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4 | [교사일기]
성적에 떠밀려 온 아이들
남상팔
임실 삼계중학교 교사(2003-04-08 10:29:37)
올해 2월을 끝으로 나는 실업계 고등학교를 떠나야 했다. 6년 근속의 순환근무제에 의해 전주시를 떠나 다른 지역의 실업계 고등학교로 자리를 옮겨야만 하지만 내 전공과목의 자리가 없다. 실업계 고등학교의 아픈 구석은 인사 이동에서도 나타난다. 내 전공은 무시된 채 기술교사로 발령이 났다.
이제 나는 전체 3학급의 작은 시골 중학교에서 기술 교사로서 여러 과목을 가르쳐야 한다.
7차 교육과정에 의해 1학년은 기술·가정, 전산 그리고 재량 활동 시간 창의 과목을 가르쳐야 하고, 2·3학년은 6차 교육과정이 적용되어 기술·산업 그리고 가정과목까지 가르쳐야 한다. 이제부터 전공 과목은 쳐 박아 두고 이제 새로운 과목을 공부해야 한다. 교재 연구를 하려고 책을 펴 보지만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학생수가 41명인 농촌지역의 작은 중학교인데도 생각보다 잡무가 참으로 많다. 아이들 가르치는 일에 전심 전력을 다해야 하는 교사가 잡무에 파묻혀 본업에 소홀해 질까 걱정이 앞선다. 그러나 아이들은 참으로 순박하고 착하다. 교사로서 자긍심을 가지고 아이들 앞에서 떳떳하게 서고 싶지만 자신이 없다. 착잡한 마음속에 공고에 근무했던 지난해를 떠올려 보면 그래도 위안이 된다.
실업계 고등학교는 농촌 지역 고등학교와 더불어 우선 학생 모집이 어렵다. 그러므로 실업계 고교와 농촌 고등학교에서는 학생 모집을 최대의 목표로 삼고 바쁘게 뛰어야 한다. 3시를 제외한 전라북도 대부분 지역의 실업계 고등학교 교사들은 각 지역 중학교를 방문해야 한다. 학생을 한 명이라도 더 끌어들이기 위해 세일즈맨으로 변신하게 된다. 우수학생 모집보다는 정원이라도 채우려는 처절한 몸부림이다. 농촌 지역의 실업고는 만성적인 학생부족으로 미달사태를 경험하게 된다. 큰 도시에 위치해 있는 실업고는 정원은 넘어서지만 학력이 우수한 학생들은 실업고를 외면하고 학부모들은 고학력 사회에 편승하여 적성을 무시한채 자식의 실업고 진학을 막고 있다.
지난해 전주 시내 중학교에서 3학년 학생의 진로를 지도하던 한 담임교사는 학부모에게 학생의 실업고 진학을 권유했다가 심한 항의를 들었다고 한다. '공고를 보내고 시내에서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란 말이예요. 인문계 고등학교 떨어져도 좋으니 인문계 원서 써 주세요' 라는 말을 듣고 나는 실과교사로서 난감하고 착잡한 마음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새 천년의 시작이라고 떠들썩했던 2000년에 나는 공고 토목과 1학년 1반 담임을 맡았다. 입학 첫날 아이들의 입학을 축하하듯 맑은 날씨에 공기는 다소 차갑지만 햇살은 따스했다. 교실에 들어서니 대부분 아이들이 착하고 순해 보였다. 첫날부터 결석이 없다는 사실은 담임으로서 참으로 기분 좋은 일이다. 출발이 좋다했더니 3일만에 결석생이 생겼다. 주소가 경기도 김포로 되어 있는 송기는 연락이 되질 않는다. 부모를 찾으려 경기도로 간것 같은데 송기 중학교 때 친구들도 소식을 알지 못한다. 사방팔방으로 찾아 보았지만 1주일이 넘도록 소식이 없다. 그래도 나는 아이들에게 희망과 자긍심을 심어주기 위해 기초학력을 다지면서 취업과 대학진학의 두 마리 토끼를 잡자고 했다. 학교의 전통과 훌륭하신 졸업생 이야기도 많이 했다.
아이들이 서로 얼굴을 익힌지 2주일 지나서야 실장을 뽑기로 했다. 아이들한테 선거를 통해서 실장을 뽑으라고 시켰지만 실장을 하려고 등록하는 학생도 없고, 실장 하고자 나서는 학생도 그리고 추천해 주는 학생도 없었다. 4일이 지나 답답해서 중학교 때 실장이나 부실장을 해 본 학생이 있냐고 물어도 하나도 없다. 실장이나 부실장이 되려면 학급 분위기로 보아 성적이 일단 좋아야 하는데 실업계에 진학한 학생들이 중학교때 성적이 좋지는 않다.안타까운 마음으로 호소를 하니 덩치가 있어 보이고 키가 큰 희인이가 일어서서 우리반에서 나이가 많은 용 이라는 학생을 추천 하였다. 만장 일치로 찬성하여 용이가 반장으로 추천되었진만 열의가 없어 보인다. 용이는 전주인문계 시험을 보고 떨어져 1년 동안 재수를 했지만 성적이 오르지 않으니 인문계를 포기하고 실업계로 들어온 학생이다.
