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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5 |
[신귀백 영화엿보기] 대만판 ‘해방전후사의 인식’
관리자(2007-05-14 16:09:09)
대만판 ‘해방전후사의 인식’  비정상시 (1989) 세상의 형들 우리가 아는 오랑캐의 오랑캐. 차이니스 타이페이로 밖에 표시되지 못하는 슬픔의 도시 대만의 시골. 1945년 8월, 라디오에서 항복을 선언하는 천황의 옥음이 흘러나온다. 일본통치 51년이 종지부를 찍는 날, 대만의 작은 도시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린(林)씨 집에 해방동이(光明)가 태어난다. 해방이 되었다 해도 마을 사진사가 사진 찍을 때 입에서 나오는 언어는 일본말이고 오르간에 맞추어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 또한 일본사람들이 애창하는 동요 고추잠자리(赤とんぼ)이며 오래도록 일본어를 사용하던 병원의 간호부들은 이제사 중국어로 환자 돌보는 법을 배운다.   임씨네 아들들 바람 잘 날 없다. 전직 깡패로 일제시대를 견디어낸 아버지 임아록의 큰 아들 원숑(文雄)은 성질 급한 가장. 노름과 싸움으로 뼈가 굵어진 그가 가족을 이끈다. 전쟁에 끌려가 실종된 군의관으로 돌아오지 않는 둘째, 매일 사고만 치다가 미치광이가 되는 셋째 아량(文良), 사연이나 슬픔이 도톰한 볼에 배어 있는 청년 양조위가 역을 맡은 넷째 원칭(文淸)은 사진사로 귀머거리다. 그 귀머거리의 친구 콴롱(寬榮)은 세상을 근심하는 지식분자로 그의 여동생 콴메이(寬美)가 원칭의 귀와 입이 되어 질풍노도의 해방공간을 건너간다.   집에 오면 욕만 하고 노래 부르는 동생 친구들의 호궁을 부러뜨리는 무식한 형, 하여 식구들이 귀신과 별 차이가 없다고 손가락질 하는 큰형, 그러나 맨날 사고치는 동생들 뒤치다꺼리에 바쁜 형, 그 고독한 형이 집을 이끌어 왔다. 허우샤오시엔의 작품들 어디에도 스마트한 주인공은 없지만 그가 그리는 형은 바로 ‘세상의 형’이다(일품이다?!). 이 집 장남은 결국 상대 조폭들에게 칼 맞고 죽어가고. 패밀리에 일이 생기면 식구들끼리 얼굴을 맞대는 공동체가 갖는 상호의무감, 정서적 유대는 돈 꼴레오네 식구들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들 씨족 커뮤니티의 이해관계에서 식구끼리는 총을 겨누지 않는다. 대만 그리고 남한 ‘내 이럴 줄 알고 만세 안 부르길 잘했지’, 해방 후에 나온 채만식의 소설 「논」에 나오는 말씀. 대만 사람들은 ‘개가 가자 돼지가 왔구나.’로 화답한다. 세상 어디나 다를 바 없다. 국민당은 부패한 관리와 매국노를 중용해 나라를 맡긴다. 대만은 또 대륙인의 밥이어서 차례로 괴롭힘을 당하는 우리 대만인 불쌍하다며, 근심에 젖은 청년들은 술을 마신다. 9.18 만주사변 때 죽어가던 사람들을 추억하는 노래를 부르며 의분에 떨던 청년 몇은 산으로 올라가고.   대북에서는 계엄령 선포되고 매국노라고 신고하면 체포구금이 예사인 세상. 한밤중 문 두드리는 소리, 잡혀가는 친구들. 간호사 콴메이의 오빠는 사라지고 지식분자 친구들은 감옥으로 끌려간다. 발자국 소리, 문 여는 소리, 그리고 두 발의 총성. 타이완 지식인들은 2·28사건 이후 하나 둘씩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흑발에 진한 눈썹의 벙어리가 대만판 인혁당 사람들의 가족에게 유품을 전할 때, 가족들 말없이  흐느껴 운다. 제주도의 눈물을 담은『순이 삼촌』이나『태백산맥』과 다르지 않다. 다르다면 허우샤오시엔의 인물들은 누구도 드라마틱한 죽음이나 승리를 보여주지 않는 것. 혁명을 위해 집나간 남자들 그리고 여자들이 말없이 뿌리는 눈물, 같지 않은가.   느긋한 허우샤오시엔 해방공간을 다루지만 격문이 아닌 영화 <비정성시>. 시간 공간 인간의 기하학적 특성을 지닌 대만의 복합적 좌표체계. 그러나 허우는 역사적 경험으로서의 시대와 이념이 주던 살인과 폭력에 초점을 맞추지는 않는다. 그 어떤 산길도 산이 만든 옆구리를 끼고 도는 것처럼 그는 불행한 시대의 정중앙을 횡단하지 않고 영화 속 이야기가 전환될 때의 산길 장면처럼 에둘러 돌아간다. 인민공동체에 대한 반동 혹은 대륙을 잃은 페소 공포감 그런 것 있을 법한데 그는 구부러진 길을 반듯이 펴려는 의도를 보이지 않는다. 