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5 |
[오래된 가게] 전주시 교동 승암마을 ‘승암상회’반세기를 이어온 간판 없는 ‘점빵’
관리자(2007-05-14 16:38:29)
전주시 교동 승암마을 ‘승암상회’반세기를 이어온 간판 없는 ‘점빵’
최정학기자
한벽루가 굽어보고 있는 전주시 교동의 치명자산 밑에는 약 100여 호의 가구가 전주천을 따라 옹기종기 모여앉아 있다. 이 마을의 이름은 ‘승암마을.’ 마을의 한가운데 신라시대에 창건된 승암사가 고즈넉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한때는 철로가 지나던 이 마을은 지금은 철로는 온데간데없이 굴다리만 당시를 추억하고, 요즘은 치명자산 성지나 동고사, 승암사를 찾는 관광객들이나 등산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는다.
‘승암상회’는 이 마을의 유일한 가게다. 기차가 마을 앞을 지나던 시절, 철로 바로 옆에 문을 열어 거의 반세기의 세월 동안 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가게에는 간판이 없다. ‘승암상회’라는 이름으로 허가를 얻긴 했지만, 가게가 처음 생기던 그날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간판이 걸렸던 적은 없다. 사람들도 이곳을 그냥 ‘가게’라고만 부른다. 마을에 가게라고는 이곳한 곳이 전부기 때문에 가게 이름이 없다고 해서 겪는 어려움은 없다.
승암마을에서 50년을 살아온 김기철(66)씨는 이 가게가 처음 생기던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모습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1950년대 후반인가 60년대 초반인가 생겼으니까 50년 가차이 되았지. 그때 이윤기 씨가 여기다 쪼그만 전빵을 냈어. 그 양반이 81년까진가 하다가 지금 주인이 가게를 인수해서 쭉 하고 있지. 저 위쪽에도 구멍가게가 하나 생겼다가 금방 없어지고, 이 마을엔 늘 이 가게 하나 뿐이요. 처음엔 담배하고 술을 제일 많이 팔았제. 거기다가 그때 당시에는 오다마라고 똥그란 사탕에 설탕 묻혀 놓은거 그거하고, 비과라고 새끼 손가락만한 과자를 종이에다가 싸놓은 건데 그것이 지금으로 말하자믄 초콜렛 맛이 났어. 과자라고 뭐가 있었간. 메이커도 없이 다 불량과자였는디. 메이커라고는 ‘오리온’ 하나뿐이었지. 그래도 콩나물이며 두부며 과일이며 이 가게에 없는 것이 없었어. 그때는 뭔 허가를 받는 것도 아니고 누가 갖고 오면 받아서 필기도 많이 하고 그랬으니까.”
가게의 구조는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하지만, 가게 안의 모습은 그때와 사뭇 달랐다. 마을에 유일한 가게인 만큼 웬만한 생활필수품은 아직 다 구비해 놓고 있지만, 과일이나 콩나물, 두부 같은 것들은 더 이상 팔지 않는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변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는 물건을 많이 가져다 놓고 팔았어요. 옛날에는 이 동네 사람들이 여기만 이용했지요. 그때는 다 가난하니까 외상손님들이 많았고요. 계속 외상으로 물건 가져가다가 명절때나 되면 갚아주고 그랬는데, 지금은 다들 차가 있잖아요. 대형마트도 여기저기 많이 생기고. 한 2년 정도 전부터는 다 나가고, 지금은 여기 지나다니는 사람들이나 음료수 사서 마시곤 해요. 그나마 지금 계속 가게 문을 열고 있는 건 여기가 내 집이라 세가 안나간다는 거지. 용돈 벌이도 안되요.”
아직 이 마을의 토박이들은 자연스럽게 외상을 한다. 오다가다 들러서 쥐포 하나에 소주 한 병 마시곤, 달아 놓으라는 말을 남긴다.
“외상 안 갚아 주고 이사 가버린 사람도 더러 있고, 돌아가셔버린 분도 많아요. 그런 분들은 안 갚은 것이 아니고, 못 갚은 거지. 돈이 없으니까.”
그래도 주인은 군소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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