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4 |
[특집ㆍ아! 섬진강] "섬진강 강변에는 아름다운 신작로가 있다"
관리자(2007-04-13 18:54:58)
[특집ㆍ아! 섬진강]
"섬진강 강변에는 아름다운 신작로가 있다" 글 | 양병완 순창북중학교 교사
섬진강에서 물놀이 하면서 하루를 보내던 시절, 어렸을 때 지게 받침대인 작대기를 들고 섬진강으로 가서 물이 얕은 장소에서 내려치기만 하면 수박 향기가 진하고 비늘이 없는 20cm가 넘는 하얀 은어를 한 꼬염지를 잡아다가 참나무 숯불에다 맛있게 구워먹을 수 있었다. 한낮에도 팔뚝 길이의 조그마한 대나무 가지나 쑥대 끝에 10cm 정도의 실에, 미끼로 에워싼 낚시 바늘을 매달고 물속 커다란 바위 아래 아무런 굴에다 밀어 넣기만 하면 커다란 자라, 메기, 빠가사리, 쏘가리, 꺽지, 뱀장어를 여러 마리 잡을 수 있었다. 배가 고파 출출하면 버려진 깡통안에다 섬진강 장구목 굵은 다슬기를 잡아넣고 모닥불을 피워 삶으면 꿀맛처럼 맛있는 파란 진국의 다슬기 탕이 만들어져 배고픈 시장기를 넘길 수 있었다.
섬진강 주변 산골짜기 물속에는 납작한 돌맹이만 제치면 커다란 가재가 집게발을 쩌억 벌리고 공격해온다. 지금도 가재는 건재하다. 그러나 은어는 구경할 수가 없다. 그렇게도 많던 은어는 어디로 가버렸을까? 붕어, 쏘가리, 꺽지, 빠가사리도 구경하기 어렵다. 섬진강을 끼고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과 동물과 식물들이 참으로 다양하다.
요사이에는 수달 한 마리와 대화를 나누며 사귀고 있다. 진객 수달을 따라서 섬진강 북쪽으로 올라가면 나도 따라서 올라간다. 다시 내려가면 나도 수달을 따라서 내려간다. 물 한가운데 고개를 내밀고 있는 바위에서 휴식을 취하며 뒹구는 모습은 귀엽기만하다. 흘깃흘깃 바라보면 유유자적으로 누워서 놀다가 유유히 사라졌다가는 다시 물위로 모습을 나타내는 귀여운 수달은 다정한 친구다. 이제는 멀리 도망가지도 않는다. 언제쯤이나 수달과 같이 헤엄을 치면서 물놀이 할 수 있는 날이 올런지!
섬진강(蟾津江) 이름은 섬 자는 두꺼비 섬(蟾) 자(字), 진 자는 나루터 진(津) 자(字), 강(江)은 큰내 강(江) 자(字)를 사용한다. 전북 진안군 신암리 팔공산(1151m)에 있는 데미샘에서 섬진강물은 발원(發源)한다. 전북 남동북 방향과 전남 북동부 방향과 경남 남동부 방향을 흘러 경남 하동과 전남 광양 지점에서 다도해로 흘러가는 대한민국에서 아홉 번 째로 긴 섬진강(총 길이 212.3km)이다.
섬진강(蟾津江)에는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고려 말엽 우왕(1385년경) 시기에 왜구(倭寇)의 침입이 극심하였을 때, 광양만과 섬진강에도 왜구들이 자주 출몰하였다. 어느 날 왜구들이 하동 쪽에서 광양만 쪽으로 강을 건너가려고 하였다. 그 때 진상면 섬 주변에 살고 있던 수많은 두꺼비들이 지금의 다압면 섬진마을 나루터로 몰려들기 시작하더니 진을 치고 밤낮으로 울어대기 시작하였다.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두꺼비들의 커다란 울음소리에 놀란 왜구(倭寇)들이 크게 당황하고 놀라서 도망을 치는 바람에 많은 백성들이 무사할 수 있었다고 전한다.
이때부터 두꺼비 섬(蟾) 자에 나루터 진(津)자를 붙여서 섬진강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끼니 걱정을 하던 시절, 선량한 백성들이 미물인 두꺼비에게 평소에 먹이를 주어서 자기 식구처럼 보살피고 키운 결과, 보은(報恩)을 잊지 않고 한데 뭉쳐 군집생활을 하면서 좋은 일을 한 것으로 생각된다. 두꺼비의 업적(業績)을 전남 광양군 다압면 “섬진강 유래비”에 기록하여 그때의 두꺼비를 오는 사람, 가는 사람들이 오랜 세월동안 칭송하고 있다.
