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4 |
[오래된 가게] '밤새 밀가루 반죽이 익어가는 집'
관리자(2007-04-13 18:30:19)
[오래된 가게]
밤새 밀가루 반죽이 익어가는 집 - 전주시 경원동 '백일홍 찐빵' 글 | 최정학 기자
오후 3시. ‘백일홍 빵집’ 안을 들어서자 맛있는 냄새가 코끝에 스며든다. 맨 구석에 환히 들여다보이는 주방안 두 개의 양은솥에서는 쉴 새 없이 ‘맛있는 증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만두와 찐빵을 빚는 주인 장선기 씨와 신동순 씨의 손놀림도 바쁘다. 만두와 찐빵은 익어 꺼내기가 무섭게 포장이 되어 배달되거나 손님의 손에 들려지고, 막 빚은 것들이 다시 솥으로 들어간다. 가게를 찾는 손님의 발걸음도 끊이지 않는다. 점심 먹은 배가 서서히 출출해 지는 이 때가 가장 바쁜 시간이다.
‘백일홍’의 역사는 70여 년. 그 사이 가게의 주인도 한번 바뀌었다. 원래 ‘백일홍’의 주인은 정창영 씨였다. 현재 ‘백일홍’을 운영하고 있는 장선기 씨에겐 친구의 아버지가 되던 분이었다. 정창영 씨가 10여 년 전 고인이 되면서, 장선기 씨는 태평동에 있던 가게를 경원동으로 옮겨 대를 이어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70여 년을 이어오면서도 이곳은 찐빵과 만두만을 전문적으로 해왔다. 찐빵과 만두 모두 여덟 개 1인분에 2천5백 원. 그런데 찐빵과 만두의 경계가 애매모호하다. 찐빵은 만두만큼 작고, 또 만두의 피는 보통의 것보다 두껍다. 반죽을 숙성시켜 사용하기 때문이다.
“보통 장사는 4시에서 4시 반이면 끝나지만, 집에 들어가는 시간은 아홉시가 넘습니다. 다음날 쓸 반죽을 미리 만들어놔야 하기 때문이죠. 이 일을 18년간 했지만, 지금도 반죽 만들기가 쉽지 않아요. 이 녀석이 추우면 춥다고 그러고, 또 더우면 덥다고 그래요. 저녁에 만들어놓고 하루 동안 숙성 시켜야 쓸 수 있어요. 그것도 딱 하루만 쓸 수 있죠. 그 이상 기간이 넘어가면 쓸 수 없어요.”
그래서 ‘백일홍’이 끝나는 시간은 반죽이 다 떨어지는 시간이다. 주문이 쏟아지고, 손님들이 밀려와도 어쩔 수 없다. 즉석에서 반죽을 만들어서는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도 대를 이어온 손님들이 많다. 아버지가 사다주신 이 가게의 찐빵과 만두를 먹고 자란 아이가 이제는 아버지가 되어 그 자식들에게 사다준다. 하지만, 단순히 가게가 오래되었다고만 해서 대를 이어 사람들이 찾아 올리는 없다. 손님들을 사로잡는 맛과 음식의 질에 대한 신용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부추, 당근, 돼지고기 등은 그날그날 구입해서 사용하고, 무는 겨울에 대량구매 해놨다가 그때그때 쓸 만큼 꺼내 씁니다. 팥도 중국산보다 3배 비싸긴 하지만, 꼭 국산을 쓰고요.”
재료준비에서 만들기 까지 모두 부부가 직접 한다. 대형마트나 백화점에서 납품을 제의했을 때에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부부가 직접 하기에는 물량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아예 포기해버린 것이다. 몇 해 전 만두파동이 일어났을 때 오히려 ‘백일홍’의 매출액이 늘어났던 것도 이 부부가 그동안 쌓아놓은 정직과 신용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하루 이틀 한 것도 아니고 오랜 세월하다 보니, 손님들이 믿어주는 것 같습니다. 우리도 이 믿음에 보답하려고 더 노력하는 것 같구요.”
양은솥의 증기가 거세어지는가 싶더니, 뚜껑이 열렸다. 증기 사이로 이제 곧 누군가의 식탁위에 올라 단란한 시간을 만들어줄 만두가 옹기종기 모여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