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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3 |
[특집 · 마을만들기] “20세기의 잃어버린 보물을 다시 찾는 과정”
관리자(2007-03-14 12:01:53)
<구자인 박사에게 들어 본 진안군 으뜸마을가꾸기> “20세기의 잃어버린 보물을 다시 찾는 과정” 최정학기자 구자인 박사는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을 졸업하고 서울시정개발연구원과 한국도시연구소에서 도시환경문제와 마을만들기 활동을 하다가, 1998년부터 일본에서 농촌마을만들기에 대해 연구해 ‘농촌마을 개발과 내발적 발전론’으로 농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004년 12월 귀국한 그는, 현재 진안군에 자리를 잡고 진안군청 으뜸마을가꾸기사업 팀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마을만들기'라는 개념을 소개한 사람 중 하나로, 진안군이 의욕 있게 추진하고 있는 각종 마을가꾸기 사업의 핵심 인력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그를 만나보았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 마을은 있지만 그것은 껍데기일 뿐, 진정한 의미의 마을은 거의 파괴되었습니다. 예전엔 빨래터에서 우물가에서, 또 공동작업을 하면서 서로 의사소통을 해왔고, 또 거기서 마을의 질서나 시스템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농업의 기계화 등으로 거의 혼자 일하게 되면서 의사소통의 시스템 자체가 사라져버렸죠. 겉모습의 ‘마을’은 존재하되, 살아 움직이는 ‘마을’은 거의 없고, 마을 공동체성에 대한 인식 자체도 희박해져 버렸습니다.” 구자인 박사는 ‘마을만들기’란 결국 파괴되어 버린 마을의 공동체적 실체와 의식을 복원해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것은 마을 주민들이 스스로 자기 역사를 재발견하고 현대적으로 재복원하고자 주도적으로 나설 때만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의 말을 빌자면, ‘내발적 발전론’ 방식만이 유일한 희망이라는 것이다. 처음 그가 관심을 가졌던 것은 풀뿌리 지역의 환경과 생태 분야였다. 개발 현장의 파괴되어가는 자연환경과 주민 공동체가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고 한다. 문제는 이것을 어떻게 해결해 이뤄나갈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만난 것이 지역주민환경운동과 풀뿌리 주민자치였다. “제가 학부시절부터 원진 레이온 사건이나 소각장, 매립지, 골프장 문제가 전국적으로 빈번해지고 낙동강 페놀 사건 같은 굵직굵직한 환경관련 사건들이 생기면서 지역환경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정작 주민들은 지역의 장래 비전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고 환경단체들은 사안별로 이 사건들의 이슈화를 통해 해서 정치쟁점화 하여 문제 자체의 해결에만 더 관심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런 방식으로는 문제가 되는 사안 자체를 해결하더라도 풀뿌리 지역사회는 해체되어 결코 현장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환경문제도 결국 지역주민들이 지역의 미래에 책임성을 가지고 스스로 주체로서 나섰을 때에만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거죠. 결국 ‘뿌리가 있는 운동’이 아니면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을 졸업한 후, 한국도시연구소에서 근무할 때 그의 생각은 더욱 굳어졌다. 당시 그가 서울 광진구에서 생태자치구 프로젝트를 추진할 때였다. 환경문제가 심각한 대도시에서 생태적이고 지속가능한 지역사회의 가능성을 검토하고 대안을 모색하자는 취지였다. 그는 일본책들을 통해 ‘마찌 쯔꾸리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다. 우리말로 ’마을만들기‘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 이 말은 당시 우리나라에는 생소한 개념이었지만, 이미 일본에서는 명확한 개념이 정립되어 있을 정도로 활발하게 쓰이고 있는 용어였다. 그는 생태자치구 프로젝트에 ’마을만들기‘의 원리를 적용했다. “한계를 많이 느꼈었죠. 무엇보다 ‘도시’라는 공간적 특성 때문에 힘들었습니다. 도시 사람들은 뜨내기가 많아요. 10년이 지나면 주민들이 완전히 바뀔 정도로 이동이 많습니다. 그러니 마을에 대한 애착이 있을 리가 없죠. 심지어는 활동가들조차도 그 지역 주민이 아닌 경우가 다반사였습니다. 아무리 활동을 해도 역량이 지역사회에 축적 되질 않더라구요. 