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3 |
[특집 · 마을만들기] 공동체 복원 향한 아름다운 실천, 마을만들기
관리자(2007-03-14 13:19:50)
‘마을만들기’에 대한 관심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급속한 근대화의 과정 속에서 마을이 갖는 공동체 의식은 이미 파괴 되고, 껍데기만 남은 지 오래입니다. ‘마을만들기’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풀뿌리 마을공동체를 복원하고, 경제적으로도 잘 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한 시도입니다.
때마침, 행정에서도 이런 흐름에 부합하는 사업들을 하나 둘 펼쳐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지방자치제도가 실시되고 주민자치 역량이 조금씩 성숙되면서, 주민주도형 마을가꾸기 사업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주민주도형 마을가꾸기 사업은 주민들이 스스로 지역의 실정에 맞는 사업계획을 수립하고 관에서 이를 지원하는 상향식 사업입니다.
이번 호 특집에서는 우리지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마을가꾸기 사업’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김은희 도시연대 사무국장과 임경수 주식회사 이장 대표가 말하는 ‘마을만들기’ 성공을 위한 조건도 의미있게 들려옵니다. 행정자치부 살기좋은 지역기획팀의 김상광 사무관은 올해부터 정부가 실행하고 있는 ‘살기좋은 지역만들기’ 사업에 대해 들려줍니다.
‘마을만들기’는 이웃만들기
김은희 | 걷고싶은 도시만들기 시민연대 사무국장
● 1990년대부터 시민단체들에 의해서 추진되어왔던 ‘주민참여 마을만들기’가 공론화되고 있다. 자치단체들은 2000년도부터 본격적으로 시민단체 또는 주민조직과 결합하여 다양한 형태의 마을만들기 사업을 지원해 왔으며, 2007년 현재, 행자부와 건교부 역시 ‘살기좋은 또는 살고싶은’이라는 타이틀의 주민참여 사업을 실행하고 있다.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주민참여 마을 만들기’에 대한 문제제기도 나타나고 있다. 운동인지 유희인지, 아니면 새로운 담론인지에 대한 것들이다. 이는 마을만들기라는 활동들이 우리사회가 갖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들을 비켜가면서 다양한 사회현상 및 문제점들을 단순화시키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에서부터 시작된다.
일례로 ‘공동체를 만들자’라는 기치를 내걸고 주민참여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바로 옆 동네에서 벌어지고 있는 무차별적인 재개발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는 모습이다. 자본의 논리에 의해서 공동체가 깨져나가고 있는 것에는 무관심하면서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행위는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마을만들기 활동이 가져온 긍정적 요소는 분명하다. 그러나 이제 마을만들기 활동이 갖고 있는 한계는 무엇인지에 대한 냉정한 평가도 절실하다.
도시에서의 마을만들기 활동들
도시는 수많은 사람들이 밀집하여 살고 있는 곳이다. 집단적 거주는 결국 그 집단이 함께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는 문제들을 발생시킨다. 94년부터 걷고싶은 도시만들기 시민연대(이하 도시연대)가 주민참여 마을만들기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역시 ‘공동의 문제를 해결해 나갈 주체가 주민’이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앞 도로에서 1년에 10여 차례 교통사고가 발생하고 있었지만 횡단보도 설치 불가라는 반복적인 행정의 답변으로 지쳐버린 몇몇 학부모들은 도시연대와 만나면서 동네 전체 문제로 공론화시켰다. 10여명의 어머니들이 주도하면서 1주일 만에 2천명의 서명을 받아내고, 학교와 함께 주민모임을 구성하는 등 6개월간의 질긴 활동 끝에 행정으로부터 ‘이젠 다 들어줄테니 제발 그만해달라’라는 답변을 듣는다. 이를 계기로 ‘어린이에게 안전한 마을 만들기’ 활동이 본격화되었다.
자신의 생활공간을 가꾸려는 노력도 나타난다. 동대문구 용두동의 작은 골목길에는 꽃을 좋아하는 한 주민의 내집 앞 화분 내 놓기가 계기가 되어 주민공동체가 만들어진다. 85년부터 시작했던 일인데, 하나 둘 옆집 앞집 주민들도 함께 하면서 지금은 장미터널까지 만들어냈다. 누가 리더라고 할 것도 없이 봄이 되면 다들 골목에 나와 화초를 가꾸고 여름에는 돗자리를 깔고 국수를 나눠 먹는다. 누군가 새로 이사를 오면 자연스럽게 행위가 연결된다. 삭막한 도시에서 녹색의 푸르름을 집앞으로 끌어들이겠다는 ‘골목가꾸기 활동’은 수많은 지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주민 스스로가 방치된 공간을 바꿔버리는 적극적인 활동도 본격화되고 있다. 2002년부터 시작된 도시연대의 ‘주민참여 한평공원 만들기’사업이 그 예이다. 무너져버린 방범초소, 가파른 계단, 쓰레기 투기 지역 등 생활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방치된 공간을 주민과 전문가가 함께 협력하여 진단하고 설계안을 만들고, 함께 시공까지 진행한다. 2006년도에 진행된 ‘서울시립대 사회복지관 앞 한평공원 만들기’는 복지관 어린이 및 어른들이 두 차례의 바자회를 열어 한평공원 조성 기금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창동 노인복지회관 한평공원은 매년 한번씩 한평공원 조성지에서 사진전도 진행한다. 노인들 스스로가 모임을 만들어 한평공원을 관리하고 있다.
