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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ㆍ아! 섬진강] "강과 산과 사람이 어울려 빚어내는 풍경"
관리자(2007-04-13 19:00:10)
[특집ㆍ아! 섬진강] 섬진강, 요천수, 수지천이 합수치는 곡성 동산리 순자강가에서
"강과 산과 사람이 어울려 빚어내는 풍경" 글 | 복효근 시인
동산보(東山洑) 한 가운데 서 있다. 전북 남원시 송동면 세전리와 전남 곡성읍 동산리를 이어서 축조해놓은 여기 이 보(洑)는 행정구역으로 어디에 속하는지 잘 모르겠다. 여기서 2개의 도가 만난다. 그리고 2개의 시·군이 만나고 남원의 금지면, 수지면, 송동면과 곡성읍과 곡성군 고달면이 만난다.
섬진강의 한 자락이기는 하나 여기서는 어떤 이름으로 불러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여기서 세 개의 물줄기가 만난다. 저 멀리 진안군 백운면에서 시작된 섬진강이 순창과 남원의 대강의 협곡을 지나 여기에 이르고, 전북 남덕유에서 시작하여 남원 산동과 남원시내를 거쳐 금지벌판을 가로질러 온 요천수가 여기에 이른다. 또한 남원 송동과 수지의 작은 계류들이 모여 이룬 수지천이 여기에 이른다.
이 세 개의 큰 규모 하천이 합수되는 지점에서 하상을 바라보니 광활하기 그지없다. 강 주변에는 역시 드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는데 그 사이에는 인공적으로 쌓아올린 강둑이 높다랗게 그리고 끝 간 줄 모르게 이어져 있다. 이 인공 강둑이 쌓여지기 이전에 여기 벌판 모두는 습지였다고 한다. 개화기 이후에 간척사업으로 들판이 형성되었다고 하니 불과 100 여 년 전에는 저 벌판 모두가 물로 채워져 있었다는 뜻이다. 금지면의 남쪽 끝자락, 강에 접해있는 마을이름이 하도(下島)다. 그 옛날 ‘아래쪽의 섬’이었다는 뜻이렷다.
금지면 택내리 산언덕엔 중종 14년(1519)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구례현감을 사하고 돌아온 안공처순이 지은 서재, ‘사제당’이 있고 그 곁에 그의 아들이 지은 ‘영사정’이라는 정자가 있는데, 그 영사정에서 돌아본 ‘영사정 8경’ 가운데엔 “순강모우“ 야도고주”가 있다.
“순강의 저녁비”와 “들을 건너는 외로운 배”라는 뜻이다. 여기서 말하는 ‘순강’이란 바로 앞서 말한 세 줄기의 물이 합수치는 이 부근의 강을 가리킨다.
가을에 떼를 지어 몰려와 메추리가 많이 서식한다하여 메추라기 순자를 붙였단 말도 있고, 그 어느 효자가 병든 부모님을 구환하기 위해 산 넘고 들판을 가로질러 추운 겨울에 메추라기를 잡아다가 부모님을 회생케 했다하여 ‘순자강’이라고 했다고 하기도 한다.
어쨌든 영사정과 이 곳 순자강은 수 킬로미터의 상당한 거리에 있음에도 순자강에 비 내리는 풍광이 아름답고 또한 거기에 저물녘에 배가 지나가는 풍광이 아름답다고 노래했으니 그 얼마나 큰 규모의 강이었는지 짐작할 만하다. 1,500년 전에는 백제, 마한, 대가야와 왜의 상인들이 교역했던 곳이라 한다. 이 강유역이 얼마나 넓은 지역이었는지 알 수 있다. 섬진강 강을 따라 소금배가 남원 읍성 가까이까지 들어왔다 하니 거짓말은 아닌 듯하다.
바다와 같은 넓이의 강이 굽이쳐 흐르며 이루어 놓은 이 곳의 풍광은 그래서 다른 섬진강 어느 자락에서 느껴볼 수 없는 그 나름의 웅장함을 갖고 있었으리라. 강변 언덕엔 보인정(輔仁亭), 횡탄정(橫灘亭)이 있고 맞은편 강가 동산리에도 동월정과 함께 또 다른 정자가 두 개나 서있다. 많은 시인묵객이 이 강가에 모여 자연의 아름다움을 기꺼워했으리라. 보인정 곁에 서있는 “횡탄문회기념비(橫灘文會紀念碑)”가 그것을 말해준다.
그러나 100여년 전의 그 웅대한 아름다움이 지금 눈앞에 그대로 펼쳐져 있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갈수기인데다가 수많은 댐과 보가 강을 군데군데 가로막고 있어 이 곳 강의 넓이에 비하여 수량은 많지 않다. 이 곳 동산보엔 3개 하천이 모여 잠시 머물다 흐른다.
군데군데 넓은 섬들이 생겨 우거진 갈대들이 아직도 숲을 이루고 있다. 거기에 아직 이 땅을 떠나지 못하고, 떠날 채비를 하고 있는 수많은 겨울 철새들이 그 나름대로 강의 정취를 돋구어주고 있었다. 듣자하니 상당히 많은 종류의 철새들이 오는데 고니(백조)도 가끔 목격되기도 한단다. 인기척을 느끼고 이리저리 날아 옮겨 앉는 철새들의 모습이 이른 봄날 오후 햇살을 받아 한 폭의 그림을 그려내고 있다.
여름에는 달뿌리풀, 갈대며, 억새 그리고 강버드나무가 숲을 이루어 아침 저녁 피어오르는 자욱한 안개와 어울려 전형적인 습지로서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어족도 풍부하여 강낚시를 하는 사람들도 이 곳을 즐겨 찾는다고 한다.
