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3 |
[전라도 푸진 사투리] 고런 생각이 멕힌당게
관리자(2007-03-14 11:26:38)
고런 생각이 멕힌당게.
봄이다. 혼담이 오가기 좋은 계절이다. 무릇 생명 가진 모든 것들이 짝을 짓고 그로 말미암아 비롯되는 일련의 행위가 바로 건강한 당위이고 삶인 봄이다.
근디 인자 나는 아무 종도 모리고 슨을 보로 온지 멋 헌지를 아무 종도 모리고 말을 안 헌게 그전 으른들은 말도 안 헌게
이는 지금부터 약 50년쯤 전 여느 여염집에서나 볼 수 있었던 선보기의 한 장면이다.
근디 어서 밥이라 그려. 그리서 이렇게 쌀을 갖다 쌀을 까불르고 우리 집이 바로 문을 열먼 시암이 있어요, 되안으가. 문 열고 시암으 가 쌀을 지져 먹으먼 고리 쫓아오지. 벜으로 가서 밥을 안치먼 또 고리 쫓아오지. 우리 집 또 바로 옆에 우에가 시암이 아니 저 밭이 있어요. 밭이 가서 반찬이 없은게 머 꼬초너물이라도 히놔야지. 꼬추조깨 연헌 꼬추 따로 가먼 또 거그까지 쫓아오지 그리여. 그리서 먼 여자가 저러고 먼 할매가 저러고 댕기는고 이상 알었어요. 인자, 그리서 나 허고 잪은대로 다 허고 돌아댕깄죠. 그서 밥을 히가지고 갖다 그맀드니 한참 앉어서 밥을 우리 어머니가 밥 먹어라, 나더러. 그러고서 어머니 어서 잡숴 물이랑 다 떠다드리고 그리고 나는 돌아댕깄지. 그러는디 그 양반들 한참 방으 앉어서 머라고 이얘기를 허드니 머 혼담 이얘기를 허는 것 같어. 그서 속으로 저 노인네들 이상허네 먼 말인고 그맀어요. 인자 그맀더니 제 말을 혀. 그서 그때서야 저 사람들이 슨보로 왔다냐 그맀어요.
예비 신부에게 주어진 첫 번째 미션은 밥하기였다. 예비 시댁 어른들은, 쌀을 씻고, 밥을 안치고, 반찬을 만들고, 밥상을 들이고, 물을 들이는 모든 과정들을 하나하나 지켜본다.
그때만 히도 수무살 먹으먼 먼 종 알가뇨? 그때 수무살을 먹었었네. 지금 애들 수무살 먹으먼 학교나 뛰어댕기고 머 먼 종 알어요. 근디 그때만 히고 학교도 안 댕기고 아무 종도 몰로고 그맀지. 집이서 일이나 허고 부모들이 시키먼 시키는 일이나 힜었지. 그리서 아무 종도 몰로고 왔다리갔다리 왔다리갔다리 왔다리갔다리 험서 밥을 허고 막 그러고 힜드니. 인자 당신네들은 맘으 흡족헌게 그만허먼 되았다. 그런게 당신네가 와서 한번 봐라 인자 그런 이얘기가 실쩍 둘와요. 그리서 인자 속으로 참 노인들 이상허네 무슨 시집 내 시집가는가 봐라 그맀어요.
집안일만 하며 살아온 스무 살 처녀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혼담에 대해 ‘내가 시집가는가 봐라’는 되알진 다짐으로 거부한다.
아 그맀드니 울아버지가 여그 오셔서 선을 보고는 와서는 바로, 우리아버지가 술을 좋아혀. 술을 좋아헌게 그 쬐깐헌 사람을 보고는 기양 허락을 히버맀네. 기양 그 자리서 그냥 그 자리서 허락을 히버리갖고 시집 안 간다고 걍 갸아앙 가을내로 울었지. 쬐깐헌 것을 시집보내야 말어 허다가 어트게 얼렁뚱땅히서 와버맀네요. 시집온 일 생각허먼 웃겨, 지금도. 먼 꿈인가 생신가 내 그러네요, 지금도. 어찌게 이상시러 말 한 마디도 못허고 어찌도 못허도 걍 그때는 그르케 어거지로 부모들이 그르케서 보냈는디 어쩔 수 없이 살등만요.
전혀 다른 삶의 방식으로 살아야 하는 시집에서의 삶, 그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준비할 겨를도 없이 우리 어머니, 할머니들은, ‘얼렁뚱땅’, ‘이상시러’, ‘웃겨’, ‘말 한 마디 못허고’, ‘꿈인가 생신가 허다가’ 시집을 와 버린다. 그리고 아들딸 낳고 평생을 살아간다.
그리서 내가 그리요. 지금 내가 아가씨 같으믄 내가 째깐히갖고 학교 댕기고 근다먼 멋진 남자한티 연애 한 번 허고 잪은 생각이 멕힌당게.
그 우습지도 않은 삶이 상식이었던 우리 어머니와 할머니들 ‘고런 생각이 멕히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생각일 수밖에 없는, 이것이 바로 인생이다.