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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4 |
[문화시평] '어디에서 보아도 나는 모악이다' 전을 보고
관리자(2007-04-13 18:19:08)
[문화시평] '어디에서 보아도 나는 모악이다' 전을 보고 신시의 고봉밥을 예수가 먹고  소멸과 생성을 말하노니           글 | 김저운 『소설가』 간혹 미술관을 가볍게 서성이긴 했어도 그날은 걸음이 무거웠다. 이번 전시에 대한 리뷰를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던 것이다. ‘어디에서 보아도 나는 모악이다’? 모악산을 주제로 한 전시인가? 미술관을 향해 갈 때까지도 감이 오지 않았다. 전북도립미술관은, 2월 16일부터 5월 6일까지 3차로 나누어 지역 출신 혹은 지역에서 활동하는 11인 작가의 작품을 전시한다. 내가 관람하러 갔을 때는, 이철량, 강용면, 김병종, 김호석으로 구성된 1차 전시가 끝나고 있을 즈음이었다. 이런 저런 일들에 얼굴도 내밀고 글도 써봤지만, 미술 전시에 대한 글은 써낼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최효준 관장님을 만나 도움을 받게 해 주겠다는 말에 덜컥 승낙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나같이 미술에 대해선 문외한인 사람에게 원고청탁을 하는 문화저널의 의도를 이해할 것도 같았다. 전문가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은 어떤 시각으로 보는지 그걸 원하고 있음이리라. 그렇게 봄기운이 문턱에 이른 토요일, 미술관을 찾았다. 아늑하고, 아득하고, 아스라한 세상이 거기 있었다. 저만치 떨어져서 보면 그 형체를 가늠할 수 없는, 무슨 점 같기도 하고 문자 같기도 한 것들이 거기 모여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까 사람의 형상이다. 누워 있고 엎드려 있고 춤을 추거나 태아처럼 몸을 구부리거나, 혹은 ‘만세’하고 날아오를 것만 같은 사람, 사람들?…. 나는 이철량의 그림 앞에서 고은 시인의 <만인보(萬人普)>를 떠올렸다. 거기에 할아버지와 머슴 대길이가 있었다. 소도둑으로 형무소에 끌려온 선득이가, ‘반강제로 여맹간부 노릇’하다가 그 죄목으로 ‘이 사내 저 사내 치안대한테 욕보고 나서 혓바닥 깨물고’ 죽어버린 임영자가 있었다. 고통스러웠다. 헌데, 왜 작가는 왜 이 그림에 <신시(神市)>라 이름 붙였을까? 눈을 감았다 다시 보니 또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다. 환희 같은 게 밀려왔다. 그들은, 밀집된 공간에 빽빽이 들어차 있어 다닥다닥 붙어 있었으나, 누구도 가려져 있거나 짓밟혀 있지 않았다. 소란스럽지도 않고 자유로워 보였다. 그 세상 속에는 새와 나비와 꽃 물고기 같은 것들도 어우러져 있었다. 생명체들이었다. 사람과 동물과 식물 같은 무수한 생명체들이 꿈틀대며 살아 숨쉬는 곳, 평화와 자유가 넘치는 곳, 그곳이 바로 이 화가가 꿈꾸는 세상이었던가? 기록에만 있을 뿐 어느 곳이라고 비정(比‘定)하기 어려운 신시! 그곳은 우리의 마음과 이상 속에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술관에 들어서면서부터 나는 강용면의 <얼굴>에 압도되었다. 긴 목각 끝에 사람 얼굴을 조각한 설치작품이었다. 500명의 얼굴이라고 최효준 관장이 설명해 주었다. 큰 틀 안에 들쑥날쑥 빽빽이 밀집돼 있는 제각기 다른 형상과 표정은 서로 비슷비슷하면서도 제각기 달랐다. 현대인의 군상(群像)이라고나 할까. 얼마 전 갤러리 ‘공유’에서 그의 독특한 작품을 대하고  놀란 적이 있다. 조각에 대한 나의 무지를 일깨운 작가였다. 최근 그가 쓰는 소재는 독특하다. 아크릴판을 녹여 말랑말랑한 상태-대리석을 이용하여 조각하는 첫 단계처럼-에서 형태를 잡는다. 그리고 황동 뼈대에 붙이고, 그 안에 장식된 엘리디를 활용하여 빛을 뿜어내는 것이다. 소재를 찾고 구성하는 계획단계가 치밀해야 하고, 작업과정에서도 빠른 시간 안에 형성해야 하니까 대단한 조형감각과 순발력이 요구되는 작업이라 할 수 있겠다. 작가들이야 무엇이든 가져다 쓰면 작품이 될 터이지만, 이런 기법은 아주 획기적인 것 같다. 뉴욕에서 보여 줘도 놀라는 작업이라고 최 관장이 덧붙인다. 아주 현대적인 데다 영구 설치도 가능하다고 한다. 규모 면에서도 놀라웠다. 전시관 천정까지의 높이가 7미터인데, 탑이며 불상이 거의 천정에 닿을 정도이다. 전시관 하나를 세 개의 작품으로 이루어놓은 공간감도 이채로웠다. 무엇보다도, 그의 요즘 작업들이 담고 있는 의미가 깊다. 형태는 있으나 속이 텅 빈, 파편에 의해 이미지를 바꾸는 작업은 정체성 없는 현대인의 모습을 대변하는 게 아닌가 싶다. 강용면의 작품은 다른 전시관에서도 만날 수 있었다. 