성적으로 떨밀려 온 학생은 용이뿐만이 아니다. 몇몇의 학생들은 부모나 친척의 권유로 토목과에 들어왔다고 하지만 성적이 떨어지기는 마찬가지다. 진로교육을 제대로 받고 자기의 흥미나 적성이 맞아 실업계를 원해서 들어온 학생들은 거의 없는 실업계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실업계 고등학교에서의 전공과목 수준은 대학교재의 수준과 비슷하니 기초학력이 없이 성적으로 떠밀려 온 실업계 아이들은 학습을 포기하기가 쉽다. 실업계에서는 실습을 하게 되고, 자격증 취득을 강조하면서 수업을 진행하다 보면 전공 과목에는 다소 관심을 갖게 된다. 그리고 성적에 부담이 없어서인지 아이들이 명랑하고 활발하다. 하지만 인문과목의 수업은 관심도 적고, 흥미를 느끼지 못하며, 기초학력이 부족한 나머지 자리만 지키는 학생들이 많다. 공부를 하고자 하는 학생들도 있지만 전반적인 학습 분위기가 침체되어 있고 의욕이 없다. 그런데 이렇게 학습의욕도 떨어지고 학력이 떨어지는 실업계 아이들의 목표는 대부분이 대학진학이다.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대학진학의 욕구를 누가 막으랴? 실업고에 들어와서 취업은 안하고 대학진학을 원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아이들의 대답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남들이 다가는데 나라고 대학을 못가요?'
실업고의 위기는 지원자 감소도 문제이지만 중도 탈락 학생수의 증가 심각하다. 학업 성적의 부진으로 인문계 진학이 어려워 단지 성적으로 떠밀려 실업계에 진학한 학생들이 교과 내용을 이해치 못하고 학교 생활에 부적응 하다보니 중도 탈락 학생수가 증가하고 있다.
우리 학급에서 첫번째 결석을 기록했던 송기는 연락이 되지 않고 만날 수 없어 결국 3월말에 퇴학을 시켰다. 일주일 정도 학교을 나오다 무단결석을 하고있던 정국이는 토목과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학교에 나오지 않아 어머님이 눈물바람으로 자퇴서를 쓰고 가셨다. 4월에 들어서 좀 안정을 찾는가 했더니 착하게 보였던 남수가 진안에 있는고등학교로 전학 간다고 한다. 이유는 친한 친구가 진안에서 학교를 다니고 토목과가 너무 어려워 이 학교를 못 다니겠다고 한다. 어머님이 가출을 하여 아버지가 교육을 시키며 시내에서 학교를 다니게 아버님이 원했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결국은 전학을 가고 말았다. 4월에 들어서 자주 결석을 하던 인준이는 매일 pc방에서 컴퓨터 빠져있었다. 친한 친구 혁우을 데리고 시내에 있던 지하실의 pc방을 급습해서 인준이를 붙잡아 학교에 데리고 왔다. 3일동안 학교를잘 나오던 인준이는 또 결석을 했다. 인준이가 잘 다니던 pc방을 다시 가 보았지만 인준이는 이미 다른 곳을 다니고 있었다. 결국 장기결석으로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형이 학교에 나와 자퇴서를 쓰고 가셨다. 1학기 동안에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여 우리 학급을 떠난 학생이 4명이다. 다행히 2학기에는 안정이 된듯 중도 탈락 학생수가 2명 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시내 공업계 고등학교라는 잇점과 토목과가 대학진학과 취업도 잘 되는 이유로 우리반의 전입생이 5명이나 된다. 그래도 나는 행복한 고민이다. 다른반이나 다른 실업고에 비해 중도 탈락 학생수가 적은 편이다. 특히 전산과와 건축과 여학생 반은 합해서 20여명 정도가 중도 탈락했다.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이러한 실업고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단기적인 대책과 중장기적인 대책이 동시에 필요하다고 본다. 우선은 실업고에서도 대학진학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대학 수능시험에서 실업계열을 신설해야 한다. 그리고 중장기적으로는 학벌을 통한 지위 경쟁 이데올로기를 극복해야만 한다. 엘리트 선발 중심의 교육구조와 학력 경쟁의 가속화는 실업 교육을 더욱 벼랑으로 몰고 갈 것이다. 교육의 사회적 평등을 위해 학력 차별을 점진적으로 없애야 하고, 진로 및 직업교육을 활성화 해야 한다. 한 개인의 겪는 「일과 삶」의 설계 프로그램을 만들어 실업교육에 대한 철학을 정립 할 때 아이들의 눈빛이 살아나고, 실업교육에도 희망이 보이며 우리의 삶의 질도 높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