보인정 앞 강가의 암벽엔 ‘보인대(輔仁臺)’라고 붉은 글씨로 새겨져 있다. 보인정에 오르니 왜 이 곳에 많은 정자를 짓고 시인묵객이 모여 시회를 열고 음풍농월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단순히 웅장한 강줄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강 너머에 끝없이 펼쳐진 남원평원과 곡성평원의 광활함도 장관이지만 그보다 먼 배경을 이루는 산줄기가 이 곳에선 한눈에 다 들어온다. 팔공산에서 시작한 금남호남정맥 남원산줄기 고리봉, 문덕봉이 그렇고 연산에서 시작한 곡성 산줄기 동악산, 통명산이 그렇고, 지리산 만복대에서 시작한 견두산, 천마산 등 거대한 산줄기들이 이 강과 평원을 둘러싸고 있다. 그 산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건너편엔 곡성읍 동산리가 강언덕에 가려서 마을의 지붕들만 조금씩 보여준다. 그 옛날에는 저 마을도 물에 둘러싸인 섬이었을 것이다. ‘ㄱ자’로 꺾이는 강의 안 쪽에 작은 섬처럼 산이 있고 그 안쪽에 마을이 아늑하게 안겨있다.
강을 건너 거기 동산리로 가본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소나무들이 도열하여 사람을 맞는다. 큰 산은 너무 멀고 강가에 땅은 넓어서 그런지 논가에 묘를 썼다. 마을 입구에 묘지가 즐비하다. 마을 뒤로 산이 있고 산 너머엔 강이다. 강 저 쪽엔 앞서 말한 보인정과 횡탄정 정자들이 보인다. 그 정자 앞으로 흘러가는 강물은 사뭇 세차게 돌면서 저 구례 쪽을 향하여 내달린다. 저 동쪽으로 천마산이 솟아있다. 그 너머엔 지리산이다. 강에 비친 산 그림자가 또한 한 폭 그림이다.
강가에는 정자 하나가 팔각지붕을 이고 동쪽 강 언덕에 면하여 서있다. ‘동월정(東月亭’, 오래 된 건물로 보이지는 않으나 몇 백 년 묵은 느티나무 몇 그루가 호위하고 있는 품이 예사롭지 않다. 동쪽을 바라보고 있으니 지리산 쪽을 바라보는 셈이다. 밤에 이 정자에 앉아 돋는 달을 바라보며 술잔을 기울이면 그 맛이 어떨까? 하늘에 달, 강에 달, 술잔에 달, 그대 눈에 달… 상상으로도 취할 듯하다.
꼭 달구경에 그러한 운치가 아니더라도 마을 청장년들 여름날이면 모여 천렵을 하기에도 딱 좋은 장소였다. 그러나 다가가 보니 여기저기 부러진 나뭇가지들이 흩어져 있고 “수영금지” 팻말이 을씨년스럽게 서있다. 지난 여름 이후로 누가 여기에 올랐을 성 싶지 않다. 아니 그보다 더 오래 방치되어 있는 듯하였다. 동월정 곁엔 초라한 담뱃가게가 보인다. 간판도 없는 구멍가게는 오래 기다려도 주인이 오지 않는다. 과자 몇 봉지, 라면, 콜라, 오렌지 쥬스, 그리고 벽엔 오징어 몇 마리가 비닐에 싸여 걸려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어디 갔을까? 20여 가호가 되어 보였으나 눈에 보이는 마을 사람은 열 명이 넘지 않는다. 마을 입구에서 쑥을 캐는 아주머니가 있었고 배나무 손질을 하는 노부부를 보았고 허물어진 집터를 밭으로 고르는 노인 몇 분을 보았을 뿐 유난히 사람이 눈에 띄지 않는다.
그렇다. 이제껏 강과 산에만 마음을 주다보니 온 들판을 덮고 있는 비닐하우스를 무심코 보아왔다. 천지사방 들판 가득 은빛 물결로 눈부신 것이 비닐하우스인 것을! 오늘 ‘영사정 8경’에 하나만 더하라고 한다면 ‘순강가의 비닐하우스’ 를 넣을 수 있을까! 어디라 할 것 없이 하우스 농사다. 이 곳 섬진강 자락 주변은 그 어느 곳보다 겨울농사를 많이 한다. 세 개의 큰 물줄기가 형성시켜놓은 기름진 평야 덕분이다.
계절을 가리지 않고 딸기며 참외며 포도, 오이, 상추 등 작물을 산출해낸다. 우리나라 어느 농촌과 마찬가지로 이 마을에도 젊은 사람은 많지 않으나 그나마 젊은 축에 드는 사람들은 남녀 할 것 없이 주로 비닐하우스에 매달린단다.
아직 봄이 깊지 않아도 강마을은 분주한 사람들로 하여 활기가 넘치고 있었다. 산과 강이 아무리 아름답다한들 저 일하며 땀 흘리는 사람들이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일 마치고 돌아오는 트랙터 저 뒤쪽 곡성 동악산 쪽으로 해가 뉘엿뉘엿 기울고 한 무리 철새들이 날아 올라 어디론가 가고 있다. 먼 산과 사람과 강과 그 모든 자연이 어울려 빚어내는 강마을의 저녁풍경이 더없이 포근하다.
복효근/ 전북 남원이 고향으로 현재 남원 운봉중학교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다. 1991년 <시와 시학>으로 등단하였고, 저서로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 「버마재비 사랑」, 「새에 대한 반성문」, 「누우떼가 강을 건너는 법」, 「목련꽃 브라자」 등이 있다. 1995년 편운문학상 신인상, 2000년 시와 시학 젊은 시인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