주민들이 요구하는 것은 많은데, 놀이터 하나를 손보려고 해도 함께 일을 해볼 ‘주민’이 없었어요.” 그는 도시에서 주민자치를 통해 마을을 가꾼다는 것이 근본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고 인식했다. 그래서 공동체적 지역사회의 원형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농촌 마을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마을이라는 것이 뭔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마을인데, 왜 모여 살아야만 하는 필연성이 있는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등 마을에 대한 아주 근본적인 질문들을 안고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마을만들기란 것이 일본에서는 도시계획 방법론의 하나로 이미 행정용어가 될 정도로 정착되어 있었을 정도입니다. 일본의 경우 ‘마을만들기’ 방법론이 도입되기 이전에 이미 주민자치운동의 기반이 있었습니다. 패전된 직후부터 지방자치제도가 비교적 철저하게 시행되어 개인의 권리와 사생활이 철저하게 보장되어 있었습니다. 국가에서 도로를 낸다고 해도, 개인이 땅을 안 팔면 도로가 좁아지거나 휘어져 돌아갑니다. 그래서 도시계획을 진행할 때, 행정과 주민이 만나 행정은 사업의 필요성을 설득하고, 주민은 자신들이 평생 살아가야 할 마을의 미래를 생각하여 여러 가지 사업의 절차와 방법 등을 요구합니다. 한 가지 사업이 시작되면 보통 수십 차례나 토론하고서야 합의에 도달합니다. 처음에는 사업 추진이 지지부진하게 보이지만 결과적으로는 행정도 주민도 만족합니다. 주민이 스스로의 필요성으로 제안한 사업들이 다수 반영되다보니 사후관리도 주민참여 속에 원활하게 이루어지죠. 이런 시스템이 뿌리내려서 이제는 조그만 마을 작은 공원 하나를 만들 때조차도 처음부터 끝까지 주민들이 함께 참여하는 단계까지 와있습니다.” 그는 일본의 산촌마을에 들어가, 마을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마을 만들기가 왜 중요한지에 대한 궁금증들을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또 한국 농촌마을이 앞으로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도 원론부터 되짚어 고민하였다. 그렇게 6년 반이란 시간이 흐르고, 귀국한 그는 전혀 연고가 없는 진안에 정착했다. 진안군은 이미 2001년부터 전국 최초로 주민 주도의 상향식 마을개발사업이라고 할 수 있는 으뜸마을가꾸기 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던 것이다. 주민들이 마을회의를 통해서 마을에 꼭 필요하고 우선적으로 필요한 사업을 발굴하고 토론하여 합의를 통해 결정하면 군행정이 이를 예산과 제도로 지원하는 방식의 사업이다. 구자인 박사는 2004년 말12월부터 이 사업을 전담하는 전임계약직 공무원으로 채용되어 활동하고 있다. “마을만들기는 결국 주민들이 나서서 해야 하는 것이지만 사실 이것이 어렵습니다. 지난 1백년간 마을구조가 파괴되어 왔기 때문에 농촌 주민들 스스로가 복원하기에는 시간도 너무 많이 걸리고, 인력도 턱없이 부족하죠. 그래서 행정과의 협동이 필요한 것이죠. 주민들을 끊임없이 교육시키고 훈련시켜주는 역할도 중요하구요. 개별사업과 함께 주민교육에 많은 투자를 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또 마을 일을 도와줄 수 있는 외부 인력 수혈이 필요하여 마을간사 제도를 작년 3월부터 시작하였습니다. 도시민의 농촌 정착도 도와주고, 마을 활동도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제도입니다.” 구자인 박사는 지금 자신은 전임자가 뿌려놓은 씨앗의 싹을 지금 틔우고 키우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마을가꾸기’ 사업의 성과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하고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는 아직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상향식 마을개발 사업을 통해 나타난 가시적 성과는 아직 명확하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희망이 없다고 포기하고 있던 주민들이 ‘우리도 합심하면 잘 잘 수 있다’는 희망의 단초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남은 생을 이 사업에 바친다는 주민도 있구요. 마을 공동사업의 중요성에 눈뜨게 되었고, 합심하여 열심히 하면 행정이 도와준다는 사실을 주민 스스로 인정하게 된 것이죠. 주민과 행정사이의 상호불신도 많이 줄어들면서 새로운 협력체계가 형성되고 있는 것도 중요합니다. 