섬진강 강변에는 아름다운 비(非) 포장(包裝) 도로가 있다. 황색 모래땅은 아니지만 아름다운 신작로 길이다. 그리고 대한민국 섬진강 강변에서만 볼 수 있는 중앙선이 없는 21번 일반 국도(國道)가 있다. 순창군 적성면 내월마을 삼거리에서, 순창군 동계면 구미마을 구미교까지 중앙선을 그릴 수 없기 때문에, 양쪽 가변 차선만 흰색으로 그려놓고 가운데 노란색 중앙선은 없다. 마음놓고 중앙으로 달릴 수 있는 도로, 중앙선 표시가 없는 일반 국도를 걸을 때마다 참으로 신기하고 신기롭기만 하다.
지구촌, 대한민국에 이런 도로는 섬진강에서만 볼 수 있는 매우 진귀한 보물 중에 보물이다. 비포장 도로를 걷다가 노란 중앙선이 없는 보물급 일반 국도를 걷고 싶다면 반드시 섬진강을 따라서 걸어 보시도록 추천하고 싶다. 중앙선이 없는 신작로 지기(地氣)를 받고, 매화꽃 향기에 흠뻑 취하시거든, 섬진강 물속에 발이라도 푸웅덩 담그면 천년 만대 태평성대(太平盛大)를 누릴 수 있을 것이 분명하다.
전북 임실군 덕치면 일중리에서 장암리 장산마을(진뫼 마을)까지는 콘크리트 포장이다. 진뫼 마을에는 지금도 김용택 시인이 살고 있다. 진뫼 마을부터 천담 마을까지 정겨운 비포장 도로 신작로 그대로이다. 섬진강을 따라 비포장 도로를 걸어가면서 내려다보이는 강변은 아름다움이 사라지고 있다. 지금 섬진강 물속에는 미국 플로리다 민물고기 배스(Bass)가 최후(最後) 포식자(捕食者)가 되어 폭군(暴君)으로 군림(君臨)하고 있다. 순진하고 착하며 아무런 죄도 없는 토종 민물고기들이 배스에게 잡아먹히지 않고 살아남기 위하여 물속이 아닌 물위에서 물위를 뛰어다니면서 처절한 몸부림이 날마다 이어지고 있다.
섬진강 비포장 도로 아래쪽 강변에는 아름다운 자태의 잡목 군락을 볼 수가 없다. 강변에 서있는 수많은 잡목을 정리했기 때문이다. 잡목이 너무나 많아서인지는 몰라도, 나무를 잘라서 깨끗하게 하는 것이 섬진강을 아름답게 가꾸는 방법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있는 한, 섬진강 강변에서 자생하는 나무는 시한부로 살아가고 있다. 언제 어느 때 예고 없이 잘려져 사라질런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섬진강 주변 잡목들은 서로 협상하고 아우르면서 자란다. 키가 큰나무는 작은 나무를 무시하지 않고 공생하는 방법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서로 보살피면서 더불어 살아간다. 물 한 방울 주지 않고 거름 한 주먹 주지 않는 사람이 나무를 자기 마음대로 잘라도 된다는 말인가? 자기가 키우지 않았다면 함부로 자를 수 없을 것이다.
어느 날 문득 아스팔트가 지겨워 비포장도인 신작로를 거닐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토요일 오후에 천담 마을에서 진뫼 마을까지 걸어가면서 육자배기 한 자락 내질러볼 요량이었다. 천담 마을을 벗어나자마자 아름다운 꿈은 야무지게 깨지고 말았다. 넓혀진 신작로와 섬진강 주변은 깨끗하게 청소가 되어 있었다. 자연 그대로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얼크러지고 설크러진 잡목은 많은 분량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말문이 막혀버렸다. 분통이 터졌다. 육자배기 가락도 도망 가버렸다.
섬진강변 천담 마을에서 구담 마을까지는 아스콘 포장이 깨끗하게 잘 되어 있다. 구담마을에서 싸리재 마을까지 승용차로 이동하다가는 섬진강 한가운데서 엔진이 정지하기라도 한다면 낭패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서투른 운전자들이 섬진강 한가운데서 시동이 꺼져버린 차안에서 당황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는 일이다. 양말과 신발을 벗어들고, 섬진강 맑은 물에 발을 풍덩 담구고, 저벅저벅 걸어서 섬진강을 건너가야만, 자연의 알싸한 깊은 맛을 새록새록 느낄 수 있다. 싸리재 마을을 통과하면 옛날에 이무기가 살았다는 엄청나게 깊은 두무쏘를 우측으로 바라보면서 장구목에 도달한다.
