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3 |
[정현숙의 잘 사는 이야기] “자연이 차리는 밥상”
관리자(2007-03-14 11:39:52)
에피소드 하나.
인도의 스승 아난다 무르티 지가 쓴 동화 얘기를 들었다. 마녀에게 잡히면 마녀가 되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마녀인가 하면 그것이 걸작이었다. 하늘 끝까지 닿게 옷을 걸어 놓고 사다리로 오르내리며 이 옷 입었다 저 옷 입었다 하루 열두 번도 더 되게 옷을 바꿔 입고, 음식이라고 먹는 것은 세상 온갖 곳에서 나는 온갖 음식을 있는대로 다 가져다가 이것도 먹고 저것도 먹고 수십 가지를 먹고, 말하는 것과 생각하는 것 행동하는 것이 다 제각각으로 전혀 맞아 들어가지 않는 그것이 마녀란다.
그렇다면 생각과 말과 논리와 행동이 따로 노는 분열은 또 그렇다 치더라도, 평생 입어도 다 못 입을 웃을 옷장 가득 가득 옷을 넣어 놓고 이 옷 입었다 저 옷 입었다 하는 우리들, 전라도에 앉아서 경기도 쌀 제주도 밀감 경상도 사과 중국산 김치 러시아 명태 미국 콩 호주 밀가루에 아프리카 커피 마시고 유럽 포도주 마시는 현대인들은 다 마녀가 아닌가? 아니면 말고 식의 동화지만 요즘 우리 사는 꼴은 아닌 게 아니라 뭔가 어긋나 있고 뭔가 웃기는 게 맞다. 나 역시 이야기 속의 마녀일 수밖에 없는. 우리가 이렇게 농사를 짓고 들어앉아 사는 것도 마녀까진 몰라도 뭔가 도대체 앞뒤 안 맞는 자본주의의 흐름에서 그나마 좀 벗어나 보자는 나름의 선택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아직도 마녀의 탈을 벗었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어릴 때 시골 할머니집에 갔을 때도 그랬고 농사짓는 지금도 마찬가지인 것이 나는 날이 밝으면 바깥이 궁금해서 누워 있을 수가 없다. 봄이 가까워지면 더욱 그렇다. 긴 겨울 밤 내년에는 또 무엇을 심을까 궁리하다가 입춘을 넘기면 봄을 기다리느라 온통 마음이 설레었다. 양지쪽에 돋는 쑥이며 돌나물, 미나리도 궁금하고, 장독에 그득하게 담긴 장도 나날이 색깔이 짙어가고 뽀글뽀글 익어가는 것이 궁금해 이 항아리 저 항아리 손가락 찍어 맛을 보며 돌아다닌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돌나물 뜯고 미나리 뜯어 봄맛을 보았다. 샘이 있는 한 켠에 샘물이 따뜻해서인지 다른 곳보다 일찍 미나리가 작은 밭이 되어 있었다. 그 향긋한 미나리를 칼로 도려내어 된장이랑 같이 점심을 먹었다. 밭둑에서 뜯은 돌나물까지. 이로써 오늘 일용할 양식은 충분하다. 나는 영양을 따질 때 전체 칼로리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자연 그대로의 기운이 살아있는 음식을 먹었는가로 따진다. 찔레순 하나, 저절로 자란 미나리 몇 뿌리, 산딸기 몇 개 먹으면 오늘은 이만하면 됐다 생각한다. 우주의 생생한 기(氣)와 최고의 천연 미네랄을 섭취했기 때문이다.
올해는 겨울이 춥지 않다보니 정말 봄이 빨리 오는 것 같다. 아직 이월인데 매화는 곧 터질 듯 꽃망울이 맺혀 있고, 차밭에 가 보니 차잎이 싱싱하게 푸르고 뾰족뾰족 새순이 움트고 있다. 추운 겨울을 지나면 겨우내 얼어 죽은 나무들이 더러 눈에 띄는데 올해는 워낙 따뜻하다 보니 이파리 하나 상하지 않고 그대로 푸르다. 올해 남쪽에선 우전차가 많이 나올 것도 같다. 그러고 보니 차밭에는 냉이도 많이 났다. 키 큰 풀들을 잘라주니 냉이나 민들레 같은 작은 키 식물들이 제 세상을 만난 것이다. 오늘은 아무래도 호미 들고 나서야 겠다. 쑥도 벌써 국 끓여먹을 정도는 자랐다. 마음이 절로 바빠진다.
정읍에 온 이후 우리 집은 시장이나 슈퍼마켓에서 먹을거리를 사는 일이 별로 없다. 한살림 매장을 가끔 이용하거나, 주변 농민들과 서로 나눠 먹는 일이 더러 있는데, 요즘은 과일 정도 외에는 장볼 일이 별로 없이 지낸다. 처음 시골로 올 때만 해도 외진 곳에 살면서 먹을 게 떨어지면 얼마나 곤란할까 싶어서 여느 집처럼 냉장고 가득 먹을거리를 쟁여 두곤 했다. 그런데 음식에 대한 생각이 차츰 바뀌면서 제철 우리 주변에 없는 것은 안 먹고 사는 것이 훨씬 더 자연스러워졌다. 아울러 집에서 못 만드는 가공식품을 사는 일도 점점 줄어져 갔다. 지금이야 냉장고 없는 생활이 몇 년째 이어지다 보니 사서 넣어둘 수도 없는 구조이고 보니 없으면 없는 대로 사는 것이 그다지 아쉽지도 않다.