행정에 대해 욕만 하던 주민들도 마을 공동사업을 직접 추진하면서 행정의 애로사항을 알게 되어, 행정절차가 가진 나름의 합리성을 인정하게 되었고, 주민들 사이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에 많은 노력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마을공동사업이 특정 개인의 사업으로 둔갑하는 사례를 많이 보아온 행정 내부에서도 주민을 불신하는 풍조가 조금씩 변화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구자인 박사는 살기 좋은 농촌 마을을 만들기 위해서는 ‘주민이 주도하고, 행정이 지원하고, 전문가들이 조언’하는 삼박자 협력구조가 갖추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마을만들기’사업의 성공 요소로 꼽는 세 가지 요소가 또 있다. ‘재미’와 ‘의미’, ‘이익보람’ 이 그것이다. 그는 이 세 가지 요소가 두루 갖추어졌을 때에라야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설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사업은 결코 단시일내에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과정 자체를 즐기면서 꾸준히 해나가야 하는 것이죠. 그래서 일단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꾸준히 해나가기 힘들죠. 하지만, 재미만 있으면 취미가 되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활동 속에서 스스로 활동의 사회적 ‘의미’를 찾아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랬을 때, 이 사업이 확산될 수도 있구요. 마지막으로는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이익보람’이 있어야 하는데, 이것은 비물질경제적적인 부분까지 포함한 것들을 말합니다. 사실 농촌에서는 눈에 보이는 경제적 이익도움이 없으면 주민들이 스스로 잘 나서질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지난해부터 각 행정부처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지역만들마을가꾸기’, ‘마을만들기’ 사업에 대한 조언도 덧붙였다. “2천 년 대부터 농촌에 ‘녹색농촌체험마을’이니 ‘전통테마마을’, ‘팜스테이마을’, ‘산촌마을’, ‘마을종합개발’ 등 마을단위 정부사업들이 급격하게 늘어 왔습니다. 지난 해 부터는 또 ‘살기 좋은’, ‘살고 싶은’ 등의 형용사가 붙는 행정 사업이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사업들은 모두 농가개별 보조사업과 달리 마을 공동사업 중심으로만 지원하고, 나아가 주민 스스로 사업계획을 수립하고 추진하도록 하는 ‘형식’을 빌고 있습니다. 중앙과 지방의 균형발전을 위한 사업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긍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지역사회에 대한 몰이해와 하향식 정책 구상이 곳곳에서 쉽게 드러나는 것이 사실입니다. 풀뿌리 지역사회에 대한 철학 없이는 새로운 정책이나 제도는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어요. 지금 현재 지역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무엇을 요구하는지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다면 또 하나의 유행성 정책에 그치고 말 것입니다." 그는 결국 다시 풀뿌리에 마을 기반을 강화하는 것이 관건이라는 말로 돌아왔다. “농촌에서 마을만들기를 실천한다는 것은 20세기의 잃어버린 보물을 다시 찾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단히 의미있는 사업이라는 것이죠. 하지만, 이러한 노력과 시도에도 불구하고 농촌의 풀뿌리 마을공동체가 복원되고 경제적으로 잘 살 수 있는 공간으로 바뀌기 위해서는 해야 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농촌의 발전이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도 없구요. 현재의 조건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농촌 현장에서 한걸음씩 실천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을만들기의 의미와 중요성을 깨달은 사람부터 먼저 땅에 뿌리내리고, 함께 할 사람을 찾아 훈련과 교육을 반복하며 공동의 실천을 조직해야 합니다. 이런 활동을 통해 농촌의 풀뿌리 마을 기반이 강화될 때 지방자치도 발전하고 농촌의 전통문화도 복원되며, FTA개방체계에도 대응할 수 있는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발전 토대도 만들어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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