그의 일관된 주제인 <온고이지신>은 오방색으로 물들인 목각에 말, 개, 닭, 새, 돼지 들을 새겨 놓았는데, 마치 민화를 보는 것 같았다. <고봉밥>은 놋그릇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밥그릇에 노란 종이꽃을 수북이 담아놓았다. 밥그릇에 담긴 상여꽃이라…. 삶과 죽음, 생성과 소멸이 공존한다는 메시지가 거기 담겨 있다. 미술인들이 쓴 글에 매료된 적이 있었다. <예술가로 산다는 것>의 저자 박영택, <인생이 그림 같다>의 손철주, 그리고 저 유명한 <화첩기행>의 김병종…. 그들이 쓴 글에는 미술을 보는 안목과 함께 예술이며 삶에 대한 진지한 물음이 담겨 있었다. 이렇게 만난 김병종의 그림 앞에 섰을 때는 자못 설레기까지 했다. 지금까지 서양 미술은, 예수 성모마리아 성도 순교자 등이 주된 아이콘이었다. 그런데 그의 예수 연작은 서양미술에서 보는 종교화와 사뭇 달랐다. <바보 예수>, <거지 예수>…. 그의 예수는 바보요 거지다. 인간적 고뇌로 가득 찬 사람이다. 작가는, 서양적 테마로 고착된 통념을 동양적 선과 색채로 새롭게 읽어 주었다. “그의 피는 물이 아니다.”, “그의 눈물은 물이 아니다.” 작가가 그림 한 켠에 새긴 글귀이다. 정말이지 예수의 못 박힌 손바닥 발바닥에 그려진 붉은 꽃들은 그냥 그림이 아니었다. 내 몸속으로도 핏물처럼 번지고 스며들었다. 한국화가로 김호석만큼 인물 데생을 많이 한 사람은 없을 것이란다. 누구보다도 초상화에 전념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민중미술가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 앞에 서면 그림 속의 인물과 실제로 마주하고 있는 듯 전율이 스치곤 했다. <날 수 없는 새>의 정수리를 적신 붉은 피, <황희> 정승의 붉은 눈은 80년대의 암울한 상황을 풍자한 것이다. 이전의 <조선 여인의 증언>, <무장투쟁기>, <민주운동사>를 다시금 떠올리게 했다. 그런가하면, 가족을 중심으로 한 보통 사람들의 모습은 아무 근심 없이 한순간 웃음을 터뜨리게 했다. 아무래도 가족은, 시대며 역사가 준 상처를 서로 위무할 수 있는 존재인가 보다. 유라시아 암각화에 대해 연구하던 그가 몽골 대륙을 여행하며 그린 <거인의 잠>, <문명의 활을 겨루다>, <야생의 기억> 등은, 생성과 소멸 그리고 문명에 대한 그의 사상이 짙게 배어 있었다. 그는 재앙을 재앙으로 보지 않는다. 수난의 과정으로 본다. 죽은 짐승에게서 새 생명을 보기도 한다. 소멸 후에 오는 생성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발길이 머문 작은 전시관에서 나는 한동안 얼어붙는 듯했다. 성철 스님의 초상화 앞에서였다. 배경과 옷은 온통 먹물로 칠해져 있는데, 얼굴만 발광체처럼 빛나고 있었으니…. 특히 그 눈! 여백인 동공에서 형형한 안광이 뿜어져 나오는 듯했다. 스페인을 여행했을 때, 똘레도에서 엘 그레꼬의 그림을 보고 전율을 느낀 적이 있다. 눈물을 그렁그렁 담고 있는 베드로의 눈에서 금방이라도 눈물이 뚝~ 떨어질 것만 같았다. 그 생생한 묘사에 압도되었던 것인데, 이번에도 그랬다. 동서고금을 떠나서 작가의 강렬한 정신은 이렇게 독자의 가슴을 관통할 수 있다는 걸 다시금 느꼈다. 최 관장님의 설명에 따르면 ‘굉장히 사실적이면서 사실적이지 않은’ 그림이라고 한다. 단순한 선과 농담(濃淡) 없는 색채 처리에, 윗부분을 과감히 남겨놓은 배치가 남다르다는 것이다. 성철 스님의 뒷모습을 그린 작품 또한 관람자의 시선이 오래 머물게 했다. 단순한 굵은 선, 먼 하늘을 바라보는 뒷모습은 바로 구도자의 모습이었다.   이번 전시에 참가한 작가들은, 약간은 모호한 이 타이틀만큼이나 표현 방식이나 소재에서 서로 다르다. 그러나, 몇 가지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자연과 인간의 상생에 대한 형상화라는 것. 자신의 작업 스타일을 일관되게 지켜오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 지역의 정서와 기운이 양분이 되어 배출된 작가라는 점이다. 물론 이런 작가들이 수없이 많다. 그들 또한  각자 외롭게 작업을 해내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는 외롭게, 숨어서 작업하는 작가들을 발굴하여 밝은 햇빛 아래 드러내 보이는 기획도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제 산수유도 매화도 꽃잎 다 지고 꽃자리에 열매가 맺히고 있다. 바람 불고 꽃잎 분분한 날, 다시 모악산 아래 미술관으로 가 봐야겠다. 김저운/ 소설가. 전북작가회의 회원. 현재 김제여자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으며, 저서로는 <그대에게 가는 길엔 언제나 바람이 불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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