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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4 |
[특집ㆍ아! 섬진강] "세상의 시름 안고 흐르는 이 너른 강물"
관리자(2007-04-13 18:52:55)
[특집ㆍ아! 섬진강] "세상의 시름 안고 흐르는 이 너른 강물"                                        글 | 송민규 화가 ‘별일 한 것 같지도 않은데 그래도 단체의 책임을 맡고 있었다는게 내심 부담을 안고 지냈던 것 같다. 그만두어야 할 직책을 앞두고는 섬진강을 되 집어보고 싶었나보다. 다시 시작하는 기분으로 강의 발원지를 찾아가는 것도 괜찮을 듯해서, 설날 직후 진안 백운 계곡을 찾아갔다. 인적이 드문 길엔 눈이 발목을 묻고, 계곡의 눈 덮인 바위 밑에서는 요란하지도 크지도 않은 경쾌하고 맑게 들려오는 물 흐르는 소리가 신세계를 꿈꾸게 하는 앙상블로도 충분하게 한다. 한참을 눈 쌓인 산길에 발자욱을 남기며 올라가니까 물소리는 차츰 작아지면서 발원지인 ‘데미샘’에 다다랐다. 맑게 고여 있는 샘가에 바가지가 기다리고 있어서 한 모금 시원하게 들이키고는 물에 비치는 내 얼굴을 몇 번이나 바라보곤 한다. 한 방울, 한 방울, 모이고 모인물이 조그만 옹달샘을 이루고, 물줄기를 이루면서 낯설고 어색스럽지만 새롭고 조금은 더 큰 시내를 만들고 아래로 흐른다. 데미샘의 물방울이 모인 강물은 끊임없는 변화를 꾀한다. 반복되는 씻김과 휘감는 물결로 바위는 바스러지고 다짐어지면서 부드러운 곡선을 자아내기도하고, 우뚝 솟은 설치물로 나타나기도 한다. 작업실이 있는 장구목 근처의 바위들은 특히 선이 참 예쁘다. 부드러운 물줄기가 비단결 같은 질감을 남기고 간, 강가의 너럭바위는 오가는 이들의 친근한 휴식처가 되어 주기에 충분한 넉넉함을 가지고 있다. 해질 무렵 농사일을 마치고 늘어진 어깨로 집에 돌아가는 농부가 걸터앉아 이마의 땀과, 삽 끝의 흙을 씻으며 강바람에 온갖 시름을 날려 보내곤 하는 쉼터이다. 때론 도시의 찌든 삶을 벗어난 사람들이 고기를 구워먹기 위해 불을 피워 고운 바위 돌에 시커먼 그을음을 남기기도 하고, 남은 기름과 찌꺼기들을 강물에 흘러들어가게 한 사람들의 흔적이 거슬리지만 강물은 이모든 것을 보듬고 흐른다. 굳이 노인 분들이 아니더라도 내 나이 또래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어릴 적에, 지금은 하류지역에나 서식하고 있는 은어, 재첩조개, 게 등이 시글시글 했다라고 이구동성으로 회상한다. 하기는 지금도 다른데서 보기 드문 물고기가 아직도 살고 있기는 하다. 내 주변에 낚시 마니아는 그 물속을 알고 있어서 가끔 꺽지나 쏘가리를 낚아 올릴 수 있다. 섬진강의 중류로 접어드는 곡성, 구례로 물길 따라 ‘압록’에 다다르면 ‘태안사’쪽에서 흘러나오는 좁지만 물길이 예쁜 샛강, ‘보성강’이 합류하면서 강은 더한층 강으로서의 모양새를 갖추게 된다. 이곳의 바위들은 상류인 ‘장구목’ 일대와는 사뭇 다르다. 규모는 작으면서 나지막하고 고운 것이, 안정감 있고 여유롭게 물위에 떠있다. 나는 이곳 강변도로인 17번 국도를 이용하기 전부터 전라선 열차 여행을 할 때도 이곳을 지날 때면 목이 뒤틀리도록 돌아가며 바라보면서 그 아름다움이 지나치는 것을 아까워했다. 섬진강은 산을 끼고 흐르는 강이다. 그러다보니 10여년을 다녀도 참으로 예기치 못한 자연의 변화를 만날 때가 많다. 나는 그걸 즐긴다. 자연의 웅장함과 화려한 변화를 만나면 감동과 흥분은 물론 경외감을 느낀다. 지금 이 지면에 실린 졸작은 내가 즐겨 찾는 오산에 있는 ‘사성암’에서 내려다보며 그 장관에 취해서 그린 섬진강이다. 나는 저문 강이 주는 고즈넉함과 향수도 좋아하지만, 새벽 강이나 아침나절의 강은 시작하는 새로움과 전진하는 기운이 있어 더욱 좋아한다. 그날도 작업실에서 어스름하니 동트기 전에 서둘러 출발해 산을 올랐다. 높은 곳에 있어야 더 넓게, 더 멀리 볼 것 아닌가! 산꼭대기에 이르러 조금 더 높은 바위에 올라서려고 발을 내딛으니 주지승의 당부 말씀이 눈에 띈다. ‘위험하니 올라가지 말라’는 경고성 문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치를 살핀 후에 올라가 스케치 한 것이다. 그때 그 느낌을 어찌 다 표현이 가능하겠는가, 그냥 시늉이라도 되었으면… 하류에 이르는 하동까지 내려오면 강폭은 더욱 넓어지고 지리산과 백운산의 맑은 계곡물이 함께 어우러져서 흐른다. 이제는 바위, 돌멩이 보다는 백사장과 그를 감싸주는 대숲이 80리 물길을 따라 간다. 다압에서 간전쪽으로 가다보면 몽글고 뽀얗게 펼쳐진 모래알이 몸을 날려 데굴데굴 굴려보고 싶은 충동을 일게 한다. 80년 가을 날, 시인 ‘신동엽’과 금강을 찾아 마냥 취해서 백사장을 걷고 걷다가 누군가를 만났다. 나의 아내이다. 지금은 사라져간 금강 상류 백사장, 그때 그 백사장은 한 여인이 있었기에 물론 좋았지만 어찌 섬진의 백사장과 비교가 될 것인가! 강가를 지나다닐 적에는 습관처럼 이곳을 찾아 잠시 머물다 온다. 모래알 속에 손등을 묻어보기도 하고 발로 툭툭 차보기도 한다. 장구목의 집 채 만한 너럭바위가 강토를 굴러굴러 몽근 모래밭으로 만들어 진 이곳, 데미샘의 한 방울 한 방울의 물이 모이고 모여서 너른 강물이 된 이곳에 서서, 한 알의 모래가 되어보고 한 방울의 물이 되어본다. 송만규/ 한국화가. 1988년 민족민중미술운동전국연합(민미련)을 창립, 공동의장을 지냈고, 전북민예총 회장으로도 활동했다. 현재는 전북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에 거처 겸 작업실을 갖고 섬진강의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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