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5 |
[특집 | 우리시대의 결혼이주 여성] '차이'를 인정하는 교육, ‘차별’하지 않는 사회
관리자(2007-05-14 16:54:22)
‘튀기’를 기억하는가? 30년이 넘은 기억 하나.
국민학교 때에 남다른 모습의 친구가 있었다. 유난히 눈이 크면서 눈동자가 파랗고 피부가 하얗던 친구였다. 시골에서 전학을 와 친구가 많지 않았던 내게 1년 뒤에 전학 온 그 친구는 비교적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굴러온 돌’ 끼리의 유대감이 작용했던 것 같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친구들이 그 친구를 놀려대기 시작했다. ‘이 튀기 **야’ 그 때 그 친구들(결국 나를 포함하여) 모두가 그 의미를 정확하게 알고 썼는지는 모르지만 그 말뜻이 ‘나와는 다른 놈’ ‘혼혈아’라는 것을 눈치를 챌 정도는 되었다.
덩치가 컸던 그 친구는 뜻밖의 구별 짓기 호칭에 아무런 저항을 하지 못했다. 그저 망연자실 서있을 뿐. 그나마 그 친구는 백인 혼혈이라 시달림을 덜 받았을까? 오래지 않아 그 친구는 다시 전학을 갔고 나도-‘우리들’도 그 친구를 가볍게 기억에서 지웠다. 똑같이 또래집단의 주변부였던 처지에서 그를 놀려대며 주변부를 탈출하고자 했던 나. 나는 그 순간 야만적인 가해자였다.
그때에 비하면 대한민국 원주민의 이주자와 그 가족에 대한 2007년 현재의 시선은 상당히 변화되었다. 중앙과 지방 정부 차원의 인식 변화와 지원도 차원을 달리하고 있다. 대중적인 발언과 시선도 달라졌다. 인식의 질적 변화도 있긴 하겠지만 ‘표면적으로 그렇다’는 말이다.
결혼이주여성 자녀의 ‘교육문제’에 대해 주제를 좁혀보아도 대한민국 원주민의 이주민과 그 가족에 대한 표면적인 대응방식과 내면의식의 불일치가 제일 큰 난관이다. 앞에서는 이해하는 척하고 뒤에서는 소곤대는 그 방식. 우리 사회의 다양한 소외계층에 대해 다수가 하는 일상적인 일들처럼. 때론 소외계층조차 이들을 무시한다. 우리 안에 숨어 있는 순혈주의가(혈통주의, 단일민족 이데올로기) 고개를 쳐들 때마다.
‘다문화 사회’는 이제 현재진행형이다. 그것은 ‘그런 것도 있을 수 있어’라는 시혜적인 관점의 사회가 아니라 종교, 인종, 민족, 국적, 피부색, 성적 취향 등의 ‘차이’를 인정하고 ‘차별’하지 않는다는 보편적이고 기본적인 가치가 실현되는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 ‘차이’를 인정한다는 것은 그 사회 내의 동등한 구성원이 된다는 의미이다. 인간은 모두에게 서로 ‘차이’가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미 다수 노동자를 포함한 다양한 외국인, 한국 농촌 현실이 투영된 결혼이주여성, 활발한 국제 교류 속의 국제결혼 등이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다.
결혼이주여성과 그 자녀들은 조금 더 특별한 현실 조건 속에 놓여 있다. 결혼이주여성 대부분이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거나 취득할 예정이고 그 자녀들은 당연히 한국인이다. 그럼에도 지역공동체의 편견과 차별적 조건은 여러 가지 사회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극복해야할 과제이다.
전라북도의 경우 20006년 12월 현재 결혼이주여성은 2598명이다. 그 자녀들은 2683명으로 6세 미만은 1739명, 초등학교 재학은 823명으로 초등학교 이하가 대부분이다. 국제결혼 가정의 자녀들에 대한 보건복지부 설문조사에 의하면 자녀의 17.6%가 집단따돌림(이중 34.1% 엄마가 외국인 이어서, 의사소통이 안되어서 20.7%)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2001년 펄벅재단의 조사결과 혼혈인의 9.4%가 초등학교 중퇴, 17.5%가 중학교 중퇴인 것(일반인은 1.1% 수준)으로 나타났다. 이는 국제결혼이주여성 자녀들이 당면한 현재는 물론 중학교 진학 이후 겪게 될 여러 가지 어려움을 예고하는 통계이다.
결혼이주여성 자녀 교육문제는 그들에게 나타날지 모르는 집단따돌림과 학교부적응의 문제를 최소화하고 긍정적인 자아 형성에 도움을 주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또 하나의 소외계층이 형성되지 않도록 하는 일이기도 하다.
먼저 교육과정에 다문화주의가 자리 잡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5천년 단일민족이라는 잘못된 순혈주의 신화부터 깨트려야 한다. 우리나라 초중고 도덕, 사회, 국사 교과서에는 ‘본래 우리 민족은 동일한 언어와 문화, 혈통을 지닌 단일 민족으로서…’라는 표현이 있다. 고구려의 민족구성, 가야의 허황후, 고려시대의 아랍인 마을, 우리 역사 속의 수많은 외침 들을 생각하면 동일한 혈통의 단일민족이라는 표현은 허구에 가깝다. 우리나라의 역사 속에서도 다문화주의를 찾아내어 교육과정에 반영하고 다른 나라와 문화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는 국제이해교육을 내실 있게 진행해야할 이유이다.
