른 이름
관리자(2007-06-14 10:58:56)
난해함, 그것은 ‘다름’의 다른 이름 글 | 전찬일 영화 평론가(숙명여대 겸임교수) “전주국제영화제는 해를 거듭할수록 안정돼가는 것이 외부인들의 눈에도 확실히 보인다. 영화제기간 동안 극장들이 운집해 있는 영화의 거리에서 만난 지인들은 비슷한 얘기를 하고 있었다. 학생들도 무작위로 고른 상영작들이 대부분 인상적이었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정수완, 유운성 프로그래머가 상당히 우수한 인재들이라는 걸 알 수 있다. 특히 유운성이 합류한 이후부터 발견의 성격이 강한 프로그래밍을 전진 배치하면서도 전체적으로 균형 감각이 있는 프로그래밍의 짜임새가 돋보이는 것은 평가할 만하다. 전위적이고 도발적이지만 너무 멀리 나간다는 느낌이 없고 우리가 몰랐던 것을 알게 된다는 기쁨을 주는 프로그램이다.” 이 대목은 명지대학교 영화과 교수이자 영화전문주간지 필름2.0의 편집위원인 영화 평론가 김영진이 ‘8회 전주영화제 짧은 소감’을 적은 고정 칼럼 ‘김영진의 러프 컷’5월 11일 자 도입부를 필름2.0 사이트 www.film2.co.kr에서 인용한 것이다. 인용하기엔 다소 긴 감이 없지 않았으나, 중략하지 않고 그대로 가져온 까닭은 그 대목에 프로그래밍 관점에서 바라본 전주국제영화제에 대한 영화 평론가로서 내 종합 평가가 거의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거듭 강조컨대, 정체성 및 방향성 등을 둘러싼 크고 작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전주국제영화제는 해를 거듭할수록 안정돼가고 있다”고 단언할 자신 있다.   그럼에도 최근 1, 2년 사이 부산국제영화제에 이어 한국을 대표하는 제2의 국제영화제로 자리 잡은 전주영화제를 향한 비판·불만 또한 적잖은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외부인들은 말할 것 없고, 전주 시민들 및 지역 매체 등을 중심으로 특히 더. 가장 빈번히 제기되는 대표작 비판·불만은 각종 섹션에서 선보이는 영화들이 “지나치게 난해하다”는 것이다. 전주영화제가 전주 내부보다는 주로 그 바깥에 존재하는 (극)소수 영화마니아들을 위한 외부용 행사 아니냐는 유의 볼멘 불평들이 줄고 터져나온 건 무엇보다 그 때문이다. 그런 비판·불만·불평은 일견 타당해보인다. 평론가인 내게도 부담스러운 영화들이 즐비한 것이 사실이다. 솔직히 털어놓으면, 국내 그 어느 영화제보다도 전주영화제는 평론가로서 내 능력·수준을 의심케 하곤 한다. 미지의, 아니 막말로 금시초문의 감독, 영화들이 수두룩하다. 그러니 축제로서 영화제를 편히 즐기고 싶은 전주 내, 외부의 일반 관객들이야 오죽하겠는가. 그 ‘난해함’의 으뜸 이유는 전주영화제가 디지털 및 대안을 기치를 내걸고 출범했으며, 영화제 측이 그 이후로도 줄곧 그 기치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덧 우리의 일상이 되다시피한 디지털도 스크린에서 조우하는 영화의 비중 면에선 여전히 절대적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디지털 영화들은 왠지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서며, 아직도 낯설다. 게다가 현실에선 존재하지 않거나 존개하기 힘든 영화의 그 무엇, 즉 ‘대안’(Alternative)을 추구한단다. 당장 ‘디지털 대안’을 추구하는, 전주영화제의 간판 프로그램 ‘디지털 삼인삼색’을 떠올려보라. 그럴진대 전주영화제가 전체적으로 난해하게 다가서지 않는다면, 그것이 외려 이상할 만도 하다. 그러나 조그만 다른 눈으로 바라보면, 상기 ‘난해함’은 여타 영화제들과 전주영화제를 구분 지어 주는, 전주만의 어떤 차별성으로 변이, 승화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쯤에서 질문을 던져보자. 