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5 |
[이종민의 음악편지] 미치 나카마루의 ‘어떤 갠 날’
관리자(2007-05-14 16:36:43)
“사무친 그리움의 노래”
다시 비틀거리며 일본을 다녀왔습니다. 밤마다 호텔방에서 비운 술잔 얘기가 아닙니다. 어디에선가 한 발 앞서 나가는 일본의 모습에 한 방 또 충격을 받은 것입니다. 여행이 일상의 진부한 상궤를 떨쳐버릴 자극을 위한 것이라면 이번 여행도 성공적인 것이라 해야겠습니다. 비록 나가사키에서 동경을 돌아오는, 조금은 터무니없어 보이는 일정이었지만.
최근 어느 토론 자리에서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전주는 그 동안 꽤 잘해왔다. 특히 문화정책 부분에서 민관협치(governance)의 모범을 보이며 타 지역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기까지 했다. 그러나 요즘 상황은 상서롭지 못하다. 다른 지역이 전주를 본받아 열심인 반면 전주는 그간의 장점마저 반성의 대상으로 삼아 터덕거리고 있다. 공무원들이 과거의 관료주의를 동경하며 복지부동을 즐기는 사이 민간전문가들은 소외감을 투덜대고 있다. 민관의 또 다른 분발을 촉구하며 이런 지적을 했던 것입니다.
여행 중 나가사키현의 관광문화정책에 관한 소개를 받으며 이 진단을 곱씹어야 했습니다. 하우스텐보스와 데지마를 비롯한 이국적 관광유적지가 아기자기하게 산재해있는 반도와 섬으로 이루어진 작은 현. 인구 150여만 명의 이 지역을 찾는 관광객은 연인원으로 매년 3,000여만 명. 그에 따른 관광수입도 현 전체 예산의 30%에 육박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희들 귀를 사로잡은 것은 이런 수치가 아니었습니다. 일본에서도 예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획기적인 정책의 시행이 우리 일행 모두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 것입니다. 관광진흥추진본부를 현지사 직속으로 배속한 것도 놀랍지만 그 장으로 일본 최대 관광회사 임원을 전격 스카우트, 전권을 위임한 사실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민관협치를 넘어선 민관합치? 손수 마케팅까지 하고 있는 50대 후반의 본부장 아래 소신껏 자신들의 역량을 발휘하고 있는 민간출신 전문공무원과 기존공무원이 하나가 되어 ‘관광 나가사키’를 주도하고 있었습니다. “갈등은 없습니까?” 시샘어린 질문은 놀라운 유연성과 효과를 강조하는 소속 공무원의 수줍은 자랑에 무색해지고 말았습니다.
그 충격의 여파였을까? 일본 기독교문화의 개화지, 근대화 및 국제무역의 거점이었다는 역사를 토대로 새로운 교류의 거점도시로 부상하려는 당찬 포부도 예사롭지 않게 들렸습니다. 놀라운 규모와 독특한 개념의 미술관 혹은 박물관, 엄청난 예산과 기획의 산물인 ‘일본속의 작은 네덜란드’ 하우스텐보스 등이 들어선 것도 우연이 아님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일본 전역의 ‘퇴역’ 경전철을 모아 또 다른 관광자원 및 실생활의 도구로 활용하고 있는 인상적인 모습도 우리를 주눅 들게 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두 시간을 넘긴 인터뷰 내내 목이 탔습니다. 배도 고팠습니다. 그 허기와 갈증은 나가사키 명물인 짬뽕 국물을 곱빼기로 마시고 카스텔라를 후식으로 먹어도 가시지 않았습니다. 그 허허로움을 달래자고 찾은 곳이 그라바엔.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의 무대로 유명한 곳. 아담하게 정돈된 이 공원에 올라 시원스럽게 펼쳐진 나가사키 항구의 아름다운 전경을 접하자 괜한 시샘의 갈증이 해소되기 시작하는 듯했습니다. 들릴 듯 말 듯한 아리아 [어떤 갠 날]에 귀를 기울이다보니 떠나간 남편이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던 나비부인의 심경에 스스로 젖어들게 된 것입니다.
특히 음악편지의 꺼리를 찾고 있던 저로서는 휴우, 안도의 한숨까지 내쉬게 되었습니다. 서양식 목조 저택과 화려한 정원 아래쪽에 작곡자 푸치니와 조금 떨어져 서있는 미우라 다마키(三浦環). 수십 년간 이 오페라의 프리마돈나 역을 해왔던 그녀가 부른 [어떤 갠 날]을 소개하면 되겠구나!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쉽지 않았습니다. [나비 부인] 하면 떠오르는 오페라가수! 그래서 동상까지 세워 기리고 있는 그녀의 음반을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공원 내려오는 길에 즐비한 가게 어디에서도 음반 구할 곳을 찾지 못했습니다. 더 큰 도시 동경에 가서 구하면 되지, 하는 마음에 소홀하게 살핀 탓도 있겠지요. 하지만 이 곳을 찾는 이들에게 멋진 기념품이 될 수 있는 이 음반을 구할 수 없다니! 속도 상했지만 위안이 되기도 했습니다. 앞서 나가는 듯한 일본인들에게도 허점은 있구나! 내내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던 허기와 갈증이 이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동경 화려한 백화점 대형 음반가게에서도 이 음반은 구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마우라 다마키 뿐 아니라 이 아리아를 부른 일본 가수의 음반조차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일본을 전 세계에 알린 이 유명한 오페라를 일본인들 스스로 챙기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쯤이면 귀국준비가 된 것인가? 잔뜩 주눅 들어 돌아올 수는 없는 일. 무언가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어야 할 텐데 이 작은 허점을 통해 미약하나마 그것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 보내드릴 음악은 동경 대형매장에서 유일하게 찾은 음반에 실려 있는 것입니다. ‘마리아 칼라스 국제 성악 콘테스트’에서 입상한 바 있는 미치 나카마루(中丸三千繪)가 부른 아리아로 뵈어(Roland Boer)가 지휘하는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가 협연한 것입니다.
미치 나카마루는 가창력과 미모를 함께 갖춘 소프라노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자선음악회에 자주 출현하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그녀가 이처럼 남다른 이력을 갖게 된 것은 다이애나 황태자비를 만나면서부터. 1994년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있은 영불 합작 자선음악회에서 그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큰 감명을 받아 자신의 소명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이애나의 불행한 죽음 이후에는 더욱 이 일에 열심이라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끝으로 화사한 봄날의 음악편지 마감합니다. 사무친 그리움을 느낄 수 있는 이 아리아 들으시며 미치처럼 아름다운 꿈 하나 키워 가시기 바랍니다. 아 미치도록 화려한 봄입니다
『 이종민 교수는 전북대에서 영문학 강의를 하면서 전주전통문화도시 조성위원회 위원장 등 전주를 문화도시로 가꾸는데에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몇몇 지인들에게 보내기 시작한 음악편지를 모아 2년 전 『음악, 화살처럼 꽂히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http://e450.chonbuk.ac.kr/~leecm로 접속하시면, 그동안의 음악편지와 음악을 직접 들으실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