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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5 |
[문화시평] ‘어디에서 보아도 나는 모악이다’ Ⅱ부展 -이건용, 강관욱, 유휴열, 전수천
관리자(2007-05-14 16:02:01)
주류와 비주류 사이의 창조성 예술의 평가 기준은 무엇일까. 예술 자체를 어떤 보편적인 기준으로 평가한다는 것이 모순이고 무리이지만 전시장을 다니다보면 흔히 받는 질문 중의 하나가 ‘어떤 작품이 좋은 작품인가’라는 물음이다. 이러한 질문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예술 자체를 평가의 대상으로서 간주할 수 없다고 간략하게 얘기하지만 현실은 분명 이론가들이나 대중들에 의해서 평가되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사회 구조가 대부분 평가의 시각으로 높낮이와 중요도를 따지고 있어서 예술도 평가의 선상에 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예술이 어떤 식으로든 평가를 받게 되면서 주류와 비주류에 대한 구조도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흔히 얘기하고 있는 주류라고 하는 예술은 현재 우리의 미술화단과 미술 시장에 자주 등장하며 화단을 주도하는 부류로서 소위 잘나간다고 하는 예술인들이라고 생각할 것이고, 비주류라고 하면 일반 대중들의 시선에 익숙하지 않은 뭔가 실험적이고 독특할 것 같은 주변부의 작은 움직임이라고 여길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창조성이나 예술성에 대한 가치로서도 주류와 비주류를 논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문제이다. 당연히 예술에 있어서 중요 요소가 되는 창조성과 예술성은 주류와 비주류를 기준으로 평가될 수 없을 것이다. 예술을 평가할 수 있는 것은 개별적인 창조활동을 통해 얻어지는 진정성에 있다고 여겨진다. 그래서 필자는 유행처럼 사용하고 있는 주류와 비주류에 대한 단어 사용을 통해 사회 전반의 분위기와 예술과의 관계 속에서 시각적으로 드러나는 정도의 차이를 바탕으로 서술하고자 한다. 지금까지 앞에서 주류와 비주류에 대해 언급한 것은 전북도립미술관에서 기획한 ‘어디에서 보아도 나는 모악이다’ 라는 전시를 보면서 드는 생각이었다. 이 전시는 3차에 걸쳐 11명 작가의 초창기부터 현재까지의 작품 흐름을 볼 수 있는 그룹 개인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들은 제목에서처럼 모악산이라는 상징적인 모태를 바탕으로 전북과 관계한-전북 출신이거나 현재 전북에서 활동 하는-작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2차 전시에 참여하고 있는 이건용, 강관욱, 유휴열, 전수천 등 네 명은 각자의 영역에서 나름의 작업세계를 밀도 있게 다져놓은 작가들이어서 전시장 가득 설치된 작품들이 전북미술이라는 지역보다 한 단계 나아가 우리나라 현대 미술의 흐름을 읽을 수 있을 만큼 완성도 깊게 전달되었다. 이들이 보여준 2차원적 평면 작품과 3차원적 입체, 그리고 4차원적인 공간설치 작품들을 통해서 다양한 현대 미술의 한 부분을 확인 할 수 있었고 소위 우리나라 미술의 주류라고 보이는 유명한 작가들의 많은 작품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것에서 전시가 주는 의미는 주제와 관계하지 않아도 흥미를 제공하기에 충분하였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이 전시에 참여하고 있는 작가들을 주류나 비주류라는 타이틀을 붙이는 것에 위험 부담을 안고 있지만 일단은 미술적 영역 안에서 주도적 역할을 상당 부분 차지하는 것에서 주류라고 판단하는 많은 이들이 있을 것이고 그것에 관계하여 예술에 대한 창조적 발상을 중심으로 네 작가의 작품을 들여다보기로 하자. 평면적 드로잉과 퍼포먼스, 설치 등 복합적인 예술세계를 펼치고 있는 이건용은 인간과 자연, 예술의 관계를 풀어내기 위해 끊임없는 변화와 고민을 작품 속에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전시장 가득 늘어져 있는 평범한 나무토막들은 작가의 손을 거치면서 예술작품으로 재인식 되고, 신체를 이용한 퍼포먼스와 드로잉 작품들은 예술의 표현성에 있어서 ‘재현’에 대한 부분을 규정짓고 있다. 이러한 것들이 단순한 예술적 조형성의 시각만을 부여하기에는 그 이면에 가지고 있는 작가의 철학적 사고가 더 큰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다. 