제국을 씹지도 않고 논과 밭을 찬양하지도 않는 그는 아예 효용론적 관점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     상투적이지 않고 격렬하지도 못해 민숭민숭한 영화의 엔딩 장면. 1949년 12월, 장제스가 중화민국을 건립했다는 라디오 뉴스가 깔리는 식당에서 오지 않는 남자들을 기다리며 식구들은 동그란 식탁 그 자리서 그냥 밥을 먹는다. 또 밥을 먹고 가만히 앉아 있다. 음악만 흐르는 마지막 장면, 죽인다. 셋째 아들처럼 생각 없이 살아남아 밥을 축내는 대만이 바로 그런 세계 아니냐고, 카메라 뒤에서 쓴웃음을 보이는 허우. 그는 영화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는 아예 흥미가 없는 것일까. 그는 오로지 우리 세계를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 진실에 접근하는가를 고민할 뿐. 그 어떤 우의나 풍자의 수법도 보여주지 않는다. 병원 복도와 식당 한 쪽에 작심한 듯 롱샷으로 잡아대는 카메라를 세워놓고 배우들을 들락거리게 하는 심미적 저항이라니. 액자식으로 고정된 화면 안에 사는 인물들의 동선은 주로 등이 나오기 때문에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누가 누군지 모른다.  불친절은 계속되는데, 대만이 고립된 섬이라는 자연의 본성을 드러내듯 대부분의 풍경들 정말 우중충하다. 하지만 양손으로 실타래를 푸르고 공처럼 실꾸리를 만드는 안방 장면 아름답다. 방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 아이들이 공부하는 장면은 불빛보다 더 따뜻하다. 양조위 그가 그냥 평범한 사람들의 무미건조한 정지된 인물사진을 찍는 평범한 사진사인 것처럼 허우는 민중의 철저한 패배 혹은 위대한 승리를 그리지 않는다. 라이프 잡지식 사진이 주는 놀라움이나 심미적 쾌락에 관심이 없는 그가 남긴 콴메이와 원칭의 가족사진만은 그래도 서비스다. 중국인도 아니고 대만인도 아닌 묘한 자장 안에 놓인 47년생 그가 뒤돌아보는 사회적이거나 몽환적 검열을 대만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생각할까. 문명사가 허우, 미학자 허우, 철학자 허우 그의 고민은 양조위의 필담을 닮아있다. 영웅도 없이 변두리에서 무시된 타자들의 지리멸렬한 이야기는 순서가 좀 바뀌어도 상관없는 영화. 웬만한 광량을 차단해 어둔 것은 어둔 데로 가는 화면, 그는 카메라로 공간의 볼륨을 죽인다. 가까운 사운드는 가깝게 먼 사운드는 멀게, 배경이 바뀔 때마다 흘러나오는 OST는 꽤 괜찮은 음악. 도대체 필담은 뭘까 하는 궁금증을 만드는 투샷들, 맥없는 장면으로 이야기를 붙이는 솜씨가 섬사람의 풍모는 아니다. 역사의 상처는 무거운데, 그 처리방법은 가볍게 흘러가는 이 영화가 주는 묵직함은 과연 어디서 오는가. 결국 관습의 경계를 부정하는 힘, 그래서 허우의 영화는 보지 않으면 안 될 영화 부채 같이 우리의 눈길을 잡아끈다.   비정성시의 <천년학> 불가시한 세계와의 교감. 허우 선생의 귀머거리 사진사 이야기는 뮤직은 있되 사실 그럴싸한 비디오는 없지만, 앞 못 보는 소리꾼 이야기는 나무랄 데 없는 애국가 스타일 뮤직비디오다. 이야기도 좋았고 공들인 화면은 아름다웠다. 소방차로 닦은 듯한 깨끗한 길, 끝없이 펼쳐진 제주도의 수려한 풍광, 배우의 얼굴을 친절하게 잡아내는 카메라는 오래된 살림집 한 채를 붙들어 매는 것이 아니라 단청이 잘 칠해진 절집을 보는 듯한 느낌. ‘첫째는 인물치레, 둘째는 사설치레’라는 영화 속 판소리 자락이 바로 임선생의 생각은 아닐까. ‘웃게 하고 울게 허기가 어찌 그리 어려운가.’임선생의 검열은 바로 그 지점인 것 같다. 의고(擬古)적이라는 말씀. 할은 아니어도 죽비라도 쳐주길 바랐는데, 아깝다. 너무 밝은 정일성의 카메라, 소리에만 집중하는 임권택의 귀가 들려주는 노래는 악보 아닌 우아한 시디레이블 같아 눈에 밟힌다. 그래도 위로라면, 꽃 속에 죽어가는 장민호 영감의 죽음장면인데 임선생 자신의 예인적 삶을 빗댄 것 같아 그 절창이 아프게 다가온다.   허우가 보여준 대만의 시골에서 폭죽이 터지는 가운데 둘이 추는 사자춤은 신명이 나지 않고 지붕도 없는 가설무대에서 진행되는 경극 장면에서 누구도 박수를 보내지 않는다. 마치 무채색의 <만다라> 시대를 보는 듯하다. 내가 임선생이었다면, 오정해가 노래하던 작은 가설무대의 배우 얼굴은 좀 희미하게 잡았을 텐데. 