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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5 |
[최승범 시인의 풍미기행] 연삽한 향미의 기억 남원미나리비빔밥
관리자(2007-05-14 16:58:09)
지난해 가을의 어느날이었다. 남원시에서는 ‘장터국수’와 ‘미나리비빔밥’을 관광상품화하리라는 소식이었다. 나는 특히 후자에 귀가 솔깃했다. 뿐인가, 어린시절 봄철이면 즐겼던 미나리의 연삽한 향미가 입안에 감돌아 들기까지 하였다. 남원 미나리는 예로부터 이름이 나있었다. 최영년의 《해동죽지》(海東竹枝, 1925) ‘음식명물’에도 남원 미나리(南原芹)가 으뜸으로 올라있다. ‘행채(荇菜)·순채(蓴菜)의 맛도 미치지 못한다’고 했다. 미나리무침이나 미나리강회, 더러는 생미나리김치 등이 밥상에 오르면 밥 한그릇 부시기란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할 수 있었다. 벼르던 남원행을 이룬 것은 지난 4월 4일, 소태열·노상현·신완근 친구들과 더불어서였다. 마음은 미나리비빔밥에 있었지만 겉으로는 문화재 답사를 내세웠다. 말로만 들어온 덕과면 소재의 문류정(門柳亭)·호암서원(湖巖書院)과 남원시내에 자리한 창주서원(滄州書院)을 근참(覲參)하기로 한 것이다. 소태열·노상현은 누정과 서원의 직계후손이기도하여 선대에 대한 많은 일화까지도 들을 수 있었다. 청복(淸福)을 더한 셈이다. 각설하고, 미나리비빔밥으로 돌아가자. 점심시간을 약간 겨워 찾아간 식당은 「한우최고집」(남원시 도통동 27-5, 전화 063-631-0505)이었다. 예약하였던 관계로 상차림이 되어 있다. 무우·콩나물·느타리버섯·호박 등 나물과 녹두묵 그리고 미나리강회·생미나리썰이와 양념간장·고추장이 올라있다. 이윽고 미나리비빔밥이 나왔다. 미나리비빔밥이라기 보다 ‘미나리육회비빔밥’이라 하여 좋을 것 같다. 그만치 미나리의 양에 못지않게 육회의 양도 많았기 때문이다. 주인(최학국)이 특별히 선심을 쓴 것인가, 이래가지고 한 그릇 값이 5.000원이라면 무슨 이끗이 있을까의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한우최고집」이란 식당이름마따나 원래는 ‘한우 전문점’이었던 것 같다. 차림표에도 꽃등심·갈비살·육사시미·육회 등이 들어가 있다. 최근 들어 남원시의 미나리비빔밥 관광상품화에 이 식당도 뜻을 같이하여 새로 개발 추가한 식단(食單)이라는 여주인의 이야기다. 어린시절 즐겨 먹었던 미나리비빔밥엔 물론 육회는커녕 미나리 외의 다른 거섶도 거의 쓰지 않았다. 어머니께서는 데쳐낸 미나리의 물기를 짜내고 숭숭 썰어 놋양푼에 담아 밥과 함께 비벼 내는 것으로 미나리비빔밥의 조리를 마치셨다. 비빔에는 미리 마련한 양념간장으로 간을 하고, 참기름·고추장도 알맞게 넣기 마련이었다. 어머님의 미나리비빔밥은 먹을 때마다 미나리 특유의 향기로운 맛과 더불어 쌈박하고 개운한 맛이 돋았다. 이 맛에 비기자면 육회를 쓴 이 식당의 미나리비빔밥은 입에 들어 너무 찰지고 풍성한 맛이라고나 할까. 미나리 맛이 덜하다면 생미나리썰이를 넣도록 요량되어 있다. 그러나 생미나리 보다는 데쳐 낸 미나리 줄기를 송송 썰어낸 것이 오히려 미나리의 맛과 개운함을 돋우어 주리라는 생각이다. 무엇보다도 남원 미나리비빔밥을 맛볼 수 있어 이날의 점심시간은 즐거워졌다. 식품학에선 미나리를 ‘비타민이 풍부하고 칼슘 등 무기질이 많은 알칼리성 건강식품’이라고 하니, 이날 5천원의 점심은 더욱 즐거울 수밖에. 지난날 첫돌 상차림에 수명(壽命) 상징으로 데쳐 낸 긴 미나리 줄기를 놓았던 까닭도 알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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