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3 |
[이흥재의 마을이야기] 100년전 군사을 기억해주는 동국사와 히로쓰 가옥
관리자(2007-03-14 11:29:10)
100년전 군사을 기억해주는 동국사와 히로쓰 가옥
군산시내, 명산 사거리에서 월명산을 보고 10시 방향에 위치한 동국사는 일본 그대로이다. 대웅전 건물, 요사채, 종각 그리고 건물 뒤편의 대나무 숲은 모두가 말할 것도 없이 일본식 건축이다. 처음 본 순간 너무 똑같아서, 나는 오히려 당혹스런 느낌이었다.
1899년 5월 1일, 호남평야와 옥구평야 쌀을 수탈해 가기위해 군산이 개항되면서 많은 일본인들이 월명산 아래 집단으로 거주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월명동, 영화동 등 거리는 바둑판처럼 반듯반듯한 골목이다. 요즘 새로 도시계획을 하면서 만들어지는 십자거리가 이미 100여 년 전 월명산 아래에서 만들어졌다.
이 일대 동국사와 김혁종 가옥 일명 히로쓰가옥을 둘러보면 일제강점기 이 동네가 어떤 풍경이었는지를 생생하게 기억해 낼 수 있다.
한국 속 일본 ‘동국사’
1909년 당시 군산에 2000여 가구가 살고 있었고 그중 일본인들이 500여 가구였다고 한다. 군산에 살던 사람들의 1/4이 일본인이었을 만큼 많았다는 얘기이다. 동국사는 1913년 일본 사람들이 일본사람을 위해, 일본에서 목재 등 모든 건축자재를 가져와 지은 절이다. 일본 조동종에서 조선에 세운 103개 절 중에서 5번째 일본절이다. 그 당시 우리나라에 세운 여러 종파의 일본절이 400여개가 넘었다고 한다.
처음 지을 당시 금강선사였는데, 해방 후 김남곡 스님이 이 절을 인수하며 동국(東國)사라 했다. 조선시대 우리나라를 해동(海東)이나 동국(東國)이라 칭한데서 절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현대식으로 해석하면 ‘조선사’나 ‘한국사’라 해석할 수도 있겠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절들이 모두 없어지고 동국사만이 지금도 사찰역할을 하는 우리나라 유일한 절이다. 또,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근대건축이 이제 건물본래의 기능을 하고 있는 예가 거의 없음에 비추어 볼 때 동국사는 정말 특별한 관심의 대상이다.
동국사 뒤에 대나무 밭이 울창하다. 지금의 동국사, 당시의 금강선사를 지을 때, 얼마나 정성을 들였는지를 알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대나무이다. 대웅전 건물을 지을 나무 등 건축자재는 물론 죽순용 식용 대나무를 일본에서 직접 가져다 심어 이곳이 일본땅임을, 그리고 일본화 하려는 노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대웅전은 먼저 지붕의 물매가 급하여 강수량이 많은 일본식 지붕이라는 것을 한눈에 바로 알 수가 있다. 건물 전면은 문이 옆으로 여닫는 미서기 문이다. 건물 측면에도 우물 정(井)자 모양의 정자살 두짝의 미서기 창으로 되어있다. 우리 목조 건물은 대개 흙으로 벽을 한데 비해 일본식 건물은 나무와 창으로 벽을 만들었다.
절 한켠에 종각이 있고, 종각에는 일본에서 명치 40년 즉 1909년 일본에서 만든 일본종이 있다. 종각 주변에는 조그마한 석조물이 36기가 있다. 원숭이, 말, 돼지 등 12지신을 새겨놓은 것 등, 여려 독특한 보살상이 새겨져 있다. 이 조각상들이 일본식 불교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릴 때, 자기의 띠 앞에서 기도를 하는 것이 관례라 한다. 완벽한 일본식 불교의 구현이다.
고은 시인이 처음 출가하여 혜초스님을 은사로 중장이란 법명을 받았다고 한다. 예불을 지금의 큰 교회처럼 3부로 나누어 볼 정도로 신도가 많았고, 군산시내에 3개의 포교당을 설치할 정도로 사세가 컸다고 한다. 해방 이후 줄 곧 동국사는 군산지역 불교의 중심사찰 역할을 해왔고, 군산에 살았던 사람 중에 절하면 ‘동국사’라 할 정도였다고 한다.
영화촬영의 명소 ‘김혁종 가옥(일명 히로쓰가옥)’
최근에 개봉해서 많은 사람이 본 ‘타짜’라는 영화를 이곳에서 촬영했다. 조승우가 백윤식에게 한 수를 배우던 일본식집이 바로 이집이다. 장군의 아들, 바람의 파이터 등 일본을 배경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를 숱하게 찍은 집이다.
지붕 여러 개가 이어져 전체로 한 채를 이루는 전형적인 일본식 집이다. 일본 에도시대 사무라이들이 살던 집과 똑같다고 한다. 정원에 있는 가이스까 향나무 정원석과 돌들의 배치가 일본정원 그대로다. 정원에 잉어를 키우던 연못이 있고, 뒷켠에 풀장이 있었고, 물받이를 양철이 아니고 구리로 만들었다.
조그마한 탑과 석등이 있다. 석등 옥개석의 귀꽃 문양이 섬세하고 정교해서 고려시대 만들어진 석등으로 보이는데, 일제 강점기 어느 절에서 가져다 정원 조형물로 놓은 것 같다. 대문 옆 쪽문은 인력거가 마당까지 한번에 뚝 들어올 수 있게 경사면을 만들어 놓은게 특징이다. 건축에 쓰인 나무는 백두산에서 베어 온 낙엽송이라고 한다. 지금도 나무결이 생생하고 아름답다.
일제 강점기 포목상이었던 히로쓰가 지은 집이다. 히로쓰는 대지주가 많았던 군산에서 드물게 상업으로 부자가 되고 임피 인근에 조그마한 농장을 운영했으며, 부형의회 의원을 지냈다고 한다. 해방 후 호남제물 회장의 관사였다가, 초창기 이용구회장의 손자인 이문연씨 명의로 되어있다고 한다.
방이 18개나 되는 이 큰집은 68세의 유승길씨 부부가 관리하면서 살고 있다. 매년 일본에서 단체 관광객과 건축전공자들이 수시로 찾아오고 있는 히로시가옥 근방에는 백화양조 회장, 한국합판 회장집 등이 즐비했던 동네이다. 비록 집이 비어있어 일부가 낡았지만 근현대 역사 유물로서 잘 보수하고 보존해야 할 필요가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