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3 |
[특집 · 마을만들기] “농민 스스로 개발하고 가꾸어 나가야 하는 것”
관리자(2007-03-14 11:59:18)
“농민 스스로 개발하고 가꾸어 나가야 하는 것”
최정학 기자
진안군 용담면 신와룡마을은 용담댐 건설과 함께 생겨난 마을이다. 용담댐으로 수몰된 와룡마을과 신정마을의 11가구 주민들이 1996년 이주단지를 조성하면서 들어와 마을을 이루게 되었다. 10년 사이 주민들이 조금씩 늘어 지금은 23가구에 48명의 주민들이 수몰된 옛 마을터를 내려다보며 살아가고 있다.
여느 마을과 다를 것 없어 보이는 이 마을이 주목받게 된 것은 지난 2003년, 진안군이 추진하고 있는 으뜸마을가꾸기사업 대상으로 선정되면서부터다. 이미 많은 언론들이 ‘마을만들기’ 사업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소개하기 위해 이 마을을 다녀갔을 만큼 주목을 받고 있다.
“진안군이 하고 있는 으뜸마을가꾸기 사업은 순전히 자력사업이에요. 단순히 돈만 대주는 사업이 아니죠. 원래는 다른 마을이 선정되었었는데, 귀찮기만 하다고 포기해서 우리 마을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미 우리 마을은 정부의 지원을 하나도 받지 않고, 거의 자력으로 공동사업을 해서 성공했죠. 정부지원금을 받아 사업을 추진한 마을보다 훨씬 성공적으로 실행했어요. 정부에서 대규모로 지원해 마을을 가꾼다는 것은 오히려 농민들을 나태하게 만들뿐 성공은 보장할 수 없는 것 같아요. 농민 스스로 피땀 흘려 개발하고 가꾸어 나가야 하는거죠.”
으뜸마을 가꾸기 와룡마을 추진위원장으로 일하고 있는 강주현 씨의 설명이다.
마을의 중심에 자리잡은 마을회관 옆으로 공동작업장과 펜션, 천문대 등이 눈에 띈다. 그중에서도 마을사람들이 조금씩 돈을 보태 자력으로 지은 공동작업장은 이 마을의 보물이다.
“으뜸마을가꾸기 사업에 선정되기 전에 이미 우리 마을은 산초사업을 공동작업으로 하고 있었어요. 당시에 이주는 했는데, 농토가 다 수몰되어서 농사를 지을 수가 없더라구요. 그래서 산을 이용한 작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산초는 토종 허브식물인데, 현재는 야생산초를 구하기 힘든 만큼, 가능성이 있는 작물이었죠. 그래서 2000년부터 산초작물을 시작하다가, 2002년부터는 마을주민들 전체가 약 2만평에 걸쳐 산초를 재배하기 시작했습니다.”
대규모로 산초를 재배하기 시작한 마을주민들은 산초를 가공할 공장의 필요성을 느꼈고, 공동으로 공장을 설립하기에 이르렀다. 일단 공장이 생기고, 농작물 가공 기계를 들여놓으니 아이디어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현재 와룡마을은 정부나 농협을 통해 수매하는 작물이 없다. 마을에서 나오는 작물은 모두 마을에서 일괄 수매해 참기름, 들기름, 유치기름, 된장, 고추장, 청국장, 간장 등으로 이 공장에서 가공한다. 가공되지 않는 작물들은 상품가치를 높이기 위해 소포장해 직거래 장터나 우편으로 판매한다. ‘좋은동네’라는 이 마을만의 브랜드도 만들었다. 현재는 입소문을 타면서 이미 지난해 재배된 작물은 동이 난 상태. 이웃마을에 비해 소득이 높아진 것도 당연하다. 지난해에는 가구당 평균 4백만 원이라는 공동사업 분배금까지 나눠 가질 수 있었다. 소득이 올라가니까 마을주민들의 참여도 당연히 높아졌다.
“지금 WTO니 FTA니 농촌이 점점 살길이 막막해져가고 있어요. 농산물 가격이 갈수록 형편없이 떨어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도저히 단순히 농사만 지어가지고는 수지를 맞출 수가 없어요. 우리는 마을에서 자체적으로 더 비싸게 수매해서 가공해서 판매를 합니다. 그렇게 하니까, 그냥 일차 농산물을 팔 때 보다 훨씬 남는 게 많아요. 이것이 농촌이 살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인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마을의 사업이 앞으로 제대로 성공만 한다면, 한개 마을이 면단위 전체를 먹여 살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이미 우리는 그 비슷한 단계에 까지 와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동네’라는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가 생기면서 지금은 작물이 부족한 상황. 강주현 씨는 차츰 와룡마을이 요구하는 대로 농사를 짓겠다는 신청자에 한해 이웃마을의 작물을 수매해 함께 판매할 예정이다.
마을주민들의 의욕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현재, 와룡마을이 으뜸마을가꾸기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은 ‘홍삼약초생태건강마을’이다. 지난 2005년 정부에서 지원받은 지원금에 마을주민들이 조금씩 투자해 천문대와 펜션을 지었다. 도시인들을 유인하기 위해서다. 장승체험이나 어선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마을주민들 스스로가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위해 단체로 교육을 받으러 다니기도 했다. 홍삼체험을 위해 만든 찜찔방의 경우 기술자 한명 쓰지 않고 마을 주민들 스스로 벽돌을 찍어서 지었다고 한다.
“으뜸마을가꾸기 사업을 시작하고 난 후에 무엇보다 주민들의 의식이 많이 바뀐 것 같아요. 왜 이 사업을 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알게 되었으니까요. 주민들의 생각이 변하지 않으면, 결코 성공할 수 없는 것이잖아요.”
으뜸마을가꾸기 사업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효과는 나타나기 시작했다. 주말이나 휴가철이면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마을 펜션에서 며칠씩 묵으며, 인근 계곡이나 마이산을 돌아다니기도 하고, 밤에는 천문대에서 별은 본다.
와룡마을의 ‘마을가꾸기 사업’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산더덕과 장뇌삼, 산도라지 등의 공동작물 재배 면적을 더 늘리고, 도라지꽃 등산로를 만드는 등 이를 활용한 다양한 연계 사업들도 구상하고 있다. 마을홈페이지도 개설할 예정이다. 이런 아이디어들 모두가 주민들이 함께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나왔다. 공동작업이 많아 주민들이 서로 마을일에 관해 얘기할 시간이 많기 때문이다.
마을주민들이 언제든 마을일에 관해 아이디어를 내놓고 서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구조, 이것이 와룡마을이 가진 가장 큰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