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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형두변호사의 저작권길라잡이] 우리 문화산업 체질강화의 기회
관리자(2007-05-14 16:42:52)
우리 문화산업 체질강화의 기회
한국과 미국은 지난 1년 2개 월 간의 기나긴 협상을 마치고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였다. 이제 각 나라 의회의 비준을 받는 일만 남았다. 의회 비준을 받게 되면 FTA 협정문의 내용대로 한국과 미국은 국내법 개정을 하여야 하므로, 결국 FTA 협정문의 내용은 우리 나라 법에 그대로 반영되게 되었다.
한미 FTA를 찬성하는 쪽에서는 거두절미하고 “개방만이 살 길이다” 또는 “개방해서 실패한 적이 없다”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큰 틀에서는 맞지만, 다소 논거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자유무역 대 보호무역의 해묵은 논쟁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이러한 논쟁이 있었던 당시와 지금은 시장상황이 크게 달라졌다는 점에 있다.
재화와 서비스가 해상/항공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는 시대에 교통의 발달은 세계 시장을 더욱 가깝게 만들기는 하였지만, 여전히 국경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역내(域內) 무역의 분명한 한계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통신의 발달, 특히 인터넷의 비약적인 보급은 세계를 가깝게 만드는 정도가 아닌 하나의 시장(Global Market)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와 같은 장소의 동일성에 더하여 동시성(Simultaneousness)은 인터넷이 가져온 획기적인 변화인데, 이로써 세계 시장은 더 이상 시차(時差)나 권역(圈域)의 차이를 갖기 어렵게 되었으며, 그 진전속도는 앞으로 더욱 가속될 것으로 보인다.
세계의 공장이라 일컫는 중국은 최근 자국의 인건비가 비싸다는 이유로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더 저렴한 베트남으로 제조공장을 옮기는 예가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중국의 값싼 노동력 때문에 이미 상당수 무너진 우리나라의 제조업으로서는 기가 찰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지난 십 수 년 사이에 우리나라의 정보통신 산업은 세계 최고가 되었다. 게다가 우리의 생각과 느낌을 잘 담아낼 수 있으면서도 정보통신 시대에 딱 들어맞는 고유의 언어, 한글이 있다. 이를 기반으로 과거에는 우리 안에 갇혀 있던 우리의 문화가 세계에 먹혀 들어가기 시작했다. 한류열풍은 바로 우리의 문화, 지식산업의 열매라 할 수 있다.
어떤 나라는 정보통신산업(IT)만이 최고이거나, 또 다른 나라는 지식산업(IP)만이 세계 최고다. 이 둘 다 세계에서 통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과 우리나라 정도라고 할 수 있다. 풍부한 문화를 갖고 있는 유럽에서 인터넷을 할 때 느끼는 늦은 속도감과 접근의 불편함은 성미 급한 우리에게는 참기 어려운 정도다. IT 강국이라고 하는 핀란드, 아이슬란드 같은 나라가 다른 나라의 문화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이야기는 듣기 어렵다. 일본이나 중국이 우리를 따라오기 힘든 것은 한글이라는 문자의 우수성 덕이 크다.
문화와 지식산업은, 첫째 그 시장에서 최고만이 살아남는 특성있는 상품이다. 시장이 확대되고, 그것도 동시성을 갖게 되는 시장(세계 시장)에서 지역문화, 지역 지식산업은 갈수록 그 설 땅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둘째, 그것을 날라주는 수단인 정보통신산업과 그 뒤에 있는 제조업을 동반 상승시키는 후방효과가 큰 산업이다. 문화지식산업이 해외에 수출되면 그에 따라 우리의 휴대폰과 가전제품이 뒤따르는 예를 쉽게 볼 수 있다.
세계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살고 있는 아시아시장에 우리의 한류산업이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더 이상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유희형 인간(호모 루덴스)인 사람은 배고픔과 질병 등 생존의 문제가 해결되면 자연 문화를 찾게 된다. 중국과 인도가 깨어나고 있다. 그들에게 문화지식산업을 수출하는 우리나라는 이제 곧 제조업의 더 많은 수출을 예고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미 그 존재가 확인 4대 선결요건의 마지막인 스크린쿼터 축소를 우리 정부가 받아들인 다음 날 아침인 작년 1월말, 서울과 워싱톤 DC에서 한미간 FTA 협상개시를 선언했던 것은 결코 그 의미가 가볍지 않다.
한미 FTA는 단지 미국 시장에 휴대폰, 자동차 몇 대를 더 팔기 위한 것으로 가볍게 여길 수 없다. 전 세계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살고 있는 아시아 시장과 그 외연에 있는 세계 시장의 문화산업을 놓고 미국과 벌이는 패권다툼이 될 수 있다.
IT와 IP는 우리나라를 향후 50년간 먹여 살릴 경제의 새로운 엔진이라고들 한다. 이 두 가지에 있어서 지속적인 1등을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 분야 세계 1등인 미국과 경쟁하여야 하며, 이는 우리가 피하고 싶다고 해서 피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시장 상황이 그러하다면 수세적으로 임할 것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FTA 협정문에 따른 국내법 개정과 국내 산업의 체질변화 및 적응이 요구된다 할 것이다.
문화산업의 제도적 보장이 되는 저작권법과 관련하여 한미 FTA 협정은 구체적으로 저작권보호기간 연장(현행 사후 50년에서 75년으로), 일시적저장의 복제인정, 접근통제(Access Control) 기술적 보호조치의 신설, 온라인서비스 제공자의 책임강화, ‘상업적 규모’의 저작권 침해시 친고죄폐지 등이 그 골자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모든 내용은 사실 국내에서도 그간 저작권자측에서 꾸준히 주장해왔던 것이다. 다시말해 저작권분야에 있어서 한미 FTA는 미국측에 이롭게만 된 것이 아니라 국내 저작권자들의 주장에 부합하는 내용이라 할 수 있다.
문화의 산업화를 이야기할 때 그 법적 보장이 되는 것이 저작권이다. 우리 경제가 문화, 지식산업을 경제성장의 새로운 엔진으로 삼는다면, 저작권은 저작권침해국가라는 오명을 쓸 때처럼 거추장스러운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산업을 진작시키기 위한 중요한 제도적 보장임이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한미 FTA는 차제에 우리의 저작권을 강화하는데 중요한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한미 FTA의 저작권 부문은 우리의 문화산업, 저작권산업을 증진시키기 위한 체질강화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익한 협상으로도 평가할 수 있다고 본다.
남형두ㅣ연세대 법대 교수 | hdn@yonse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