선창에서 고생할 때, <비정성시>의 주인공들이 로렐라이 노래를 듣는 것처럼 주인공이 이미자 노래 한 곡조 정도 흥얼거려도 좋았을 텐데. 아니라면, 이것이 예인의 비전이라면, 대중의 환상을 실재화한 영화가 아니라면 차라리 작가주의로 더 밀어붙였어야 했는데……. 이제 거장은 <취화선>에서 보여주던 역사적 부채감은 벗은 듯하지만 우리 것에 대한 집착은 여전하다. 하여, 선생의 101번째 영화는 김훈 같이 좀 뻔뻔스러운, 조금 못생긴 영화였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런데 이 <천년학>이 교차상영되고 있단다. 곧 간판이 내려진다는 얘긴데, 그렇다면 우리 사는 곳이 바로 ‘비정성시’란 말 아니겠는가. 잠깐!  짧은 대만 영화사 대륙인 장이머우나 첸카이커가 대중적 환상을 통해 중원을 평정했다면 대만의 뉴 웨이브 3인방은 백일장대회 장학생들처럼 세계 영화제의 상이란 상은 다 휩쓴 존재들. 먼저 허우샤오시엔은 <펑쿠이에서 온 소년, 1983>으로 낭트영화제 그랑프리를 차지하면서 세계영화계가 대만 뉴웨이브에 주목한다. 그는 <비정성시, 1989>로  베니스영화제 금사자상 수상을 필두로 대만 영화를 세계에 알리며 명실공히 아시아 최고의 자리를 차지한다(참고로 한국의 홍상수도 아시아 텐에 못 든다는 말이 있다). <희몽인생, 1993>은 ‘현대 3부작’이라 부른 밀레니엄 프로젝트의 첫 작품. 그런데 <밀레니엄 맘보, 2001>에서는 그도 맛이 좀 간 듯하다. <카페 뤼미에르, 2003>는 오즈 야스지로 탄생 100주년 기념 영화. 키노가 선정한 100대 영화 넘버원으로 선정한(글쎄?) <남국재견>과 130분 동안 38개의 컷으로(그것도 실내장면만으로) 된 <해상화, 1998>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바 있는데, 그 때 영화 보던 사람 절반이 자리를 뜬 기억이 새롭다.   에드워드 양은 <청매죽마(타이페이 스토리), 1985>로 로카르노영화제 평론가협회상을 탔는데 몇 해 전 부산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 허우샤오시엔 감독이 배우로 출연한 작품. 그의 출세작<고령가 소년 살인 사건, 1991>은 실제 일어났던 대만 최초의 미성년자 살인사건을 통해 역사의 무게에 눌려 질식해가는 개인들의 비극을 그린 작품. 급속한 근대화 속에 여러 모순이 심화되어 가던 60년대 질곡의 현대사를 보여준다. <하나 그리고 둘, 2001>은 어린 소년의 시선으로 한 가족의 다양한 사랑 이야기를 그려내며 삶의 감추어진 진실을 드러내 보이는데, 따뜻하다.   몇 년 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양복에 짧게 깎은 머리를 하고 실실 웃던 아담 사이즈 차이밍량, 컸다. 상복이 터진 그는 이제 전주에 오지 않는다. <청소년 나타, 1992>는 그의 장편 데뷔작. 도시 속의 소외와 단절이라는 차이밍량의 일관된 주제가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애정만세, 1994>는 베니스영화제 금사자상을 탄 유명한 작품. 타이페이의 세 젊은이를 통해 누구와도 진정한 관계를 맺지 못하는 현대인의 공허한 삶을 묘사한 영화. 이들 사이에는 소외와 고독만이 존재할 뿐이다. <구멍, 1998>에서는 끊임없이 비가 내린다. 퇴거 조치가 내려진 건물의 아래 위 층에 살고 있는 두 남녀를 통해, 소통불능의 현대에서 마지막 희망의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는 뮤지컬 영화. 비디오 가게에 있다. 최근작 <안녕 용문객잔, 2003>은 그 유명한 전설적 영화 호금전의 <용문객잔>을 마지막으로 상영하고 있는 극장의 이야기. 이 대만 선수들의 영화에 재미를 기대하시는 분은 없을 터. 참, <결혼피로연, 1994>)으로 베를린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받고 역시 대만 사는 미국인 이야기를 다룬 <음식남녀>와 걸작 <와호장룡>, <브로크백 마운틴>을 만든 리안(李安)은 대만 출신일 뿐, 대만 영화범주에 넣지는 않는다.  신귀백ㅣbutgoo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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