자연 상태 본연의 모습을 해치지 않으면서 적당히 작가의 손으로 가미한 인공적인 예술성이 어우러져 새로운 변신으로의 창조적 발상을 보여준다. 강관욱은 인간과 자연에 대한 실체를 직접적으로 들여다보며 그 속에 담겨 있는 내면을 사실적인 표현화법으로 말하고 있다. 그래서 작품들은 역사성을 바탕으로 그 속에 내재되어 있는 우리 민족의 애환과 고통, 희망 등 그 동안 지나온 세월을 작가의 끈질긴 예술 근성으로 만들어내었다. 이 작가에게서 보이는 예술적 창조성이란 서구적인 유형의 유행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우리의 존재 의식을 밝혀내는 예술 행위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한 전시장에 놓인 <민족의 여명>과 <포착된 순수형태>라는 두 작품을 보면서 서로 개별화되지 않은 중첩된 하나의 의미가 전달되었고, 그 속에 담긴 작가의 정신세계도 작품을 통해 강하게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우리 민족의 정서와 삶을 표현하고 있는 유휴열은 평면에서 입체적 조형어법까지 다양하게 구사하며 전통의 상징적인 색감과 내면적 특성을 흥겨운 어깨춤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는 전체적으로 연결되는 변화되어가는 흐름을 볼 수 있는데 평면작품에서 보이는 초기의 강렬하고 거친 민화적인 색채는 이후 점차 부드러운 색조와 표현법으로 흐르고 현재에는 알루미늄이라는 이질적인 재료를 사용해서 무채색조의 추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이러한 변화는 민족적 정서인 흥겨운 음률과 맞물려 그림 속에서 막 뛰쳐나온 듯 생생하게 살아서 춤을 추고 있는 입체 조형으로까지 연결된다. 전시장 벽면에서, 그리고 바닥에서 너울너울 춤을 추고 있는 모습들에서 강한 듯 부드럽고 부드러운 듯 강한 우리내의 모습을 볼 수 있게 한다. 이 작가에게서 보이는 예술적 창조성은 누가 보아도 공감할 수 있는 진솔한 마음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마지막으로 전수천은 예술 표현의 방법과 형태를 끊임없이 변형하며 인간과 문명, 역사 등 현실에 존재하는 모든 문제적 요소를 거론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보여주고 있는 작품들은 현대 문명을 비판적 시각으로 표현하고 있는 바코드화 되어가는 인간의 모습을 조형화한 것과 한글에 대한 의식, 그리고 자연물에 대한 작가의 시선을 나타냄으로써 인위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에 대한 혼합을 통해 시간과 공간에 대한 소통의 문제를 제시하고 있다. 그가 끊임없이 추구하는 모든 행위들에 대한 표현은 거시적인 발상으로 시각화되어 예술의 창조성을 실현하고 있다. 이상으로 네 명의 작가들을 거론하였는데 전시 자체가 하나의 제목 안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틀로 묶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각각의 예술성을 거론하는 공간 구성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들에게서 엿볼 수 있는 개별적인 예술적 창조성은 미술화단의 주도적 역할을 하기에 충분하다. 주도적 역할이라고 하는 것은 시대성, 예술성 등 여러 가지 요소들을 포함하여 발생할 수밖에 없지만 이들이 부단히 노력하는 예술에 대한 고민과 끝없이 추구하는 창조적 행위에 대한 노력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 전시가 전북의 미술의 정체성에 대한 탐구를 심화한 전시라는 주최 측의 기획의도를 읽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지만 창조적 발상이 풍부한 작품을 가까운 곳에서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 것에 대해서는 좋은 의미로 해석하고 싶다. 김저운/ 소설가. 전북작가회의 회원. 현재 김제여자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으며, 저서로는 <그대에게 가는 길엔 언제나 바람이 불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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