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3 |
[남형두변호사의저작권길라잡이] 저작권은 저격용실탄에 불과한가!
관리자(2007-03-14 11:43:24)
저작권은 저격용실탄에 불과한가!
남형두 | 연세대 법대 교수 hdn@yonsei.ac.kr
에피소드 #1
(사전 설명 : 문화관광부 산하 000연구원이라는 곳에서 ***논총이라는 잡지를 1년에 한번씩 낸다. 필자는 논총의 청탁을 받아 작년 12월 말에 ‘문화의 산업화와 저작권’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제출한 적이 있다. 논총이 출판되어 받아보니 영문초록상의 영문 저자명이 필자가 평소 쓰는 대로 되어 있지 않고 소리 나는 대로 다른 알파벳으로 되어 있었다)
△△△ 님
오늘 아침 책 잘 받았습니다. 여러 사람의 글을 받아 책을 낸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특히 개성이 강한 교수 및 실무가들의 의견을 반영하면서도 편집방침을 고수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받고서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몇 가지를 발견하였기에 이메일을 드립니다.
제 이름의 영문명을 임의로 하셨더군요. 저는 영문명으로 ‘Hyung Doo Nam’을 쓰고 있습니다. 편집방침에 따라 ‘성’을 앞으로 쓴다고 해도 ‘Nam, Hyung Doo’, 또는 ‘Nam, Hyung-Doo’ 까지는 양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Nam, Hyeong-du’라고 하셨더군요.
소리나는대로 하면 똑 같지 않느냐 또는 이 책이 외국에까지 유포되지는 않는다고 반문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영문초록을 쓰는 것은 우리말이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을 위한 것이지 그저 장식용(decoration)이 아닐 것입니다. 또한 ***논총이 그렇게 장식용 책도 아니지 않습니까? 어떻게 남의 이름을 함부로 고칠 수 있습니까? 저한테 영문 이름을 어떻게 쓸지에 대해 한번이라도 상의하시기라도 했더라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텐데, 참으로 유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이라 실수는 있을 수 있습니다. 다만 그 실수를 줄이거나 없애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느냐가 중요합니다. 위와 같은 실수는 편집 중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최종 인쇄 직전에 저자에게 한번쯤 검토할 기회를 주셨다면, 자기 글이 나가는 마당에 정신있는 저자라면 꼼꼼히 보았을 것이므로 오류를 정정할 수 있어 좋고, 편집진으로서는 책임을 면할 수 있어서 일거양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급해도 실을 바늘허리에 꿸 수 없듯이 필수적인 절차를 생략함으로 인해 발생된 이번 일은 결코 가볍다고 볼 수 없습니다.
***논총과 000연구원의 핵심화두인 ‘문화’, 그리고 저도 평생의 연구 목적으로 삼고 있는 두 개 테마(문화, 저작권) 중 하나인 ‘문화’는 ‘보이지 않는 것’을 소중히 여기는 데서 출발한다고 생각합니다. 저작물은 창작자 인격의 연장선에 있는 노력의 소산이기 때문입니다.
표절이 난무하다보니 대충 쓰기도 한다지만, 글을 써서 책으로 펴낸다는 것은 마치 자식을 낳아 시집장가 보내는 것 같습니다. 집 떠난 후에는 모두 부모 책임이듯이 책이 출간되면 그로 인한 영광과 비난은 모두 저자의 몫입니다. 제 이름조차 잘 못 쓰고, 그로 인해 여기저기에 이름이 제각각 실리는 글을 누가 자식 시집장가 보내는 것처럼 소중하게 쓴 글이라고 생각하겠습니까? 저의 진심을 오해없이 잘 받아들여 주시기를 당부합니다.
남형두 드림
이에 대하여 000연구원 실무자는 상황의 심각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 듯, 편집에 관한 최고책임자의 성실한 답변을 듣고 싶다는 필자의 요구를 묵살하고 죄송하다는 짤막한 답신과 함께, 보관분은 수정하고 수정된 논총을 다시 보내겠다고 이메일 답장을 보냈다. 그런데 그 후 보름이 지났건만 필자는 아직까지도 수정된 책자를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000연구원의 홈페이지에도 오류상태가 그대로 실려 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에피소드 #2
얼마 전 K대 법대 모 교수로부터 필자가 쓴 논문과 같은 주제로 발표를 맡게 되었다면서 발표일이 임박한 관계로 필자의 논문을 파일 형태로 보내줄 수 있느냐는 부탁을 받은 적이 있다. 기가 막혔다. 교수라는 사람이 남의 논문을 파일로 보내달라니. 필자는 흥분을 가라앉힌 후 필자의 논문을 인용한다는 데 고마움을 표한 후, 다만 파일 형태는 곤란하니 출판된 논문을 참고하시라고 하면서 끝으로 인용표시는 빠뜨리지 말아줄 것을 당부하였다. K대 교수는 뭐 이런 놈이 있냐는 듯이 불쾌하게 전화를 끊어버렸다.
김병준 교육부총리가 물러나고 고려대 총장이 물러난 것이 표절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가 언제부터 저작권을 이렇게 중시하고 표절에 대해 엄정했던가? 문화와 저작권을 다룬다는 문화관광부의 산하 연구원이 남의 창작물을 저렇게 패대기치듯 함부로 하면서 저작권이 어떻고, 표절이 어떻고 말할 자격이 있을까? 솔직해지자. 저작권은 저격용 실탄에 불과하다고.
파일로 논문을 달라고 하면 줘야 하나? 같은 교수끼리 너무 모나게 군 것 같아 당시 상황을 다시 돌아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아둔한 머리를 쥐어 뜯어가며 밤을 새워 썼던 필자의 논문이 저렇게 홀대받나 하는 생각에 미치자 옆에 있으면 한 방 먹여줄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흔히 글 쓰는 것을 산고에 비유한다. 피를 흘리며 죽음을 무릅쓰는 산통을 글쓰기에 비유한다는 것은 그만큼 쉽게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반증한다. 남의 글을 가위질하거나 컴퓨터에서 편집하여 발표하는 것은 남의 자식을 제 자식이라고 우기는 것과 같다. 남도 그러니 나도 낳지 않고 남의 자식을 내 것이라고 해볼까? 가뜩이나 인구가 줄어든다고 하는데 그럴 수는 없다. 다만 자식을 낳되 정성스레 낳아 남이 가져가지 못하게 잘 지켜야 할 것이다. 저작권법을 한다고 나선 이상 내 글, 남의 글 소중하게 여기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는 모난 일을 계속 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