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4 |
[이종민의 음악편지] '그대, 지울 수 없어라'
관리자(2007-04-13 18:27:17)
[이종민의 음악편지] '그대, 지울 수 없어라' 글 | 최정학 기자
“단원들 수당요? 꿈같은 이야기지요. 단원들이 아무런 부담없이 작품에만 전념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겁니다.”(1995년 전북일보 기사 중 인용)
스물두 해 동안 열정 하나로 척박한 지역의 춤판을 묵묵히 일궈온 사포 신용숙 대표가 지난 3월 15일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심장마비였다. 이십년 넘게 한 길을 걸어온 지역의 역량있는 예술가를 잃었다는 슬픔보다, 충격이 더 컸다.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고 신용숙 대표가 춤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81년, 원광대학교 사범대학 무용교육과를 입학하면서부터다. 졸업하던 1985년에는 동대학원에 입학했다. 그리고 그 해 생겨난 ‘전북가림다현대무용’(1995년 ‘사포’로 명칭 변경)의 창단멤버로 들어가면서, ‘사포’는 그가 세상을 떠나던 그날까지 그의 전부였다.
하지만, 스물두 해 동안 척박한 여건 속을 헤쳐 나가기란 그리 쉽지 않았다. 조명 부를 처지가 못 되어 자동차 전조등을 켜놓고 공연을 하는가 하면, 변산 해수욕장에서는 모래사장에 새끼줄로 무대를 만들어 공연하기도 했다. ‘사포’에 고정적 수입이란 단원들의 회비가 전부였다. 여기에 초청공연 등을 통해 받은 개런티를 꼬박꼬박 모아 공연예산으로 활용했다. 이것만으론 웬만한 작품 한편 올리기에도 버거웠다. 이십 년 넘게 ‘사포’를 유지해 온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었다. 이것을 가능케 했던 것은 춤에 대한 열정 하나였다.
어려운 여건을 이겨내면서도 ‘사포’는 해마다 새로운 공연을 무대 위에 올리면서, 지역 현대무용의 토대를 쌓았다. 단체의 역량이 쌓이면서 서울, 인천, 대구, 부산, 대구, 광주 등 웬만한 대도시의 공연 무대에서도 이들은 빛을 발해, 한국춤판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단체 중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사포’는 지난했던 역사와 그 앞에서 상처받을 수밖에 없었던 민중을 무대 위로 다시 불러내 그들의 영령을 달래고 위로하는 작품들도 꾸준히 무대에 올렸다. 고 신용숙 대표는 그것을 일종의 ‘숙제’처럼 여겼다. 1995년부터 1998년까지 광주민중항쟁을 3부작으로 다룬 ‘그해 오월’을 올렸고, 지난 2005년 사포 창단 20주년 기념공연 때에는 ‘다시보는 동학이야기’를 통해 녹두장군 전봉준과 동학의 영령들을 불러내 위로했다.
스물두 해 ‘사포’가 만들어온 역사의 한가운데에는 언제나 고 신용숙 대표가 있었다.
그의 마지막 작업은 지난 해 11월 11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연지홀에서 열린 사포 제21회 정기공연 ‘추억, 아름다운 기억’의 안무였다. 그는 ‘추억, 아름다운 기억’에 그동안 ‘사포’ 활동을 하며 묻어 두었던 수많은 추억과 아름다운 기억들, 그리고 ‘사포’에서 만나고 헤어졌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지나온 날들을 정리하는 이 공연을 끝으로 그는 거짓말처럼 세상을 떠났다.
고 신용숙 대표는 김화숙 원광대 무용과 교수와 일본의 오리따 가츠꼬에게 사사받고, 다섯 번의 개인공연을 거치는 동안 제7회 전국무용제 ‘우수상’과 ‘연기상’, 평론가가 뽑은 제1회 젊은 안무가 선정 등 실력 있는 안무가와 연기자로서 인정받아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