장구목에는 요강바위, 연꽃바위, 자라바위, 서당바위, 취암산의 눈썹바위, 용골산의 삼형제 바위를 빼놓을 수 없다. 배가 출출하고 허기가 요동을 치면 아카시아 꽃 튀김, 냉이 튀김, 돌나물 튀김, 냉이와 달래 무침에 막걸리 한 잔을 쭈욱 들이키면, 세상만사가 모두 내것같은 상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주먹만한 애동 호박을 숭얼숭얼 썰어 넣고, 매운 고추를 손으로 쭉쭉 찢어 넣어서 끓인 푸른 색깔의 장구목 대수리 진국은 별미중의 별미다. 소화기능이 떨어진 분이나, 위장 장애가 있으신 분은 장구목 칡 정유(精油)를 권유하고 싶다.
장구목을 벗어나 섬진강 강변을 따라 구미 마을 쪽으로 걷기 시작하면, 좌측에는 장군이 큰 칼을 짚고 서 있는 장군집검(將軍執劍) 형상으로 위세가 당당하던 것이 칼끝이 부러지고 위세는 꺽어었으나 이제 다시 회운(回運)되고 있는 용골산이 우뚝 솟아 있다. 무량산 아래 금구몰미(金龜沒尾) 형상 720년의 장구한 세월동안 남원 양(楊)씨 양택으로 빛을 발하더니 머지않아 음택으로 변하겠고 안산에 금구진수(金龜進水) 형상이 다시 한번 빛을 발산 할 것이다.
두류봉 동쪽 방향으로 천년 동안 전하여 오는말이 군신봉조(君臣峯朝)가 있다하여 많은 사람이 찾아 들었건만 적선가(積善嘉) 아니고서는 진혈(眞穴)을 찾기 어려웁다. 적선하고 보는 시야를 달리하면 임금님 행차하여 궁중(宮中)에 도착하는 군왕행도(郡王行到) 형상으로, 군왕이 어가(御駕)에서 내리는 곳이어야 하며 어가(御駕), 어마(御馬), 어인(御印), 시종(侍從)에 혈이 있으니 적선하면 진혈이 보이는 도왕(道王) 마을이다. 도왕 마을 왼쪽에는 책을 읽고 있는 선인독서(仙人讀書) 형상(形象)의 취암산이 반겨 준다. 동계면 서호천에서 나오는 호피석과 용골산에서 나오는 오석(烏石)은 전국의 수석 전문가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무량산 계곡이 섬진강과 만나는 지점 “종호(鍾湖)” 한 가운데 구노암(九老巖)의 커다란 바위가 자리잡고 있다. 아홉 분의 남원 양(楊)씨 선비가 마음을 모아 학문을 정진하던 중, 마음이 변하지 말고 죽을 때까지 학문의 높은 뜻을 세우고 이룩하자는 뜻으로 커다란 바위에 조그맣게 각인하고 섬진강 물 한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는 바위에, 비스듬히 “구노암(九老巖)”이라고 조그마하게 각인하였다.
구노암 바위 꼭대기에서 탁주 한말을 부으면 탁주가 흘러내려 빙 둘러 앉아있는 자리에 흘러서 고이도록 하여 한 잔씩 마신 후 시(詩) 한 수 씩을 읊었다고 전한다. 탁주 한 잔에 시(詩) 한 수를 읊었으니 많은 분량의 시(詩)가 전해내려 오고 있다. 구노암(九老巖)에서 섬진강을 건너가 취암산 쪽에서 용골산을 바라보면서 구노암(九老巖) 가까이 있는 커다란 길옆 바위에 물이 닿을 정도로 맨 아래쪽에 “종호(鍾湖)”라고 한문으로 커다랗게 각인되어 있다.
‘섬진강을 따라 걷다가 피곤하시거들랑 섬진강 한 가운데 우뚝 서 있는 구노암(九老巖) 바위에 걸터앉아 탁주 한 말 부어 놓고 “만고강산 유람헐제 삼신산이 어디메뇨, 일봉래 이방장과 삼영주 이 아니냐, 죽장 짚고 풍월실어 봉래산을 구경헐제, 경포동령의 명월을 구경허고, 청간정 낙산사와 총석정을 구경허고, 단발령을 얼핏넘어 봉래산을 올라서니, 천봉만학 부용들은 하늘 위에 솟아있고, 백절폭포 급 한 물은 은하수를 기울인 듯, 잠든 구름 깨우려고 맑은 안개 잠겼으니, 선경일시가 분명쿠나.’
때 마침 모춘이라, 붉은 꽃 푸른 잎과, 나는 나비 우는 새는, 춘광춘색을 자랑헌다. 봉래산 좋은 경치 지척에 던져두고, 못 본지가 몇 날인가, 다행이 오늘날에 만고강산을 유람하여, 섬진강 구노암(九老巖)에 당도하니, 옛일이 새로워라, 어화세상 벗님네야 상전벽해 웃들마소, 엽진화락 없을소냐, 서산에 지는 해는 양류사로 잡아매고, 동령에 걸린 달은 계수야 머물러라, 거드렁 거리고 놀아보세”하고 만고강산 단가(短歌) 한 자락 퍼질러보면 속이 후련해질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