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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3 |
[오래된 가게] 거시기 좀 가져오소
관리자(2007-03-14 11:37:37)
“거시기 좀 가져오소” .....전주 동산동 ‘거시기 상회’ 최정학기자 설을 며칠 앞둔 동산동(전북 전주시)은 활기로 넘쳤다. 노점상에는 시골 할머니들이 직접 채취한, 때 이른 봄나물들이 제수용품들과 함께 행인들의 흥정을 기다리고, 손주들의 설빔을 사거나 제수용품을 준비하러 나온 사람들의 얼굴에는 이제 곧 올 명절에 대한 기대감이 묻어났다. 동산동에서도 사람들의 왕래가 가장 많은 길가에, 낡고 널찍한 간판에 눈에 띈다. ‘거시기 상회.’ 가게 이름이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귀신도 모르는 것이 거시기라잖여. 근데도 마음이 통하는 사람끼리는 알 수 있는 것이 바로 거시기라는 말이여. 예를 들면, 아침에 아버지가 ‘얘야, 거시기 가서 거시기 좀 가져오너라’하면, 아들은 틀림없이 ‘거시기 여기요’하면서 신문을 갖다 준단말이여.” 권재규 씨가 거시기 상회의 문을 연 것은 1975년. 제대 후 결혼하면서부터 시작한 것이 어느덧 30년의 세월을 훌쩍 넘겼다. 그사이 아이들을 낳았고, 또 그 아이들이 아이들을 낳아 할아버지가 되었다. “별 뜻은 없었고, 주위에서 ‘거시기’라는 말을 많이 하니까, 또 ‘거시기’라는 말이 정겹잖아. 그래서 이름을 이걸로 지어야 겠다 생각하고 이책 저책 찾아보고 했지. 삼국유사에 보니까 ‘거시기’라는 말이 통일신라 진성여왕 시대 때 ‘거타지’라는 사람 이름에서 유래됐더만. 80년대 중후반인가에는 (故)서정주 시인이 전북일보에 ‘거시기 팔자’도 연재하고. 그래서 뭐, 내가 이름 참 잘 지었구나 생각했지 뭐.” ‘거시기 상회’는 순전히 이름 때문에 텔레비전 프로그램에도 나올 만큼, 이 지역에서는 이미 명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거시기 상회’는 이름과 어울리게 잡화상이다. 없는 것이 없다. 전기밥솥, 냄비, 주전자, 쓰레기통, 우산 등 없는 생활용품이 없다. 문 위 쪽 선반에는 중국집 철가방까지 구비되어 있다. 만물상인 이곳에도 유행이 따른다고 한다. 요즘엔 양은 막걸리 바람이 불면서 노란 주전자가 많이 나간다. “시간이 변한다고 많이 나가는 물건이 크게 변하는건 아니여. 그때그때 조금씩 변하는거지. 양은 냄비가 많이 나가다가, 건강에 안좋다고 하니까 스댕이 많이 나갔었지. 또 그러다가 요새는 막걸리 집들이 많이 생기고 복고풍이네 뭐네 하면서 노란 주전자가 많이 나가. 또 어떤 날은 손님들이 유독 많이 찾는 제품이 있는데, 그건 영락없이 그 전날 테레비에서 나왔던 제품이여.” “단골? 단골은 특별히 없어. 여기 사는 주민들이 다 단골이지. 여기 살다가 이사 간 사람들 중에서도 더러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어. 근디 지금은 원체 가게들이 많이 생겨가지고…. 집 가까이에 대형매장도 많고 하니까 손님들이 많이 줄었지. 지금도 봐, 명절 앞이라 말하자면 대목인디 형편 없잖어. 예전에는 둘이 밥 먹을 시간도 없었어.” 이제 ‘거시기 상회’를 통해 돈을 벌기는 힘들다고 한다. 하지만, 이 부부에게 가게는 생계수단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우리가 이 나이 먹고 인자 고만하고 싶은 마음도 있는 것이지만은, 아침에 출근할 때가 있다, 내 놀이터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이여. 또 좋은 사람들 만나고, 길거리 지나다니는 사람들 구경하고 이런 것들이 다 좋은 것이여. 그래서 내가 70세까지는 한다고 그랬어. 그때 가서 몸이 허락하믄 80세까지 하는 거고. 뭐 죽을 때까지 하는 거지.” 때마침 한 손님이 들어와 어떤 물건을 찾는다. 손님을 맞이한 권재규 씨, 정애순 씨에게 소리친다. “어제 거시기 들왔는가.” “저쪽에 보믄 있을 것이요.” 30년 부부의 대화는 정말 귀신도 모르겠다. ‘거시기 상회’가 ‘거시기 상회’인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 만나고 싶은 '오래된 가게'를 추천해 주십시오. 문화저널이 찾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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