또한 전라북도교육청이 공모선정하여 쓰고 있는 ‘온누리안’이라는 호칭이 ‘코시안’과 마찬가지로 국제결혼이주여성과 그 자녀들을 구별 짓는 것은 아닌지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 전라북도교육청이 국제결혼이주여성과 그 자녀들에 대한 지원 사업에서 전국적으로 앞서 나가는 점은 매우 긍정적이지만 온누리안 홈페이지에 올라온 다음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국제결혼가족에 태어난 아이들을 구별화 시키기 위해서 호칭을 따로 만든다면 그딴 호칭은 아예 없는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구별화는 바로 차별로 연결되니까요. 다중문화를 가진 아이들이 단순한 한국인으로서 취급받고 그 다양한 정체성을 키우지 못하게 되는 것도 걱정이 됩니다. 그것은 동화를 강요하는 것이며, 노력을 해도 다른 한국인 아이들과 차이를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아이들에게 더 큰 고통이 됩니다.’
‘앞으로 태어날 나의 자식은 대한민국에서 낳고 자라는 한국인일 뿐 명칭으로 특별대우 받는 특이한 이름의 “코시안” "온누리안"으로 불리워지는 것을 거부한다. 이는 추악한 인권침해 임과 동시에 아동학대이며 변태적인 차별인 것이다.’
‘온누리안이라......코시안보다는 훨씬 어감이 좋지만....캐릭터명칭 같아요.....저는 국제결혼하여 아이를 키우는 사람입니다...제 아이가 이 명칭으로 인해 희화화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입니다.’
특별한 호칭이 필요하다면 그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고 사용되어져야 하는 것이지, 일반화된 특별한 호칭은 ‘구별짓기’가 되고 그로부터 의도하지 않은 차별의식이 작용하게 되는 결과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두번째는 언어교육의 문제이다. 국제결혼이주여성의 자녀들에게서 나타날 수 있는 가장 큰 문제이다. 이주여성에게는 체계적인 한국어 교육이 그 자녀에게는 이중언어교육이 필요하다. 어머니가 사용하는 언어와 한국어가 마찰을 일으키고 혼돈을 준다면 의사소통과 학습에 크나 큰 장애를 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자체와 교육당국 모두 언어교육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 프로그램을 실행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학습하는 언어’가 아니라 ‘습득되어지는 언어’ 즉 엄마와 아이 사이의 언어 환경을 긍적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한국어뿐만 아니라 어머니의 모국어도 습득하고 활용할 수 있는 문화적 공간을 공식적으로 열어주어야 한다. 이중언어교육에서 필요하다면 삼중언어교육까지 가능한 것이 국제결혼이주여성의 자녀들이기 때문이다. 가정에서 아이들이 엄마의 모국어까지 체계적으로 습득한다면 아이와 어머니 사이의 1차적인 유대감이 더욱 공고해지면서 가족, 학교생활 등에서 자신감을 갖게 될 것이다.
그리고 결혼이주여성 자녀들이 정체성을 가지려면 무엇보다 이주여성 스스로가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지켜내고 자부심을 갖는 일이 중요하며 또한 주변에서 인정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출신지별 커뮤니티나 이주여성 끼리의 커뮤니티가 형성되어야 하며 지자체 등에서 이러한 커뮤니티와 동등하고 상호보완적인 역할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경험을 축적시켜야 한다. 이주여성의 남편과 자녀 그리고 그 가족들도 그 구성원으로서 자긍심을 가지고 참여할 수 있을 때 우리 안의 차이를 인정하는 또 하나의 문화를 만들 수 있다.
시혜적인 지원과 특별한 배려는 다르다. 우리 농촌 현실 여건 상 이주여성과 그 자녀들에게 주어진 교육환경이 열악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역에 따라서는 취학 아동의 50%를 넘어서는 농촌 이주여성 자녀들에 대한 특별한 배려는 우리 사회가 다문화사회로 융화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학부모교육, 상담교육, 부적응아 지도, 각 종 현장체험 등 모든 활동을 다문화적 관점으로 재해석하면서 학교와 지자체 그리고 정부의 유관기관의 지속적인 협력 에 의한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아직 초보적인 단계이지만 각 시민사회단체와 교육청, 지자체 등이 결혼이주여성 및 그 자녀와의 멘토링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나름의 경험도 축적되고 있다. 시급한 것은 이주여성에 대한 한국어교육을 시스템화하는 것과 그 자녀들의 한국어-어머니 모국어 이중언어교육 지원 기반을 갖추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자녀들이 청소년기에 접어드는 2-3년 사이에 그들의 마음을 들을 수 있는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배치하는 일도 뒤로 넘길 수 없는 일이다.
다문화사회는 ‘차이’에 의해 ‘차별’하지 않는 사회여야 한다.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과 그 자녀의 교육권까지 관심이 이어질 때 우리 안의 거추장스러운 획일성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차이를 존중한다면 배려를 하고, 진정한 배려는 어려운 이웃에게 더 주는 역차별까지 가능한 것이므로. 차별 없는 세상. 결혼이주여성과 그 자녀들이 우리에게 던진 화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