생협을 중심으로 하는 동네 공동체 활동도 활발하다. 마포두레생협은 ‘성미산 살리기’, ‘마포라디오 방송국 운영’, ‘유기농 반찬가게 운영’, ‘대안학교 - 성미산 학교 운영’, ‘공동출자한 카센터-차병원 운영’ 등 매우 다양한 활동을 10여년 넘게 지속시키고 있다.
임대아파트를 중심으로 하는 ‘임대 분양 갈등해소를 위한 커뮤니티 장소 만들기’ 활동은 주인의식 없이 방황하던 임대아파트 주민들을 주인으로 만들어낸 사례이기도 하다. 임대와 분양 아이들이 함께 동네를 진단하고, 그 결과에 대해 임대와 분양 주민들이 함께 고민하고 공유하는 과정을 가지면서 ‘서로 친하지는 않지만, 이웃으로는 인정하는’ 모습을 조금씩 보여주고 있다. 그 외에도 아파트 단지 내 문화공간 만들기, 보행공간 만들기, 재래시장 살리기, 마을만들기 대학 등 다양한 형태의 마을만들기 사례들이 지속되고 있다.
마을만들기 운동의 과제
마을만들기 활동들로 인한 긍정적인 요소들은 분명 많지만 한편 수많은 마을만들기 사례들의 한계는 무엇인지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물리적 환경 변화라는 활동들은 ‘보이지 않는 관계의 소통’보다 ‘보이는 현상의 개선’에만 치중하여 타당성에 대한 객관적 검토도 없이 결국 동네마다 경쟁적으로 더 좋은 시설물 설치라는 폐해도 낳고 있다. 우리 동네를 진단하고 개선방향을 찾는 과정을 통하여 마을만들기 리더를 만들어낸다는 다양한 형태의 강의프로그램은 동네의 물리적 현상만을 바라보게 할 뿐, 그 내부에 얽혀있는 수많은 생활문화와 시간의 켜를 놓치는 우를 범하고 있다. 주민참여의 필요성에 대해서 열변을 토하지만, 주민참여와 주민의견수렴조차도 구별하지 못하고 있다. 주민참여는 주민만의 힘이 아닌, 행정과 전문가 등 다양한 주체와의 긴밀한 네트워크가 형성되어야 하지만 아직도 대립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끊임없이 뭔가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속에서 프로그램의 과잉이 속출하고 있으며, 결국 동네 리더들이 지쳐서 하나 둘씩 떠나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다양한 한계들이 보이고 있는데 그 가운데 몇 가지 과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우선, 마을만들기 운동과 인문학이 결합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궁극적으로 마을만들기는 ‘자신의 생활공간에 대해 바라보고 주체적으로 고민하고 해결해 나가려는 사람만들기’이다. 그렇기 때문에 물리적 환경변화 등은 수단일 뿐이지 목적은 아니다. 마을만들기 활동 속에서 주민들은 이웃과의 관계와 자신에 대한 성찰과 소통을 고민하게 된다. 서울의 한 임대아파트 단지에서 20여명의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인문학 대학 프로그램’은 역사와 철학, 문학, 예술을 기본으로 매우 2차례씩 6개월간 진행된 교육프로그램이다. 이 강좌를 통하여 20명의 주민들은 폐쇄된 자신의 삶을 펼쳐놓고, 이웃을 배려하고, 삶의 주체로서의 자각을 시작하게 되었다. 사례들을 쫓아 다니는 교육이 아니라 자신을 성찰하고 타인과 소통하는 관계에 대한 인식은 바로 인문학과 결합을 통해서 풍부해 질 수 있다. 교육의 중요성을 이야기하지만 교육이라는 것은 몇 가지 사례를 중심으로 ‘우리도 할 수 있다’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이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기 위함이다.
또 하나는 마을만들기 운동이 계층을 뛰어 넘을 수 있는가라는 문제이다.
수많은 동네의 사례들 대부분은 ‘중산층 중심’이다. 저소득층이나 외국인 노동자 등 다른 계층과의 협력이나 연계는 거의 없다. 마을만들기는 지역과 계층을 뛰어넘는 과정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고립된 섬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집단간의 교류’가 중심이 되면서 폐쇄성을 낳고 있다. 다른 생각과 다른 경제적 조건을 가진 사람들과 어떻게 함께 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찾아나가는 과정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마을만들기는 ‘우리끼리만의 공동체’를 벗어날 수 없다. 다름은 아름답고, 다른 조건인 사람들을 이웃으로 받아들인다는 것, 그것이 바로 마을만들기가 추구하는 가치이다.
마지막으로 보여지는 행위의 급급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유행하고 있는 ‘외부공간 변화’는 그 지역의 근본적인 문제와 결합되지 못하면서 ‘무늬만 공공미술’로 변질되고 있다. 저소득층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외부 환경의 변화’는 그것이 그 지역의 빈민문제와 어떻게 연결되며,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어떤 작용을 해야 하는지 고민은 부재하다. 그래서 혹자는 ‘무늬만 주민참여인 유희’라고 혹평하기도 한다.
마을만들기 활동이 우리사회에 미친 영향은 매우 긍정적이다. 그러나 마을만들기 활동들이 지속되고 우리 사회의 변화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이제 좀더 객관적인 시각 속에서 근본적인 문제들을 되짚어봐야 한다. 우리가 마을만들기 운동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끊임없는 질문이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