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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5 |
[내고향 바로알기 현장학습] “역사를 읽어가는 소풍”
관리자(2007-05-14 14:05:47)
“역사를 읽어가는 소풍”          고태봉ㅣ장수문화원 사무국장 2007년 4월 24일 화요일이다. 아침에 일어나 하늘을 살피니 구름이 잔뜩 끼어 비가 올려나 걱정이 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간간히 비치는 햇살은 소풍가기에 참 좋은 날이 되었다. 장수군은 자라나는 어린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싶은 것들이 많다. 기록이 전해지기 시작하면서 삼국시대만 존재하는 줄 알았던 우리에게 새롭게 다가선 거대한 가야역사와 자연과 함께했던 학문의 도장들, 좌도풍물, 깃절놀이, 황희, 백장선생과 삼절, 백용성 조사와 의병장 등의 혼이 살아 숨쉬고 있는 지역이 장수라는 곳이다. 국어, 영어, 수학, 과학 등 우리아이들이 배워야 하는 공부도 많지만 그보다 앞서 인성, 즉 왜 공부를 해야 하고 나의 인생에 있어서 삶의 기준과 가치를 어디에 두어야 할 것인지를 체계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과정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고 있다. 나아가 지역에 대한 사랑과 자긍심을 부여할 수 있고 자연의 이치를 깨달을 수 있으며 온고지신에 의한 창의적 인생관을 심어주기에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까? 계남초등학교 80명, 계북초등학교 48명, 원촌초등학교 28명은 3개 학교의 전교생이다. 선생님들 포함하여 175명이 4대의 버스에 나누어 타고 계북으로 향하였다. 가장먼저 도착한곳은 토옥동 계곡지역에서 을사능약 후 의병활동을 벌였던 문태서, 박춘실의병장 유허비였다. 장수문화원장님께서 직접 마이크를 잡았고, 고사리 손들에는 자료집에 적어나가는 손놀림으로 벌써 바쁘다. 박춘실 장군은 체포되어 감옥에 있으면서 100여명의 동료들을 탈출시키고 본인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도로 잡히어, 치욕을 씻기 위해 스스로 자결하였다. 그 분의 고향은 백암이다. 같은 지역에 또 한분, 건재 정인승 박사이다. 1942년 3년간의 옥고를 치르면서도 일제에 대항하여 조선어학회를 통해 우리말 ‘큰 사전’을 편찬하였고 후에 전북대학교 총장까지 역임하였다. 그분의 생가는 양악이다. 이제 본격적인 역사소풍이 시작된다. 장계면에 접어들어 개안들에는 백이군터와 고인돌의 흔적을 통과하여 논개생가지에 들었다. 넓은 마당에서 지저귀는 작은 아이들의 목소리는 창공을 날아다니는 새들의 소리와 같았다. 보물 제272호인 향교는 정경손님의 기개로 600년 역사를 이어 온 오래된 건축물이다. 사람들이 사랑하지 않는 자리에 배흘림의 기둥이 외롭다. 논개사당을 거쳐 번암으로 향하였다. 백용성조사의 생가지에는 죽림정사가 들어서 있다. 한국 최초의 한글 찬불가와 경전을 번역하셨고 3.1운동민족대표 33인중 불교계 대표로 독립운동을 주도하였으며 선농일치를 부르짖은 근대불교의 선각자이시다. 죽림리는 명당이었다. 문태서 박춘실 의병장과 함께 또 한분의 울분이 정지해 있는 곳, 전 해산 의병장의 묘소에 들렸다. “내가 죽거든 나의 두 눈을 뽑아 동해바다에 걸어라, 내가 너희들의 망하는 꼴을 보고야 말 것이다.” 메아리가 들리는 듯하다 작은 허리들이 의병장님의 묘소에 인사를 하고 있다. 아시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천천면 장판리의 타루비에 들렸다. 배움이 부족하고, 직책도 미천하여 이름석자조차 알려져 있지 못한 순의리 백씨는 자기의 소임을 다하기 위하여 목숨을 버렸다. 이미 해가 중천에서 기울고 있다. 갈 길이 바빠졌다. 자연, 역사, 선조들의 교훈이 우리의 아이들에게 장수의 맑은 공기만큼이나 순수한 생명의 기운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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