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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4 |
[특집ㆍ아! 섬진강] 남도 오백리 강길, 역사와 사람을 품고 흐르다
관리자(2007-04-13 19:01:30)
[특집ㆍ아! 섬진강] 남도 오백리 강길, 역사와 사람을 품고 흐르다            글 | 최정학기자 진안 마령 백운산 자락의 아주 작은 데미샘에서 시작해 오백오십리 남도 길을 굽이굽이 흘러가는 섬진강에 또 다시 봄이 왔다. 너른 벌판을 적시는 젖줄로, 임진왜란의 최초 전투지로, 농민운동과 항일의병 투쟁의 현장으로, 빨치산 투쟁의 중요한 거점으로, 민족의 역사와 아픔을 같이 해온 섬진강은 이제 수많은 문학적 상상력의 무대로, 원시의 생태를 간직하고 있는 소중한 자연유산으로 우리 곁을 흐르고 있다. 봄이 찾아온 섬진강은 농사를 준비하는 바쁜 농부의 손길과 여기저기 제멋대로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봄꽃들을 품고, 유유히 그러나 잠시도 쉬지 않고 흐르고 있다. 김용택 시인과 ‘시인의 길’을 걷다    ‘섬진강 굽이굽이, 이 길은 시가 되고’ 진안군 백운면 팔공산 자락의 데미샘에서 태어난 섬진강은 옥정호에 이르러 깊고 찬 물로 잠시 몸을 쉰다. 옥정호에서 다시 흐르기 시작한 물은 구림천 등 여러 지천들과 만나 제법 강물답게 휘돌아 진뫼마을에 다다른다. 섬진강 줄기 따라 진뫼마을에서 천담마을까지 이르는 10리 길. 김용택 시인은 천담분교에 근무하던 3년 간, 이 길을 하루도 빠짐없이 걸었다. 그리고 어느 날 부터인가 사람들은 이 길을 ‘시인의 길’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진뫼마을은 전형적인 강촌이다. 몇 가구 되지 않는 작은 집들이 모두 섬진강을 보고 나지막히 앉아있다. 그 맨 앞 섬진강과 가장 가까이에 김용택 시인의 집이 있었다. 시인의 집에서 저만치 보이는 섬진강 앞 커다란 둥치의 느티나무는 30여 년 전 김용택 시인이 직접 심은 것이다. 일년 중 가장 강의 물이 적은 때지만, 느티나무 너머로 시린 빛깔의 섬진강이 도도히 흐르고 있었다. 평생 시인의 삶과 함께 부대끼며, 서정의 단어를 만들어낸 바로 그곳이다. ‘시인의 길’은 느티나무에서 얼마 안가 있었다. 좁은 콘크리트길을 조금 가자 자갈이 깔린 비포장도로가 시작되었다. 강 옆으로 나지막한 산이 구불구불 평행을 이루고 누워있다. 세상과 단절된 듯, 물 흘러가는 소리 밖에 들리지 않는 이곳은 아늑했다. 이곳을 ‘천국의 길’이라고 불렀던 시인의 말이 새삼 다가왔다. 이곳에도 이제 막 봄이 시작되고 있었다. 산 군데군데 노오란 생강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의 ‘동백’이 실은 바로 저 꽃이라고 시인은 말했다. “이 길은 진뫼마을과 천담마을과 잇고 있긴 하지만,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아요. 고기잡는 사람들이나 다슬기 잡는 사람들이나 다녔죠. 여긴 특히 강기슭이 너무 이뻐요. 우리나라의 큰 강기슭 중에서 이렇게 보존이 잘된 곳이 없어요. 이제 조금 있으면 지난해 피었던 꽃들이 또 피어날텐데 얼마나 이쁜지 몰라요. 여기 꽃이며 풀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 시인은 이 길을 뙤약볕 아래서는 잎 넓은 풀을 꺾어 해를 가리고, 이슬 많은 아침이면 반바지 차림으로 3년간 걸어 다녔다. 언제나 길의 끝에서는 천담분교 학생들과 가족들이 그를 마중 나와 있었다. 산딸기가 유난히 많아 가끔 그의 가족들은 그가 빈 도시락통에 가득 담아온 산딸기 만찬을 즐기기도 했다. “자연을 이 길을 걸으면서 봤어요. 매일 혼자 이 길을 걸으면서 보니까, 봄 여름 가을 겨울 자연이 너무 섬세하고 아름다운거야. 그렇게 재미있었어. 지난해 피어있던 꽃이 이듬해 걷다보면 어느 날 그 자리에 또 그렇게 피어있거든. 그런거 보는게 얼마나 재밌었는지 몰라요. 걷다보니까 온갖 것들이 다 보이는거야. 사람들이 요즘엔 단 몇 백미터도 안걷잖아요. 그런데 걷는 것이, 특히 이 길을 걷는 것이 너무 좋아. 이 길을 걸어가다 보면 내 발자국 소리가 들리잖아요. 발자국 소리가 내가 살아온 길이고, 그러면서 내 자신에 대해 다시 되돌아보는 거지. 또 걷다보니까 그냥 모르고 지나쳤던 자연의 모습들이 보이게 되고, 그 아름다움에 놀라게 되는거죠. 그런 것들이 바로 글이 되는거죠.” 시인은 이 길을 걷는 3년간 세 권의 산문집을 펴냈다. 모두 이 길 위의 아름다움과 사색들이 이 오롯이 모아진 것들이었다. 시인은 이 길이 시를 다 써주었다고 말했다. 이곳에도 인간의 이기심이 손길을 뻗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김용택 시인으로 인해 이곳의 아름다움이 알려지면서 부터다. “조금더 편리하자고 자연을 파괴하는걸 보면, 인간만큼 무지한 동물이 없어요. 우리가 사는 곳을 파괴하다보면, 결국 우리 자신이 파괴되는걸 몰라요. 난 그것이 두렵고 무서워요. 제방공사가 진뫼마을 바로 위까지 진행됐어요. 어느 날엔가 보니까, 제방공사 한다고 강바닥을 싹싹 긁고 있어요. 5백년 만에 한번 올 수도 있는 농경지 침수를 예방한다는 겁니다. 이 길도 어느 날 갑자기 이렇게 자갈을 깔아놨어요. 관광지로 개발하기 위해 벤치를 놓고, 꽃길을 만든다는 거에요. 포장한다는 걸 10년 동안 싸워왔는데…. 제발 이곳의 꽃 한송이 풀 한포기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길가에 자란 풀 위로 자갈이 덮혔지만, 아직 여전히 길은 아름다웠고 물고기가 많이 산다는 강물도 파랬다. “섬진강에서 나고 자라 지금까지 살고 있어 이제 섬진강은 제 일부분이나 마찬가집니다. 어딜 가더라도 눈만 감으면, 제 앞엔 이곳의 아름다움이 펼쳐져 있어요. 섬진강은 내 삶의 위안이었고, 세상을 향한 길입니다.” 봄 햇살 아래 섬진강이 물비늘로 눈부셨다. 여기저기서 버드나무 잎이며, 또 이름모를 꽃 들이 조금씩 새싹을 틔우는 소리가 들리는 듯도 했다. 조금더 편리하자고 자연을 파괴하는걸 보면 인간만큼 무지한 동물이 없어요. 우리가 사는 곳을 파괴하면 결국 우리 자신이 파괴되는걸 몰라요. 난 그것이 두렵고 무서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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