대신 주변의 자연이 내 놓는 제철 음식은 최대한 때를 놓치지 않는다. 이제쯤은 하느님의 일 년 작부계획이 머리 속에 훤하게 들어있어서 언제쯤에 어디 가면 뭐가 있다는 게 대충 읽어지는 덕분이다. 주변 자연 속에는 일년내내 먹을 것들이 산재해 있다. 추운 겨울에도 밭에는 늘 먹을 것이 있다. 배추와 시금치도 밭에서 그대로 겨울을 났고, 고수도 겨울 내내 언 땅에서 짱짱하게 자라고 있었다. 정월 보름이 되기 전에도 이미 마른 풀 속에는 돌나물이 돋아나는데, 겨울 돌나물은 마른 잎만 떼어내고 줄기째 뚝뚝 잘라서 된장이나 고추장을 넣고 비벼 먹으면 참으로 별미가 된다.
조금 더 있으면 우리 집 주변은 온통 나물 밭이 된다. 차밭이며 산은 아예 쑥밭이고, 구석구석 달래며 냉이가 숨어 있다. 물이 흔해서 돌미나리도 여기저기 밭으로 자란다. 4월이면 땅두릅, 참드릅, 취나물이 흔해지는 철이 된다. 일일이 꼽아보기도 벅찬 그 맛있고 참된 먹거리들이 쇠어가거나 시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나는 도시에 사는 지인들을 그리워한다.
아무렇게나 펴놓고 먹는 우리 집 밥상은 그지없이 초라하고 멋도 없고 예술도 없이 투박함 그 자체지만 자연이 농사지은 그런 먹거리로 밥을 먹을 때, 우리 식구들은 진정으로 포만감을 느끼며 편안한 마음이 된다. 특히 서울에서 밥 먹을 일이 생기면 속으로 기가 막힐 때가 많다. 유기농을 즐겨 먹는 친구 집에 가면 한 젓가락 한 젓가락이 그대로 다 돈이어서 돈이 제일 무서운 농사꾼인 우리는 돈을 먹는 것 같아 손대기가 송구스럽다. 우리 집에서 못 먹고 버리는 배추보다 더 여리고 모타리도 적은 것들을 유기농이라고 모셔 놓고 뿌듯해 하는 듯한데, 나는 돈이 아까와서도 못 먹고 감질나서도 못 먹는다. 물론 식당은 더했다. 돈은 돈대로 비싼 데도 도무지 먹을 것이 없고, 먹을 만하다 싶으면 두어 젓가락 집으면 그만이게 폼으로만 있다.
그래서 세상은 공평한가 싶기도 하다. 우리가 보기에는 엄청난 돈을 버는 그 서울 사람들이 자연의 혜택을 누리거나 먹는 것에 관한 한 시골 우리보다 훨씬 빈곤한 삶을 산다는 것. 그러나 이것도 내 생각이겠지. 길거리에 먹을 것이 넘치고 마트마다 먹거리들이 산더미로 쌓여 있어 아무 때나 실어 나르면 되는 별천지에 사는 그 서울 사람들이 정서적인 부분이라면 모를까 서울에 먹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 같다.
아무튼 나는 일 년 농사 못지않게 자연이 주는 풍요로운 그 먹거리들을 활용할 궁리를 열심히 한다. 나물로 하고 국도 끓이고, 말렸다가 써 보기도 하고, 장아찌도 만들고, 가루로, 엑기스로, 차로 만들기도 한다. 무엇보다 바로 뜯어서 날것 그대로 천천히 씹어 먹으면 달콤하고 씁쓸하고 아삭한 그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나는 향이 약간 있고 씹을 맛이 있는 채소를 좋아하는데, 돌미나리와 방풍, 당귀잎, 취나물 같은 것을 된장에 찍어 먹는다. 고수는 잘게 다져서 참기름 간장 넣고 깨소금 넣어 비벼 먹거나 전을 부쳐 먹는다. 상추는 맛이 좀 싱거운데 물기 없이 자란 가을 상추는 살이 두텁고 향이 강해 가을배추가 나기 전에 애용한다. 잎이 두꺼운 상추는 장다리와 함께 상추전을 부쳐도 맛있다. 옛날 사람들은 말도 잘 해서 가을 상추는 노루고기 맛이라 했는데 노루고기를 못 먹어 봐서 어떤지는 모르겠다. 아욱도 말이 있다. 누가 달랠세라 문 걸어 놓고 먹는다기도 하고 봄 아욱국은 사위가 와도 안 준다 그러기도 한다. 설마 그렇기야 할까.
저마다 맛과 향이 다르고 쓰임새와 성질이 다른 산야초들을 보면 자연이 얼마나 오묘하고 그 은혜가 얼마나 무궁무진한가 절실히 느낀다. 작년에 나는 산야초와 쑥으로 차를 만들었다. 수십 가지의 산야초들이 어우러진 그 향은 향만으로도 치유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고, 겨우내 차를 마실 때마다 갖가지 약초들과 산의 그 힘찬 기운을 함께 느끼곤 했다.
이제 봄이 오고 다시 가지 끝에 새순이 돋아날 것이다. 올 봄에도 나는 열심히 산아초차를 만들고, 열심히 쑥을 뜯어 쑥차를 만들 것이다. 일년 내 지나간 봄을 그리고 또 다가올 봄을 꿈꾸며 긴 겨울 산야초와 쑥향에 젖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