만약 우리 주변에서 손쉽게 접할 수 있는, 그렇고 그런 영화들로 잔칫상을 차려 내 놓을 거라면 굳이 왜 영화제가 필요할 것인가, 등의 아주 근본적인 물음을. 따라서 난해함은 ‘다름’의 다른 이름일 수 있다. 아니, 그렇게 이해 수용되어야 마땅하다. 새삼 역설컨대, 영화제의 주된 존재 이유 및 기능은 ‘학습’과 ‘교류’의 장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단지 돈벌이의 대상만이 아니라, 예술과 문화, 소통으로서의 영화를 관객들에게 학습시키고 국내외 지역에서 모인 영화 관계자들과 그들이 창작·생산해낸 산물을 교류시키는 ‘공론장’(Public Sphere)!   1960 년대 체코 뉴 웨이브의 산 증인이자 세계 영화계의 현존하는 거장인 이리 멘젤이 올 전주영화제의 초청에 응해 방한한 데 그치지 않고, 영화제에 대한 상당한 만족감을 피력-백두대간 초청으로 서울을 찾은 감독 내외와 체코 주한 대사 내외, 백두대간 대표이기도 한 이광모 감독 등과 함께 한 사석 식사 자리에서 그 만족감을 확연히 확인할 수 있었다-한 것하며, 페드로 코스타-하룬 파로키-유진 그린에 이르는 세계 영화계의 문제적 명장들이 ‘디지털 삼인삼색 2007’ 프로젝트에 동참하고 마침내 영화를 완성시켜 선보였다는 건 전주영화제의 위상이 그만큼 제고, 확립되었다는 현실을 웅변하는 결정적 증거들이다. 흔히 난해함으로 불리는, 전주만의 차별성이 없다면, 그런 거장들이 전주를 찾았을 리 없지 않겠는가.   뿐만 아니다. 그 동안은 기껏해야 부산영화제만을 찾았던 몇몇 저명 영화 저널리스트 및 평론가들이 2007 전주를 찾았다는 사실도 전주영화제의 높아진 위상을 말해주는 또 다른 지표다. 개인적 친분이 있는 몇 명은 영화제에 대한 소감을 묻는 내 질문에 기대 이상의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만하면 전주영화제는 단연 주목할 만한 성과를 일궈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전주 시민들도 자신들의 도시 이름을 내건 영화제를 자랑스러워 할 만도 하고. 비단 세계 유수의 국제영화제들만이 아니라 국내의 숱한 영화제들과도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전주영화제의 프로그래밍과 연관해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은 정작 다른 데 있다. 단적으로 ‘인디 비전’과 ‘시네마스케이프’, ‘영화궁전’ 등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세계 각국의 신작들을 초청해 선보이는 섹션들에서 별다른 개성?차별성이 선명히 드러나질 않는다는 것이다. 영화제 측에서는 나름대로 섹션의 성격을 강변하곤 있지만, 그게 그거랄까. 이 글을 마무리 지으려는 이 시점에서 문득 밀려드는 생각 하나. 목하 전주영화제에 가장 필요한 건 프로그램보다는 다름 아닌 전주 시민과 지역 매체의 열띤 관심과 ‘애정 어린’ 질책이라는 것이다. 외부인들이 그렇게 인정하고 사랑하는 영화제를 내부인들이, 시쳇말로 왜 그렇게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지 진정 안타까워서 하는 조언이다. 지역적 성원이 굳건히 뒷받침될 때 비로소 영화제의 국제성도 살아 숨쉴 수 있을 터이기 때문이다.   전찬일/ 서울대학교 독어독문과학을 전공하고, 동국대학교교 영화영상대학원에서 영화학을 수료했다. 숙명여대와 우석대학교 겸임교수로 일하면서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램 코디네이터,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 조직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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